[류한준기자] 남자프로배구 삼성화재 센터 고희진은 팀이 지난달 '봄배구'를 치르는 동안 코트가 아닌 병원에 있었다. 팀 동료들과 후배들이 뛰는 장면을 TV 중계를 통해 지켜봤다.
"답답했죠. 제가 경기에 뛰지 못하더라도 현장에 동료들과 함께 있었으면 했는데."
삼성화재는 두 시즌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 OK저축은행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에는 챔피언결정전, 올해에는 플레이오프에서 OK저축은행을 넘지 못했다.
고희진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정규리그 10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후반 코트로 돌아왔지만 같은 부위에 다시 부상을 당해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프로 원년이던 2005년 겨울리그 이후 가장 적은 출장 기록이다. 그는 최근 깁스를 풀고 병원에서 퇴원했다. 지금도 목발을 짚고 움직이지만 그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고희진은 팀 숙소와 전용체육관이 있는 있는 경기도 용인시 죽전 삼성 STC로 매일 출, 퇴근하고 있다. 재활트레이닝 일정에 들어가서다.
그는 "지난해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뛰지 않아 (플레이오프에 대해)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고희진은 "송명근(OK저축은행)처럼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주도할 선수가 있었다면 플레이오프 승부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본다"고 아쉽게 느낀 점을 얘기했다.
삼성화재는 OK저축은행을 맞아 제대로 된 반격을 못했다. 그로저(독일)를 앞세워 추격을 했지만 한 번 넘어간 흐름을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구는 흐름과 리듬의 경기다.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점수를 만회하기가 어렵다.
실업 시절을 포함해 프로원년부터 지금까지 큰 경기를 누구보다 많이 경험한 고희진은 그런 점을 몸으로 알고 있다. 고희진을 누구보다 오래 지켜본 신치용 구단 단장 겸 삼성 스포츠단 부사장과 임도헌 삼성화재 감독이 올 시즌 팀에서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이 바로 그의 부상 결장이었다.
고희진은 경기 분위기를 한 순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팀 에이스로 공격을 도맡아 하는 선수는 아니다. 그에게는 센터로서 상대팀의 기를 꺾는 중요한 블로킹 역할도 있겠지만 다른 장점이 있다.
리드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도 '할 수 있다. 뒤집을 수 있다'는 느낌과 감정을 코트 안과 밖에 있는 선수들에게 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임 감독은 OK저축은행과 플레이오프에서 선수들에게 "상대에게 끌려가는 상황이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더라도 고개를 먼저 숙이지 말자"고 강조했다. 팀 주장으로 고희진이 늘 작전타임 마지막에 외쳤던 말이기도 하다.
고희진에게는 이제 지루한 재활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처음 다친 것도 아니고 수술과 재활 경험도 있는데 이번이 정말 힘들더라"고 했다. 그는 1980년생으로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방신봉(한국전력) 여오현(현대캐피탈) 최부식(대한항공) 정도만 고희진보다 선배로 V리그에서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어쩌면 다가올 2016-17시즌이 선수로 뛰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재활이 잘 안된다면 유니폼을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고희진도 조만간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팀에게 늘 고맙다"며 "임도헌 감독님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사무국 스태프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삼성화재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배구선수 고희진'으로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삼성화재는 2016-17시즌 센터 전력이 더 약해질 수 있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비롯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 트레이드와 신인 드래프트 등을 통한 변수는 있겠지만 주전 센터로 뛰었던 지태환이 군에 입대한다. 이선규도 FA 자격을 얻는다.
이런 상황에서 팀내 최고참으로 그동안 센터진을 든든하게 받쳤던 고희진마저 전력에서 빠진다면 손해가 크다. 이재목, 손태훈, 고현성 등 젊은 센터진에게 한 시즌을 온전히 맡기는 것은 아직 모험이다.
고희진은 "일단 최선을 다해 재활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다음 시즌 동료들과 함께 코트에 다시 서고 싶은 생각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선수 생활 지속 여부는 팀 판단과 결정에 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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