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내가 해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깨닫게 되면 정신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스페인에 1-6 대패를 당하고 하루가 지난 뒤 만난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은 냉정하게 한국대표팀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체코전 준비와 향후 대책에 대해 설명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일 오후(한국시간) 체코 프라하 힐튼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전날 스페인전 결과에 대해 "생각이 많아 봤자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빨리 잊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성적만을 위해서라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0위권 또는 한국과 수준이 비슷한 팀과 붙어서 좋은 전적만 쌓으면 된다. 그래도 유럽 강팀과의 평가전을 계속 요청했다. 객관적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스페인이 세계랭킹 6위인데 더 높은 곳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많은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라고 한국이 세계 정상권으로 가기는 어렵다고 객관적인 진단을 했다.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육성 과정에서 기술적인 완성이 된다. 책임을 돌리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바꾸려면 작은 변화가 아니라 혁명이 일어나야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스페인전 결과를 두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 됐다"라고 비유한 슈틸리케 감독은 "지금 상황에서는 얼마나 잘 추스른 뒤 정신적으로 무장해서 체코전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화재를 잘 진압하고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책임이 분명하게 있다고 한 슈틸리케 감독은 "결과만 생각했다면 수비적인 선수 6명을 출전시켰어야 했다. 결과만 집착했다면 계속 수비를 하면서 버티지 않았을까 싶다. 라인을 올리며 점유율을 앞세우는 축구는 내 철학이다"라고 설명했다.
평가전과 단일 대회 또는 토너먼트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한 슈틸리케 감독은 단단한 수비와 역습이 일품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의 예를 들며 "아틀레티코가 그런 축구를 구사하는 것은 공격적으로 나서는 FC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라며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부적응이 대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꼽았다.
선수 개개인의 신상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전을 통해 한국 축구의 적나라한 현실을 봤다며 "성인 대표팀에서 변화를 주기에는 제한이 있다. 축구협회가 좋은 선수 육성을 위해서는 지도자 양성을 해야 한다. 다만, 이들을 통해 육성된 선수가 결과에 집착하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향후 유럽 원정 평가전을 추가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스페인처럼 정상권 팀보다는 조금 아래에 있는 팀과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현실적인 차이를 스페인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과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스페인이 실전에서 하는 것은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적장 입장에서도 그들의 축구에는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즐겁게 경기를 한 팀 같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우리가 세계 5위권의 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체코전은 또 다른 수준의 팀이다. FIFA 랭킹 29위인데 그들과 싸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대등하게 전개된다면 (향후 유럽 원정 평가전을) 요청할 때 아주 강한 상위 5개 팀이 아닌 15위권 내외의 팀과 겨루며 수준을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앞으로의 구상을 전했다.
스페인의 패싱 축구와 탈압박을 제대로 확인하는 소득을 얻었다는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은 스페인을 따라 잡을 수 있는 능력의 팀이 아니다. 골키퍼 5명과 수비수 6명을 쌓고 경기를 해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극단적인 비유를 했다.
다시 선수들에게 시선을 돌린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절대 대표팀에 오기 싫어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그런 자세 보인 적 없다. 자발적으로 휴가까지 반납해 온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의심하기 어렵다"라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다만, 스페인전에서 급격하게 무너진 부분에 대해 "압박하라고 지시했는데 초반에 노력했지만, 스페인의 기량이 출중했다. 빠르게 한두 번 터치로 볼을 주고 받아 연계하는 플레이는 최고다. 그런 팀이 (아시아에서) 얼마나 많이 하나. 중국에서 하는가 아니면 일본이나 카타르 리그에서 하는가. 선수들이 익숙하지 않으니 볼을 돌리고 압박에서 벗어나다가 어느 순간 지치는 것이다. 내가 해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 깨닫게 되면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또, 이 경기 준비를 위해 이틀밖에 훈련을 못하고 5명은 늦게 와서 따로 훈련했다.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대표팀을 덮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늘 화창한 날씨라고 해서 좋은 날은 아니다. 안 좋은 날도 있다. 선수들에게 좋든 나쁘든 한 팀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라며 오는 5일 체코전에서는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조이뉴스24 프라하(체코)=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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