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결전의 날이 밝았다. 지지 않고 무승부를 거둔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이고, 이긴다면 새역사 창조와 함께 러시아로 향하는 길이 비단길이 될 수도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1일 밤(한국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4차전을 치른다. 시차와 고지대 극복은 대표팀이 현지 도착 후 나흘이라는 시간 동안 완벽하게 극복하기는 어렵지만, 의지를 갖고 승리 사냥에 나서야 한다.
이란 원정은 유독 한국축구에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2012년 10월에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한국 선수단이 아자디 스타디움에 등장하자 남자로만 구성된 10만 관중의 엄청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란이 한국과의 역대 전적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1996년 아시안컵 6-2 대승을 이란 축구팬들은 손가락으로 표시하며 애써 상기시킨다. (하단 영상 참조)
일부 몰상식한 관중은 돌과 페인트가 들어간 비닐봉지나 중동권 국가에서 최고의 모욕으로 여겨지는 신발을 그라운드에 투척하기도 했다. 실명시킬 수도 있는 레이저 포인터는 경기 내내 한국 선수단의 얼굴을 향한다.
심리적으로 한국을 압박하는 분위기는 경기가 시작되면 극에 달한다. 볼만 잡으면 야유는 기본이다. 관중 함성에 묻혀 선수들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라 몸짓을 동원해야 한다. 또, 이란 선수들은 다른 경기보다 더 몸싸움을 강하게 하며 한국의 육체적인 피로도를 높이려 애를 쓰곤 한다.
경기가 끝나면 기자회견을 위해 관중석을 통과해 그라운드로 내려가야 하는 한국 취재진에도 어김없이 야유가 쏟아진다. 이런 관중을 보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지나쳐야 그나마 안전하다.
한국 선수들에게 무례하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당시 한국의 0-1 패배로 끝나고 기자와 기성용(스완지시티)이 믹스트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란 방송사의 카메라가 기자 옆으로 끼어들더니 기성용에게 불쑥 마이크를 내밀었다.
양해도 구하지 않은 그들은 "계속 이란에 지는데 월드컵 본선에 갈 수 있겠냐"며 기분 상할 만한 질문을 서슴지 않았다. 마음 상한 기성용이 손짓으로 대답을 거부하자 땅에 침을 뱉는 등 불손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번 한국대표팀 원정에도 이란 취재진은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독일 유력지 빌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테헤란의 풍경에 대해 말한 것을 두고 말꼬리 잡기를 하는 등 신경전을 빼놓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경험으로 견디며 승리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최선책이다. 다행스러운 부분은 이번 23명의 대표팀 선수들 중 상당수가 2012년 최종예선과 2014년 친선경기로 이란 원정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격, 미드필드, 수비에서 각자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기성용, 곽태휘(FC서울)가 이란에서 뛰어봤다는 점이 중요하다. 손흥민은 최종예선에서는 후반 8분에 등장했고 친선경기는 풀타임을 소화했다. 기성용과 곽태휘는 두 경기 모두 풀타임을 뛰었다.
이들 외에도 구자철, 김신욱(전북 현대),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김보경(전북 현대), 남태희(레퀴야) 등도 아자디 그라운드를 누비며 이란 현지 분위기를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상대를 알고 싸우기 때문에 90분 동안의 조율에 큰 어려움은 없을 전망이다.
손흥민은 앞선 3차전 카타르전 결승골을 통해 밀집 수비를 뚫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쉼없이 치르고 대표팀에 합류해 카타르전에서도 풀타임에 가깝게 뛰어 피곤함이 쌓인 것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이란에 복수하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 결정력을 보여준다면 이영무(2골)와 박지성밖에 이란 원정에서 골맛을 보지 못한 한국의 테헤란 원정 잔혹사를 마감할 수 있다.
기성용은 카타르전과 마찬가지로 전진 배치가 된다면 좀 더 공격에 가담해 현재 이란 대표팀의 중심이자 정신적 리더인 안드라닉 테이무리안과 제대로 기싸움을 벌일 수 있다. 기성용에게 도발했다가는 되치기를 당한다는 점을 이란도 잘 알고 있다. 기성용이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선다면 수비라인 앞에서 튼튼한 방어벽을 칠 수 있다. 2009년 2월 아자디 원정에서도 기성용은 예리한 프리킥으로 박지성의 골에 간접 기여를 한 경험도 있다.
맏형 곽태휘는 케이로스 감독에게 당한 욕설 세례를 갚기 위해서라도 온 힘을 쏟아붓겠다는 태세다. 2012년 당시 경질 위기에 놓였던 케이로스는 기술지역을 벗어나 곽태휘에게 욕설을 퍼붓다 후반 37분 퇴장당했다.
중국, 카타르전에서 흔들렸던 수비를 곽태휘가 잘 잡아준다면 테헤란 원정 첫 승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곽태휘가 출전하지 않고 벤치를 지킨다 해도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수하며 독려해 수비틀을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974년 이후 2무 4패의 이란 원정 무승 징크스를 깨기 위해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할 슈틸리케호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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