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넥센 히어로즈가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4-5로 패하며 탈락이 확정된 17일 잠실구장.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선 염경엽 감독은 "할 말이 많다"며 스마트폰을 꺼내 준비해 온 '사퇴의 변'을 읽어나갔다. 계약기간 1년을 남긴 상황에서 나온 깜짝 감독 사퇴였다.
그동안 자진사퇴의 형식을 빌어 경질된 사령탑들은 많았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남은 가운데 스스로 감독직을 물러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염 감독은 넥센에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남겨 입지가 탄탄했고, 구단 밖에서의 주가도 높았다.
올 시즌 후반기부터 염 감독의 주변에서는 거취를 둘러싸고 소문이 무성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이 대표적이었다. 이장석 대표이사와의 불화설도 들렸다. 결국 염 감독은 가을야구 일정이 끝나자마자 사퇴를 발표하며 넥센과 더 이상 함께 할 운명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감독 선임부터 사퇴까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2011년까지 LG 트윈스의 수비코치로 활동하던 염 감독은 2012년 넥센의 부름을 받고 팀을 옮겨 작전·주루코치로 재임했다. 2012년 넥센이 팀 도루 1위를 차지했던 데에는 당시 염 코치의 공이 컸다는 것이 야구계의 평가다.
2012년 시즌을 마친 뒤에는 넥센의 제3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감독 선임.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염경엽이 누구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감독 재임 기간 중에도 염 감독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부임 첫 해였던 2013년에는 만년 하위권이던 넥센을 정규시즌 3위로 이끌며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이어 2014년에는 정규시즌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반경기 차 뒤진 2위를 차지한 뒤, 창단 첫 한국시리즈까지 팀을 이끌었다. 지난해 역시 정규시즌 4위로 가을야구 무대를 밟았다.
넥센 지휘봉을 잡고 염 감독이 야구계를 가장 놀라게 했던 시즌은 바로 올 시즌. 4번타자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에이스 밴헤켄은 일본 프로야구로 떠났다. 마무리 손승락, 중심타자 유한준도 FA 자격으로 이적. 핵심 선수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시즌 전 넥센을 '꼴찌 후보'로 꼽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넥센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시즌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전력의 한계로 결국 준플레이오프에서 LG에 1승3패로 밀리며 탈락하긴 했지만, 올 시즌 넥센의 선전은 분명 KBO리그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거액의 투자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모범 사례였다.
염 감독이 전격적인 사퇴로 마지막까지 주변을 놀라게 한 것에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굳이 팀의 탈락이 확정된 순간 자진사퇴를 발표해야 했는가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일단 넥센 구단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승자 LG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관심을 상당 부분 빼앗겼다.
염 감독은 "2014년 우승의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아쉽다"며 "구단과 팬들에게는 죄송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실패의 책임은 감독인 나에게 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염 감독은 '염갈량'이라는 칭호와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업적, 그리고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고 5년 간 정든 히어로즈 유니폼을 벗었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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