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한국 남자 탁구의 맏형 주세혁(36, 삼성생명)의 마지막 올림픽은 빈손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했다. '커트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파워와 드라이브를 겸비한 선수들이 대세인 세계 탁구계에서 수비 탁구로도 얼마든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주세혁은 18일 새벽(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루센트루 파빌리온 3에서 끝난 2016 리우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결정전에서 이상수(26, 삼성생명), 정영식(24, 미레에셋대우)과 함께 출전했다. 한국은 1-3으로 패하며 4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올림픽까지 오는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주세혁의 비중은 대단했다. 올림픽에 앞서 올 3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커트의 정석을 보여주며 공동 3위 성적에 기여했다.
계속 커트 신공을 펼치다 순간적으로 포핸드 드라이브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술도 일품이다. 흐름을 가져오기에 그만한 기술도 없다.
주세혁이 수비형 선수로 바뀐 것은 어린 시절 지도자의 권유 때문이다. 성격이 워낙 침착해 수비형으로 나서면 좋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수비만으로 성공이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주세혁은 공을 깎아 치는 기술을 키웠다, '깎신'의 출발점인 셈이다.
하루 2천개씩 깎아 치는 기술을 익혔고 스매싱까지 더해지면서 주세혁은 무섭게 성장했다. 2003 프랑스 파리 세계선수권 단식 준우승으로 한국 탁구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아직도 한국 남자 단식의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은 주세혁이 거둔 준우승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단체전에서는 수많은 은메달을 함께 했다. 2006 도하, 2010 광저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에 기여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도 수확했다.
특히 런던 올림픽 당시에는 혈관이 부어 통증이 생기는 류마티스성 베체트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진단도 쉽지 않고 만성적인 통증이 동반된다. 그런데도 주세혁은 가족과 동료, 팬들의 성원으로 일어섰고 은메달의 영광을 일궈냈다.
상대의 광속 드라이브를 깎아 치는 기술은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중국은 슈퍼리그에 주세혁을 2012~2015년 연속 초청을 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상위 랭커에 완벽한 수비탁구 기술까지 겸비한 주세혁에 대한 일종의 예우였다.
주세혁의 소원 중 하나는 어린 시절 대등했던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개인전에서는 중국만 만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중국은 탁구를 프로화시켜 어린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올림픽에 나서는 자체 대표선발 경쟁이 대단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주세혁은 탁구 발전을 위해서는 학교 체육을 클럽 체육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등 한국 탁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올림픽 단식 출전 기회는 후배 이상수에 내줬다. 랭킹으로 따지면 정영식, 주세혁 순으로 개인전 출전이 가능했다. 그런데 주세혁은 개인전 출전권을 이상수에게 물려줬다. 올림픽 경험을 통해 성장하라는 의미였다. 덕분에 이상수와 정영식은 단식에서 귀중한 경험을 했다. 아름다운 양보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쿨하게 떠나는 주세혁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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