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길에서 삶을 이어 온 네 명의 10대 청소년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여곡절을 거친 것 같다. 당장 오늘 밤 누울 곳이 없고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은 쉽게 범죄에 내몰린다. 휴대폰 매장을 털고, 길에 주차된 오토바이를 훔치는 등 위험한 방식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이들은 의도치 않게 더 크고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 '두 남자'(감독 이성태)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다. 저예산 영화지만 캐스팅은 화려하다.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를 가리지 않고 출연해 온 베테랑 배우 마동석부터 최고 인기 그룹으로 손꼽히는 샤이니의 멤버 최민호가 만났다. 마동석은 가출 청소년들과 얽히게 되는 노래방 사장 형석 역을, 최민호는 친구들을 이끄는 10대 가출 소년 진일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오랫동안 함께 '가출팸'으로 서로를 보살펴 온 진일(최민호 분)과 봉길(이유진 분), 가영(정다은 분), 민경(백수민 분)이 '조건 만남'을 빌미로 사기를 치려다 되려 곤경을 겪으며 시작된다. 진일은 여자친구인 가영이 형석(마동석 분)의 노래방에서 강제로 일하게 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행동들을 이어간다.
하지만 형석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자신 역시 빚 때문에 청소년 성매매를 중개하는 비윤리적 사업을 하고 있지만, 주변 인물들의 면면이나 몸을 쓰는 모습을 보면 결코 평범한 과거를 가졌을 것 같지 않다. 형석은 진일 일행이 자신에게 끼친 피해를 주장하며 가영을 자신의 노래방에서 억지로 일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진일, 진일에게 분노를 품은 성훈(김재영 분)의 관계에 얽히게 되며 곤경에 처한다.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인물들의 갈등은 폭발한다. 달리 도움을 구할 곳 없이 각자의 운명을 내놓고 싸움에 뛰어들게 되는 진일과 형석의 감정은 검고 붉은 에너지로 영화의 정서를 지배한다.
'두 남자'는 수작 단편 영화들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성태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이 감독은 군 문제를 소재로 한 단편 '십분간 휴식'(2007)으로 제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영화제에 주연 배우 최민호, 김재영, 이유진, 정다은, 백수민 등과 함께 참석한 이성태 감독은 개막식 행사를 시작으로 야외 무대인사, 관객과의 대화(GV) 등을 소화하며 영화제를 한껏 누볐다. 그를 만나 '두 남자'에 얽힌 이야기, 부산에서 영화를 처음 선보이게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인기 스타 최민호를 향한 응원이 크게 반영됐다"고 말하는 감독에게선 첫 영화를 선보이는 조심스러운 태도에 더해 영화와 배우들을 향한 뜨거운 애정도 읽혔다.
이하 '두 남자' 이성태 감독과 일문일답
-지난 7일 첫 GV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 들었다.
"아주 좋았다. 관객들이 좋아해줄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엔터테인먼트적 욕심을 크게 낸 영화가 아니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다. 장편 데뷔작이니 부족한 것도 많았다. 물론 GV에서의 반응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해선 안 될 것 같다. 영화제에 오신 분들의 성향도 그렇고, 이번 행사의 자리를 채워 준 절대다수가 (최)민호의 팬 분들 아니겠나. 영화가 좋지 않아도 사랑으로 봐 주신 것일 수 있다.(웃음) 관객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조금은 자신감도 생겼다. 그동안은 많이 두려웠다."
-무엇이 두려웠나?
"편집하면서 '다시는 영화를 못 만들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힘든 시간이었다. 작은 화면으로는 수십 번, 수백 번을 보지만, 큰 화면으로 볼 때는 느낌이 또 다르더라. 예산 문제도 있었고, 이 영화야말로 인물들의 감정을 더 잘 느끼려면 큰 화면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수십 번을 봤는데도, 첫 상영 때 민호의 뒷모습을 담은 첫 컷을 보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올해 영화제 한국영화 초청작들 중엔 유독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두 남자' 역시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이유가 있나?
"이 시대가 불행하고 불우해서가 아닐까. 영화 감독이라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노래하는 분들이지 않나. 아주 미니멀한 아이들의 세계로 불우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감독의 화법인 것 같다. 그런 분위기로 인해 가출 청소년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자주 보인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를 성장영화로 봐주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년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는 점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제목처럼 두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부터 내 영화의 테마는 힘든 환경에 놓인 한 개인, 절박한 상황에 놓인 개인의 이야기였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그에 대한 이미지를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데뷔를 준비하는 기간이 꽤 길어져 아저씨 나이가 되니, 젊었을 때의 그 테마가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되더라. 내가 가지고 있던 반항심, '내가 뭘 그렇게 원한다고' '남들처럼 원하는 것인데 왜 나는 안되나' '누가 나를 원할까'라는 생각은 이제 내 아래 세대 후배들의 생각이 된 것이다. 그럼 그 '누가'에 해당하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그대로인데 말이다. 아마도 지금 나의 몇살 후 모습이 형석(마동석 분)일 것이고, 원망이 많았던 과거의 모습이 진일(최민호 분)일 것이다. 둘 다 나에 대한 이야기다.
'가출팸'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본질인 영화는 아니었다. 그저 다른 세대를 가지고 오고 싶었다. 그들이 각자 처한 상황을 보듬어주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서로를 착취해야 하는 상황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주인공 청년 진일 역을 최민호가 연기하게 됐다는 것이 매우 의외로 다가왔다. 근사한 외모, 선해보이는 인상의 스타이기 때문이다.
"민호가 이 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당연히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당연히 들개처럼 거칠고, 성훈(김재영 분)과 비교해서도 악랄함에 뒤지지 않는 이미지를 생각했었다. 마동석 선배가 먼저 캐스팅됐는데, 그 옆에 나란히 섰을 진일의 모습을 떠올리며 과연 어떤 이미지의 배우가 진일 역을 맡아야 재밌을지 생각했었다. 그것이 진일 역 캐스팅에서 중요하게 여긴 하나의 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이 있었다. 영화 속 청소년들은 사실 굉장히 불쌍한 인물들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을 미화하거나 연민의 대상으로 그릴 의도가 아예 없었다. 그렇다면 감독조차 캐릭터를 감싸주지 않는 이 상황에서 과연 관객은 어떤 이미지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그들을 감싸주지 않아도, 어쨌든 그들과 관객의 마음이 통해야 했다. 그런 얼굴이 뭘까 생각하다가, 전형성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민호의 '사슴눈'이라면 어떨까 싶더라. 그 눈을 통해 관객도 진일에 대해 뭔가를 느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출 청소년들을 미화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답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다.
"안타까운 환경의 친구들이지만, 같은 상황의 친구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성인이나 청소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환경이 변명이 돼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화하려는 생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때로 '답이 나오지 않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진일 역 최민호가 의외의 캐스팅이었던 반면, 형석 역 마동석은 배우가 이전에도 보여줬던 익숙한 느낌의 이미지를 다시 꺼내온 느낌이다. 그런 지점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그 지적에는 동의를 못하겠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생각했다. 그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무서운 것, 사랑스러운 것, 귀여운 것을 모두 연기해낸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어떤 단면은 이미 봤던 이미지로 보일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애초 작은 영화로 기획된만큼 '마동석 선배가 이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었다. 젊은 친구들이 더 키가 크지 않나. 육체적으로, 그림 상으로 젊은이들이 모여 있어도 이들을 압도하는 모습이 필요했다. 극 중 형석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에 그의 사연을 일일이 풀어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삶 자체가 보이도록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마동석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도, 이제까지 한 번도 보여지지 않은 그의 진면목이 담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기존 이미지가 이 영화에 사용된 것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계 안팎의 논란으로 시끄러웠는데, 영화를 출품하고 영화제에 방문하는 데에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최민호를 비롯한 배우들도, 감독 이성태도, 이 영화제에 와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 감독조합에 가입돼있진 않지만, 감독조합에선 보이콧을 했다고 알고 있다. 민호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었듯,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페스티벌의 본질이 아닌 환경의 문제로 인해 이런 사태가 생겼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영화제를 둘러싼 상황들이 조속히 정상화돼 내년부턴 다시 다이내믹한 영화제로, 세계인의 영화 축제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정치적 이유로 영화제가 시끄러워진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이 영화제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영화가 무사히 관객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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