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중년의 여성 미경(배종옥 분)에겐 무뚝뚝한 아들 수현(지윤호 분)이 있다. 친구 한 번 소개한 적 없던 수현은 어느날 동급생 용준(이원근 분)을 집에 데려온다.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어두운 가정사를 겪었던 소년 용준을 향해 미경은 늘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 수현과 용준은 졸업 후에도 가까운 관계를 이어간다. 용준을 보는 미경의 시선도 여전히 다정하다.
어느 여행길, 두 청년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다. 수현은 중태에 빠지지만 용준의 상태는 양호하다. 그리고 미경은 두 사람의 비밀스런 모습이 담긴 카메라를 확인하고, 인정하기 힘든 진실과 마주한다. 아들 수현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쌓아 온 용준을 향해 미경은 배신감과 당혹감을 느낀다. 모자의 곁을 맴도는 용준이 못내 부담스러운 그는 수현과 함께 용준이 찾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
영화 '환절기'(감독 이동은)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초청작이다.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작품이자, 유명 영화제작사 명필름이 영화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한 명필름영화학교의 두 번째 완성작이기도 하다. 미경 역 배종옥을 비롯해 청춘스타 이원근과 지윤호까지, 캐스팅도 제법 화려하다.
신인 이동은 감독은 삶의 골목에서 예기치 못한 고민들을 마주하는 미경의 심리는 물론, 도리 없이 수현과의 관계를 숨겨야 했지만 미경을 향한 따뜻한 감정을 품은 용준의 감정선까지 세심하게 그려냈다. 더없이 차분한 정서 속에서도 입체적인 감정의 결은 스크린 속 공기의 색깔을 마법처럼 물들인다.
감독은 조이뉴스24와 만나 "하루키의 산문집에 '글을 쓰는 이들에겐 자신의 글을 꾸준히 봐 주는 두 명의 독자가 있다면 그 나머지는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있다"며 "나의 경우 내 작품을 의미 있게 봐 주는 관객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는데, 영화제에 와서 이 영화를 좋아해주는 분들을 만나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KNN 관객상을 수상했다. '환절기'로 영화 세계의 문을 연 이동은 감독에게 더없이 큰 기운을 불어넣은 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이하 '환절기' 이동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올해 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GV)에선 어떤 반응들을 얻었나.
"3회의 GV를 했는데, 매번 반응이 달랐다. 첫 상영 때는 '설렘 반 긴장 반'이 아닌 완전한 '긴장'이었다.(웃음) 관객들마다 해석이 다르더라. 용준과 미경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질문이 있었는데, 만든 사람의 입장에선 오해만 아니라면 그런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용준과 수현의 상황에 공감하는 분들, 미경의 힘든 입장을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환절기'는 명필름영화학교의 성과를 비추는 데에도 유효한 작품으로 보이는데,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글은 5년 전에 썼는데, 그 사이엔 단편 작업이나 스태프 일도 했었다. 공모전에서 떨어진 기억이 많았지만 여기(명필름영화학교)서 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다른 상업영화 시스템에선 만들지 못할 법한 시나리오였는데 하게 됐다. 명필름영화학교는 총 2년 과정이다. 지난 2015년에 느슨하게 프리프로덕션 작업을 했고 올해는 완성 단계를 거쳤다.
나는 영화과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영화 교육기관과 명필름영화학교를 비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촬영, 미술 등을 작업한 다른 동료들은 이미 영화과 출신이었다. 영화 교육 기관의 과정을 이수한 친구들이니, 이 곳은 어쩌면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같은 곳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합을 맞추는 시스템인데, 키스태프들이 정해져 있지 않나. 합격한 뒤 걱정한 면이 있었다면, 극영화가 두 편인데 내 시나리오에 대한 기술 스태프들의 호오가 갈리진 않을까 싶은 고민이었다. 영화과 출신이 아니고 네트워크가 풍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동료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줬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어떤 코멘트를 해줬는지도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좋게 봐 주셨다. 1년 간 프리프로덕션을 하며 많은 동료들과 시나리오에 대해 좋은 이야기도, 안 좋은 이야기도 나눴다. 심재명 대표는 내 처음 의도를 존중해줬다. (당시 시나리오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밀도있어지긴 했지만 내용이나 감정의 결 면에서 다르게 간 것은 없다.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
-'환절기'는 호흡이 다고 느리고 결이 섬세한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 디렉션에도 공을 들여야 했을 것 같은데.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영화다.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을 많이 썼다. 로케이션, 미용, 조명 등이 그 예다. 세 주연 배우에겐 디렉션이 각각 달랐다. 배종옥 선배의 경우 연기 경력이 많은 분이기도 했고 본인이 해석한 미경과 내가 해석한 미경이 거의 일치했다. 세세하게 디렉션할 일이 없었고 늘 현장성을 발휘했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미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원근의 경우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용준 역에 많이 감정이 이입된 상태였다. 용준의 감정을 내가 그린 것보다 120%. 혹은 200% 더 이해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오히려 이 친구를 용준 역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인물에 푹 빠져 있어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감정에 깊게 빠져들어있다 보니 더 많은 슬픔을 보여줄 때가 있어 그것을 절제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지윤호는 내가 생각했던 수현과 조금 다르게 인물을 해석한 면이 있었다. 현장에서 다른 동료들이 '네가 생각한 수현이 저 수현이 맞냐'는 질문을 할 정도였다. 나는 '맞다. 너무 좋다'고 답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인데 지윤호가 살아있는 20대 초반의 모습과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출연을 결정한 과정도 궁금하다.
"제작사에서 이원근이라는 배우를 제안해줬는데, 워낙 '샤방한' 마스크에 '만찢남' 느낌이지 않나.(웃음) 내가 생각한 용준 역과는 이미지가 달랐지만, 믿고 가보자고 생각했다. 실제 만나보니 느낌이 비슷하더라. 이원근은 그간 드라마에서 밝은 역을 많이 했는데 실제 성격은 내성적이고, '트렌디하지 않은' 성격이라고 하더라. 과묵한 편이기도 했다.
배종옥 선배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캐스팅 1순위였다. 그래서 욕심내 제작사와 상의해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흔쾌히, 아주 빨리 수락해주셨다. 1순위 캐스팅이 이뤄진거다.(웃음) 캐스팅 뒤에도 배종옥 선배의 목소리로 대사를 한 신 한 신 떠올리는데, 어느 것 하나 '어떻게?' 싶은 부분이 없더라.
지윤호는 당시 출연한 tvN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 방영될 때였다. 극 중 오영곤 역을 맡았는데, 그 속의 모습들을 보며 수현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연기도 워낙 잘 하지 않나. 겨울에 처음 만났는데, 긴장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았다. '최근 오디션에서 떨어졌었는데 이 영화가 너무 반가웠다'고 해줬다."
-경제학을 전공했더라. 이전까진 영화 회계 일을 주로 했는데 감독으로 입봉하게 된 배경도 알려달라.
"연출에 대한 생각은 원래 있었지만, 당시엔 영상원 전문사 과정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도 막판에 떨어졌었다. 아쉬워하다가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생계를 챙기기로 했다. 시네마서비스에서 회사 생활을 했었고, 다시 창작 쪽으로 오게 됐다. 흔히들 말하듯 '회사를 때려칠거야'라며 '짠' 하고 창작을 한 것이 아니라, 창작을 하다 밥벌이를 하고,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돌아온 느낌이다. 2010년에 마지막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걸 하게 됐어요'라고 말하기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직장 생활을 안정되게 하며 평범한 삶을 사는 것 역시 내 삶의 지향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꿈이 있다.(웃음)"
-올해 영화제에 많은 이슈가 있었고, 주류 영화인들의 참여가 저조한 면도 있었다. 초청된 신인 감독으로서 느끼기엔 어땠나?
"비즈니스의 장이라는 것도 영화제의 한 측면인데, 실무진들은 배급사들의 큰 행사가 없어 '차분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반면 시네필들은 여전히 실속 있게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다. 매진작도 많았다. 올해 영화제가 힘든 일들을 겪었고 자연재해도 있었지만, 초청받은 입장에선 감사할 뿐이다. 영화제가 뭔가를 잘 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관객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영화제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느꼈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써둔 것은 있다. 그동안 그래픽노블 작업을 했던 것은 만화로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작가들이 (여러 글들 중에도) 내가 영화 시나리오로 썼던 것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어하더라. 그래픽노블 '당신의 부탁'(이동은 글, 정이용 그림)과 '니나내나'(이동은 글, 정이용 그림) 모두 영화 시나리오로 썼던 작품들인데, 모두 영화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중 '니나내나'는 행복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외부로부터 힘들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느낌의 이야기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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