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류한준 기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렸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악수를 나눴다. 결과가 승장과 패장으로 갈린 사령탑도 코트 한 가운데서 만나 손을 맞잡았다. 배구 경기가 끝난 뒤 코트 풍경이다.
현대캐피탈은 지난달 1월 31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 원정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겼다. 홈팀 한국전력은 패했지만 이날 의미있는 기록 하나가 달성됐다.
한국전력 베테랑 세터 권영민은 현대캐피탈전에서 V리그 남녀부 최초로 1만 3천 세트를 달성했다.
한국전력은 신인 세터 이호건이 선발 출전했고 권영민이 백업으로 뒤를 받쳤다. 그는 이날 세트 성공 13개를 더해 1만3천8세트가 됐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경기 종료 후 김철수 한국전력 감독과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한 선수를 기다렸다. 대기록 달성의 주인공 권영민을 만났다.
둘은 인연이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선·후배 세터로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2010-11시즌부터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함께 입고 V리그 코트를 뛰었다.
2014-15시즌 종료 후 두 세터의 길은 달라졌다. 최 감독은 현역 은퇴 후 김호철 전 감독의 뒤를 이어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두개의 태양이 함께 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권영민은 '최태웅호'로 닻을 새로 올린 현대캐피탈을 떠났다.
그는 트레이드를 통해 KB손해보험 유니폼으로 바꿔입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종료 후 다시 한 번 한국전력으로 이적했다. 현대캐피탈에서 부동의 주전 세터였던 권영민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출전 시간이 예전과 비교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친정팀' 현대캐피탈과 경기에서 마침내 이정표를 세웠다.
소속팀이 패하는 바람에 흥이 나지 않았지만 권영민은 V리그 역사가 됐다. 그의 기록은 은퇴를 선언하는 날까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권영민은 "기록을 만들기 위해 코트에서 뛴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함께 뛰어 온 동료 선·후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해당 기록이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 감독도 "(권)영민이의 기록 달성에 정말 기쁘다"며 "제한된 출전 기회에서 이룬 것이라 더 값지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감독과 현대캐피탈 구단은 지난 2라운드때부터 한국전력과 경기를 앞두고 한 가지 준비를 했다. 권영민의 1만 3천 세트 달성 기념 꽃다발을 경기 전 마련했다. 그런데 해당 기록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권영민은 코트 보다 웜업존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4라운드 현대캐피탈전까지 1만 3천 세트는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축하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은 이날 현대캐피탈과 맞대결에서 기록이 탄생했다.
최 감독은 "영민이가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1만 5천세트 기록도 꼭 이뤘으면 한다"고 덕담을 건냈다. 한편 현대캐피탈은 오는 4일 안방인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OK저축은행과 5라운드 세 번째 경기를 치른다. 한국전력은 하루 앞선 3일 KB손해보험과 홈 경기를 갖는다.
조이뉴스24 수원=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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