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택시운전사'가 천만 영화가 됐다. 올해 첫번째 천만 영화이자 우리나라 영화로는 15번째, 외화를 포함해서는 19번째 천만 돌파 기록. '택시운전사'를 제작한 박은경 더 램프 대표가 소감과 제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쇼박스에서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제작 더 램프(주))의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를 만났다. 박은경 대표는 광고대행사 제일기획, 한국IBM을 거쳐 지난 2003년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에 입사했다. 이후 쇼박스에서 나와 2012년 영화 제작사 더 램프를 설립, 영화 '동창생'(2013), '쓰리 썸머 나잇'(2015), '해어화'(2016), '택시운전사'를 제작했다.
개봉 19일째인 지난 20일 '택시운전사'가 천만 영화가 되고 난 직후 느낌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박은경 대표는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과 자정 12시 넘어가는 날 서로 축하 인사를 했다"며 "축하 문자를 받을 때는 좋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굉장히 큰 스코어인데 개인적으로 현실감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는 누적 관객수 1천117만546명(27일 기준)을 돌파, 여전히 흥행 중이다. 기대하는 최종 스코어가 있느냐는 질문에 박은경 대표는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기 때문에 딱 바라는 스코어는 없다. 다만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뤄져서 좋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가 천만 영화가 될 거라고 기대했느냐는 질문엔 "정말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대는 정말 안 했어요. 영화를 처음 만들 때부터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천만이 되긴 하지만요. 그리고 요즘엔 IPTV 같은 것들도 있으니까 (영화가 잘 안 되면) '시간이 지나서도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영화를 만들 때 여러가지를 고민했지만, 특히 소재 부분에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택시운전사'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잖아요.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그 시대와 지금이 연결돼 있으니까요."
'택시운전사'는 기존 5.18 광주민주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폭압에 무자비하게 희생되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영화는 당시 상황에서 외부자만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열거, 앞선 작품들과 차별점을 둔다. 박은경 대표는 영화의 시대 배경이 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건 자체를 거시적으로 우리나라 과거와 현재로 연결지었을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선택'의 문제와도 결부시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들은 전에도 있었죠. '화려한 휴가'(2007)도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훌륭한 작품이에요.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전 작품들과 다르게 '선택'에 관한 이야기예요. 독일에서 한국으로 자발적으로 온 기자, 유턴을 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간 서울 택시운전사의 선택이요. 물론 서울 택시운전사가 처음에 광주로 내려간 건 자발적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영화를 크게 보면 모두 자의적인 선택이죠. (크든 작든)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무슨 선택을 할지의 문제는 각 개인에게 과거에도, 지금에도, 미래에도 있어요. 그럴 때 '좋은 선택을 하고 싶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은경 대표는 이런 고민을 실제 경험을 통해 하기 시작했다. '택시운전사'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은경 대표는 쇼박스에서 일하던 시절 영화 '맨발의 꿈' 촬영장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민가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함께 도망친 스태프와 눈이 마주쳤을 때 부끄러웠다고 밝혔다.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는 건 저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동티모르에서 당시 '좀 더 나은 선택할 수 있었을지 않았을까' 고민했어요. 또 나이가 들어가니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건 뭘까', '좋은 엄마가 되긴 부족하나' 이런 생각들이요. 선택이라는 게 쉬워보일 수 있지만 대단히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예요. '택시운전사'를 왜 지금 봐야 하는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당시 광주의 과거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처럼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게 제가 스스로 내린 답이예요."
동티모르에서 겪었던 일로만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박은경 대표는 그때의 경험과 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한 일을 연결지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길을 걸어가면서 피디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위르겐 힌츠페터가 상을 탔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곧바로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봤죠. 짧은 기사 였어요. 그 기사를 가지고 언론의 시각으로, 또는 민주화운동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동티모르 때의 경험과 '유턴'이라는 게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도망갔기 때문에(웃음).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사건에 닥치면 어떤 선택을 할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겠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치로 봤을 때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때 '이걸 영화로 만들어보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구나' 생각했어요."
장훈 감독도 박은경 대표가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에 호응했다. 박은경 대표는 "장훈 감독은 워낙 연출을 잘 하시는 분"이라며 "사실 친분도 있다. 쇼박스에서 일했을 때 영화 두 편, '의형제', '고지전'을 함께 했다.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시선으로 작품을 보는지가 중요하다. 장훈 감독은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좋은 이야기가 될 거라는 데 동의해줬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완성된 영화는 제작자가 처음 의도했던 방향과 다를 수 있다. 박은경 대표는 "영화를 만들다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괴리감이 크지 않았다"며 "오히려 큰 그림에서 더 좋아졌다. 텍스트(대본)에서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좋은 연출자와 배우들이 작품에 들어오면서 영화가 더 풍부해지고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배우 송강호를 극찬했다.
"송강호 배우가 연기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송강호 배우는 역시 그걸 항상 뛰어넘어요 그게 너무 놀라워요. 연기할 때 '아 이게 이런 대사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전체에서 보면 작은 부분까지도요. 예를 들어 송강호 배우가 목을 쭉 빼면서 '거기가 어딥니까'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대본에 그냥 쓰인 이 대사를 송강호 배우는 외치면서 연기하더라고요. 그렇게 연기를 하면 극에 활력이 불어넣어지는 거죠. 그 신이 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뒷모습을 보이면서 춤 추듯 걸어가는 것도 감독님과 상의하고 (현장에서 만드신 거죠.) 진짜 당황스럽게 재밌더라고요. 그런 소소한 디테일을 살릴 때 정말 놀라워요."
송강호 배우가 '택시운전사'를 한 번 거절했던 건 익히 잘 알려져있다. 박은경 대표는 "이상하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며 "저희가 행복하게도 감독과 투자사 결정 등 대본 초고 상태에서 많은 게 이뤄졌다. 처음 대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티테일하게 대본을 수정하고 있는 도중에 송강호 배우에게 연락이 왔다. 되게 좋았다"고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유해진과 류준열도 '택시운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유해진은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을, 류준열은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게 꿈인 웃음기 많은 스물 두 살 광주 대학생 재식을 연기했다. 이들은 정 많고 웃음기 넘치는 평범한 광주 시민의 모습을 진한 감동으로 선보인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은 분량이다. 박은경 대표는 "그래서 배우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통 영화를 만들면 편집에서 배우들의 분량이 줄어들 수 있어요. 하지만 '택시운전사'에서 유해진 배우는 원래 비중이 많지 않았어요. 유해진 배우에게 대본을 주면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작품에서든 주연으로 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런데 호응해주셨어요. 이야기 자체에 호응해주신 것 같아요. 송강호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작품을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웃음) 두 분이 이 작품으로 처음 연기 호흡을 보여주셨는데 함께 촬영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좋았아요. 류준열 배우도 너무 잘해줬고요."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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