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배드민턴 여자 복식 국가대표 정경은(26, KGC인삼공사)은 2012 런던 올림픽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정경은은 런던 대회 여자 복식에 김하나(27, 삼성전기)와 조를 이뤄 나섰다. 당시 정경은-김하나 조는 세계랭킹 1위 왕샤올리-위양(중국) 조와 만났는데 2-0으로 이겼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왕-위 조의 성의 없는 플레이는 정경은-김하나 조의 분노를 유발했다. 왕-위 조는 패배를 해야 자국 세계랭킹 2위 톈칭-자오윈레이 조를 준결승에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지는 경기를 했다.
이런 분위기에 당시 성한국 대표팀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고 심판장이 코트로 들어와 양 팀 선수에게 경고하는 등 정상적인 경기를 요구했다. 그래도 왕-위 조는 계속 서비스를 네트에 꽂고 스매싱을 멀리 보내 아웃시키는 등 져주기 게임을 했고 한국에 패배해 A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이에 C조의 하정은-김민정 조도 져주기 게임을 하다가 한국도 전원 실격이라는 유탄을 맞았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함께 세계배드민턴연맹(BWF)에 이의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정경은을 비롯해 한국 여자 복식 조는 모두 중도 귀국이라는 쓴맛을 봤다.
국내 복귀 후 돌아온 것은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자격정지 1년' 징계였다. 졸지에 '승부조작' 선수가 된 정경은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징계를 받은 정경은은 국제대회에 '개인 자격'으로 태극마크 대신 소속팀 명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그런데 왕-위 조와 인도네시아 조는 자국에서 징계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국제대회에 나섰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정경은을 비롯해 선수들에 대한 구제를 대한체육회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 간 정경은은 신승찬(22, 삼성전기)과 조를 이뤄 리우 올림픽 준비에 온 힘을 기울였다. 머릿속에는 런던의 치욕을 만회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배드민턴 미디어데이에서도 "고의 패배는 배드민턴 인생에 상처다. 어떻게든 지우고 싶다"라며 올림픽 메달권에 들어가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정경은은 해냈다. 1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4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정경은-신승찬은 중국의 탕위안팅-위양을 이기고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험난한 조별예선을 통과해 4강전에서 마쓰모토 미사키-다카하시 아야카(일본)에게 0-2로 졌지만, 오히려 정경은의 투지를 자극했다. 위양과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정경은이 설욕 의지를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은 대단했다. 위양의 스매싱을 커트해내고 범실을 유도하는 등 상대 발을 무디게 만들어 2-0(21-8 21-17)의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정경은은 완벽한 실력으로 메달 자격이 충분함을 위양 앞에서 증명한 것이다.
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신승찬은 조용히 보조했다. 지난해 9월 조를 결성해 짧은 준비 시간이었지만 현란한 네트 플레이로 동메달을 함께 했다. 모두가 행복한 동메달을 얻은 것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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