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정신이 없어서… 그래도 한 번 해봐야죠."
포항 스틸러스는 자진 사임한 최진철 감독의 뒤를 이어 최순호(54)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고 26일 발표했다.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라운드를 포함해 시즌 6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벌어진 일이었다.
최순호 감독은 인도 고아에서 진행 중인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U-16) 선수권대회에 나선 U-16 대표팀의 단장으로 동행했다가 조별리그 탈락 후 24일 귀국했다.
바로 이날 최진철 감독이 사임하면서 포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25일 구단 수뇌부가 서울로 올라와 점심께 최순호 감독을 만나 지휘봉을 잡아 달라고 제안했다. 당장 포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포항 감독 복귀를 받아들인 최 감독은 여독을 풀 여유도 없이 26일 포항으로 향했다. 당장 10월 2일 33라운드 경기가 기다리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선수들과 융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 포항은 산술적으로 상위 스플릿 진입 가능성도 사라져 클래식 잔류가 더 급해졌다는 점도 최 감독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사실상 포항 구단은 최 감독에게 팀의 운명을 맡긴 셈이다. 최 감독은 27일 오전에는 송라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단과 상견례도 가졌다.
최 감독은 2011년 강원FC 감독 중도 사퇴를 끝으로 현장 지도자와는 멀어졌다. 2013 축구협회 유소년 부문 부회장을 맡으면서 선수 육성, 골든에이지 체계 확립 등에 힘을 쏟았다. 평소 유소년 시스템 구축에 관심이 있어 그에게도 맞는 옷이었다.
하지만, 현장 복귀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다. 어느 시점엔가는 팀을 다시 맡아서 이끌어 보고 싶었고 절묘하게도 친정팀 포항이 다급하게 손을 내민 것이다.
최순호 감독은 "구단이 급하게 연락을 해왔고 25일 서울에서 만나 제안을 받았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포항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했다. 포항 고위 관계자도 "경험이 많은 지도자가 필요했고 최 감독이 적임자라는 판단을 했다"라고 말했다.
1983년 포항제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최 감독은 1993년 코치로 인연을 이어갔고 2000년에는 감독직에도 올랐다. 2004년 수원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을 넘지 못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에게는 포항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다.
상황도 맞아떨어졌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지난 7월 통합 협회 회장으로 선임됐고 10월 중 조직개편을 준비 중이었다. 부회장단 물갈이도 자연스러운 절차였기 때문에 축구협회를 떠나는 데도 큰 무리가 없다.
포항 선수단과 한 배를 탄 최 감독은 "이 나이에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같이 즐기면서 해나가려고 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클래식에)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잔류를 해놓고 나서 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겠다. 정말 할 일이 많다"라고 말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김기동(45) 전 리우 올림픽 축구대표팀 코치의 팀 합류는 그래서 더 반갑다. 2012년까지 포항에서 뛴 뒤 은퇴를 했고 구단 사정이나 선수단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믿고 맡길 수 있다. 김 코치는 문창진, 강상우 등 어린 선수들과는 올림픽 대표팀에서, 김광석, 신화용, 황지수 등 선참급들과는 현역 시절 함께 어우러지며 정규리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제조해봤다는 좋은 기억도 있다.
최 감독은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성난 파도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어려운 처지의 구단을 맡은 것이다. 최 감독은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포항은 전통의 명가 아닌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팀이고 가능성도 크다"라며 주변에서 우려하는 강등권 추락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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