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이번생은 처음이라'를 사랑한 시청자들에게, 마상구는 판타지였다. 여린 심성, 진실된 태도를 가졌지만 그에 깃든 감정이 되려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성공한 스타트업의 대표지만 좀처럼 우쭐대지 않았다. 때로 의심과 질투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며 처절히 반성했다. 미처 몰랐던 세상을 기꺼이 껴안았다. 그 안에 속한 연인의 삶에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감히 현실에서 찾을 수 없을 법한 이 인물에, 배우 박병은은 놀랍게도 현실감을 입혀냈다.
최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극본 윤난중, 연출 박준화)는 집 있는 달팽이가 세상 제일 부러운 윤지호(정소민 분)와 현관만 내 집인 '하우스푸어' 집주인 남세희(이민기 분)가 한 집에 살면서 펼쳐지는 로맨스를 그렸다. 극 중 박병은은 남세희가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소개팅 어플리케이션 스타트업의 CEO 마상구를 연기했다.
영화 '암살'의 일본 군인 카와구치 역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박병은은 알고 보면 숱한 영화의 크고 작은 배역들로 관객을 만나 온 배우다. '이번생은 처음이라'는 그가 부지런히 쌓아 온 공력이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든 작품 중 하나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 밖 그의 일상은 다이내믹한듯 단조롭다. 스케줄이 없을 땐 주로 외딴 바닷가나 섬에서 낚시를 하고, 가까이 사는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자타공인 '낚시광'인 덕에, 안부를 묻는 연락에는 종종 최근 잡은 대어의 사진이 답으로 돌아온다.
무표정한 얼굴로 실 없는 농담을 던지곤 하는 그는 나이와 성별, 직업을 뛰어넘어 상대를 쉽게 친구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도통 미워할 구석을 찾기 힘든, 말 그대로 '사람 좋은' 박병은이다. 이쯤 되면 알 수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번생은 처음이라'의 마상구는 그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실제 박병은과 꽤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하 박병은과 일문일답
-드라마가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후회나 아쉬움이 남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런 마음은 없다. 즐겁게 잘 촬영한 것 같다. 뭐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더라. 내가 자유롭게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과 연기했다는 것, 그것 하나 챙긴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전에 다른 작품을 할 때도 자유롭게 연기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내 생각보다도 더 자유롭게 연기한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이 기분을 계속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극 중 마상구는 실제 박병은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나.
"내 안에 마상구의 모습이 있다. 평소 농담을 하거나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웬만하면 다툼 없이 살려고 하는, 그런 밝은 면들이 분명 있다. 친구로서, 형으로서, 동생들에게 툭툭 이야기하는 모습도 그렇다. 너무 '푸드덕'대지 않고 말이다.(웃음) '꼰대' 같지 않다는 면도 좋았다."
-우수지(이솜 분)와 마상구의 갈등과 사랑은 시청자들에게 지호와 세희의 에피소드만큼 큰 관심을 얻었다.
"수지와 상구의 대화 중, 상구가 자신의 성장기를 가리켜 '모난 데 없이 굴곡 없이 살았다'고 말하는 대사가 너무 좋았다. 수지나 지호, 다들 아픔이 있는 인물들 아닌가. 그걸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아픔이 있는 것도 좋았겠지만, 무난하게 상처 없이 자란 사람이 위로를 주는 것에도 묘한 공감이 가더라. 더 많이 포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도 별 굴곡 없이 살았다. 부모님과 잘 살아왔고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많은 시청자들이 마상구를 박병은의 '인생 캐릭터'라고 말하는데, 공감하나.
"'인생 캐릭터'가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지금껏 연기한 것 중 최고의 캐릭터'라는 뜻이라면, 그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잊지 못할, 배우 인생에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기억이 날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바로 바로 확인했는지도 궁금하다.
"토막 영상들을 주로 보는데 나쁜 댓글을 굳이 신경쓰려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의도한대로 연기가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본다. 수지에 대한 감정, 연민과 사랑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감정을 연기했다면 그게 잘 전달됐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다. '마상구가 수지를 보는 눈이 따뜻해요' 같은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나쁜 댓글이 많지 않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수지 역 이솜과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사석에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영화로만 봤는데, 실제로 만나니 생각보다 키가 크고 훤칠하더라. 시원시원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수줍음이 많았다. '선배님, 제가 드라마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라고 묻더라.(웃음) 제작진이 정말 잘 해준 부분이 있는데, 리딩 후에는 잠깐이라도 회식을 하게 해 줬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세 번째 촬영 직전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소주 한 잔 주세요' 하더라. 소주를 함께 마시며 '커플의 문'이 열린 것 같다.(웃음)
이 친구가 우수지라는 인물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열망이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커플로 잘 끌어갈 수 있겠다는 감정을 받았다. 걱정 없이 즐겁게 연기했다, 생각보다도 우수지와 마상구가 너무 잘 어울렸고 잘 맞았다. 촬영 세팅 전 먼저 다가와서 '대사를 맞춰보자'고 제안해줘 고맙기도 했다. 그런 반응이 정말 큰 역할을 한다. 대충이라도 뉘앙스를 듣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극 중 마상구는 대기업 대리 우수지가 겪는 사내의 성희롱과 차별 대우를 조금씩 함께 체감하며 공감하게 된다. 20~30대 여성들이 겪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실제로도 공감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도 자세히는 잘 몰랐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의 여성 배우들이 '그 대사 봤어?' '맞아, 맞아' '작가님 너무 우리 이야기 쓴 것 같아'라며 굉장히 공감하더라. 나도 그 안에 슥 들어가 보면서 알게 됐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도 알게 되고, 그렇게 공감을 했던 것들이 마상구를 통해서 표현됐다. 사실 팀워크가 좋지 않으면 그런 이야기도 안 하지 않나. 그런데 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런 공감이 가능했다."
-차기작 '안시성'을 촬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생은 처음이라'의 인기를 체감하는지 묻는 질문이 많은데, 강원도 고성으로 '안시성' 촬영을 가느라 느낄 새가 없었다. 숙소 카운터 보는 분이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말해주는 정도였다. 조인성, 배성우, 남주혁과 밥을 먹으러 자주 가는데 식당 주인 분들이 조인성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를 알아보겠나.(웃음)
휴게소 고속도로에서 쉴 때 한 분이 알아봐 주시기는 했다. 누가 내 등에서 옷을 잡아당기더라.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께서 '마대표님?'이라고 부르셨다. '드라마 보세요?' 했더니 '재밌게 보고 있어'라고 하셨다. 기분 좋았다."
-조인성과도 낚시를 갈 계획이라고 했는데.
"내가 배를 알아봐야 한다.(웃음) 조인성은 참 사람이 좋다. 어느날은 촬영지에서 어부 동생 한 명을 알아놨더라. 숙소에서 '정말 괜찮은 동생을 만났어'라고 하기에 같이 가서 만났는데,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너무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청년이었다. 정말 해맑은, 그리고 싱싱한 생선을 많이 주는 친구다. 조인성과 도루묵을 200마리는 먹은 것 같다.(웃음) 그 친구와 셋이 창고에서 도루묵을 구워 먹는데, 너무 좋았다. 지방 촬영은 그런 맛이 있다."
-'안시성'에서의 캐릭터도 예고해달라.
"날렵한 수장 풍 역이다. 작품을 적게 한 것은 아닌데, 사극은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 부담이 있을 줄 알았는데 재밌더라. 새로운 것을 하는 게 너무 재밌다. 매일 분장을 하고 수염을 붙이고 쪽진 머리에 가발을 쓰는데, 거울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갑옷을 입은 내 모습이 멋있어보이기도 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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