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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정가람, 이 얼굴을 다시 보게 되실 겁니다(인터뷰)


"해낼 때까지 하는 것, 그 과정이 중요하다"

[권혜림기자] 재능을 믿은 천재가 있었다. 간밤 소주를 '글라스'로 들이키고 선수촌에 복귀해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국가대표 수영선수. 고향의 어른들과 때아닌 도박을 즐기다 선수촌을 무단 이탈한 문제적 상황에서도, 그의 표정엔 늘 여유로움이 묻어있다. 둘러입은 재능 덕이다. 체벌이 일상이던 시절, 제자의 재능을 구실로 분노를 참다 결국 매를 든 코치 앞에서도 천재는 당당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모든 세상이 그의 편인 것은 아니다. "맞을 짓을 했다"는 칼 같은 비난은 결국 재능의 외피를 뚫고 천재를 찌르고 만다.

영화 '4등'(감독 정지우, 제작 정지우 필름, 국가인권위원회)은 재능은 있지만 만년 4등인 수영선수 준호(유재상 분)가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이항나 분)로 인해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 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청소년기 천부적 재능으로 수영계를 빛냈던 유망주 광수의 어린 시절로 시작한다.

낯선 얼굴로도 영화의 시작부터 관객의 몰입을 돕는데 성공한 인물은 바로 광수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신인 배우 정가람이다. 고등학생이자 태릉의 국가대표 수영 선수인 어린 광수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탈을 일삼는다. 음주, 도박, 선수촌 무단 이탈이 이어지면서, 광수는 빛나는 재능 덕에 피할 수 있었던 체벌의 대상이 된다. 때로 해맑고 때로 분노어린 눈빛으로 스크린을 누빈 정가람의 연기는 흑백 화면 속 청년 광수의 얼굴을 무리 없이 완성해냈다. '4등'은 올해 4월 한국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수작인 동시에, 정가람이라는 신선한 얼굴을 대중에 소개한 작품으로 기억될 법하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민재 역을 통해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정가람에게, '4등'은 드라마에 앞서 작업했던 첫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던 즈음 조이뉴스24와 만난 그는 "영화에 대해선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은데, 제 평에 대해선 귀를 닫고 있다"며 "스크린에서 제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 굉장히 민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여느 신인배우다운 겸손함과 수줍음이 엿보이는 인상이었다.

"'4등'을 네 번 봤어요. 오디션을 2주에 한 번 꼴로 봤는데, 그 때마다 정지우 감독님은 제 안에 있는 모습을 끌어내 주셨어요. 아직 캐스팅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될지도 모르니 그 새 꾸준히 몸을 만들었죠. 그 과정에서 몸을 만들어가는 것도 오디션의 일부였어요."

영화 속 광수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재능만을 과신한 비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신인 배우가 소화하기엔 깊은 입체성을 지닌 인물인 만큼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려낸 과정이 궁금했다. 하지만 정가람은 "광수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에 예상과는 다른 답을 내놨다. "공감이라는 단어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애초에 광수는 제가 아니니까, 저와 광수 사이에 공감대가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는 나고, 광수는 광수다'라고 생각했죠. 그런 작업이 더 매력적이고 재밌는 것 같아요. 성격과 비슷한 캐릭터라면 어찌보면 더 편하게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광수는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세상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저 제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작은 것들을 끄집어내서 광수라는 인물을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의 말대로 '정가람은 정가람이고, 광수는 광수'라면, 스크린 밖 정가람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멋쩍고 수줍은 웃음과 함께 "자만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으로 인해 나오는 것을 믿는 편"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 대목이었다. "승부욕은 있지만, 잘 해서 갖는 승부욕은 아니다"라는 솔직한 답이었다.

"지기 싫어하는 건 통하는 것 같아요. 광수는 잘하는데 승부욕까지 있는 것이지만, 저는 뭐든 잘 하진 못해도 승부욕이 있어요. 억울해서 잘 하고 싶은 그런 것?(웃음) 아마 광수는 그런 마음을 모를 거예요. 잘 하는 것이 확실한 천재니까요. 저의 경우엔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면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 답답해하는 면이 커요. 해낼 때까지 하는 것, 그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밀양 출신이라는 정가람의 프로필은 극 중 광수의 사투리 대사를 맛깔나게 소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고향에서 무작정 상경해 배우의 꿈을 이뤄나간 과정에 대해 정가람은 "확신보다는 패기와 무모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급한 마음보단 편안한 자세로 연기에 임하고 싶다는 그는 "어찌보면 연기도 직업이니까,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백세시대'니까, 인생을 길게 사니까, 천천히 꾸준히 하다보면 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며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아직도 첫 작품의 첫 촬영날이 기억나요. 대사를 한 마디도 못 뱉었거든요. 그 한 마디를 얼마나 연습했겠어요. 수십 명 앞에서 너무 설레는데 그게 여기(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 거예요. 너무 설레서 잘 하고 싶은데 실수를 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지금도 촬영한다는것 자체가 너무 설레고 새로워요. 옛날엔 소심한데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어찌보면 이 일을 하고 나서 제 인생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요.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면서요. 천천히 걸어가며 쌓아가고 싶어요. 계단을 뛰어가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낯을 가리는듯 조심스러웠지만, 그의 다짐에선 분명한 진심이 읽혔다. 때로 꾸준함은 천부적 재능을 넘어선다. 중요한 건 아직 그가 지닌 재능의 최대치를 채 다 확인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4등'에서 채운 짧은 분량은 '엑기스'보단 '맛보기'일 것만 같다. 배우 정가람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4등'은 지난 13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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