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기사 본문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열네 살 소년 준호(이효제 분)의 집은 넉넉하진 않지만 화목하다. 유치원에 다니는 남동생 성호(임태풍 분), 일에 치여 늘 바쁘지만 두 아들과 살뜰하게 사랑을 주고받는 엄마 선미(강보민 분)가 준호의 가족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준호는 어느날부턴가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운동장에서 소외되는 기분도, 밑창이 닳아빠진 축구화도 신경이 쓰이지만, 형이라면 끔찍이 따르는 동생 성호와 장난기 많은 엄마 앞에선 아직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위독해지면서, 준호도 그의 가족도 위기를 맞는다. 엄마가 입원해있는 동안 중학생인 준호는 물론, 아직 너무 어린 동생 성호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 형제 앞에 선 말끔한 중년의 남자 원재(허준석 분)는 철거를 앞둔 이들의 낡은 집에 들러 성호만을 데리고 나선다. 창가로 들어서는 햇살도 준호가 홀로 남은 이 집에 전과 같은 온기를 가져다주진 못한다. 소년이 혼자 남은 이 공간은 더이상 집(Home)이 아니게 된다.
우애 좋은 형제 준호와 성호는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아빠는 서로 다르다. 성호를 데려간 남자 원재는 종종 왕래해 온 성호의 친아빠다. 원재의 아내 미진(최유송 분)은 준호 형제의 엄마인 선미를 찾아와 그를 타박하다 함께 사고를 당했다. 원재에겐 미진과 사이에 얻은 유치원생 딸 지영(김하나 분)이 있다.
준호와 친아빠의 관계는 멀다. 아빠는 화가 많고, 생계에 지쳤고, 아들 준호를 돌볼 의지도 여력도 없어보이는 사람이다. 엄마가 사고를 당하고 집에 홀로 남겨진 때 오랜만에 아빠를 찾아간 준호는 그에게 자신의 어떤 상황도 고백하지 못한다. 간신히 꺼내는 말이란 '밥을 같이 먹자'거나 '운동화가 떨어졌다'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들어주는 것은 없다.
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동생 성호가 준호와 살던 집에 찾아오고, 성호를 찾아 나선 원재는 결국 형 준호까지 자신의 집에서 보살피기로 한다. 아내 미진과 형제의 엄마 선미가 깨어날 때 까지만이다.
준호와 성호, 그리고 원재의 딸이자 성호와 같은 아빠를 둔 지영은 그새 친해져 사이 좋은 남매가 됐다. 준호가 환히 웃는 순간들은 두 동생과 함께인 때다. 원재와의 거리도 점차 좁아진다. 준호를 "저기"라는 어색한 호칭으로 부르면서도, 원재는 아이의 눈길을, 흔적을 살핀다. 하지만 그 집도 끝내 준호의 집(Home)이 될 순 없다.
영화 '홈'(감독 김종우, 제작 아토ATO)은 갑작스럽게 보호자를 잃은 소년 준호를 중심으로 가족의 경계를 묻는 이야기다. 사회복지적 보호망과 별개로, 소년을 보듬고 지킬 그 어떤 정서적 장치도 부재한 상황을 통해 쉼 없이 물음을 제시한다. '부부와 그 부부 사이의 자녀'로 상상되는 정상 가족 이념이 극 중 소년에게 어떤 고독과 혼란을 안길 수 있는지 돌아본다.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다소 극단적이라 여겨질 수 있을지 몰라도, 준호와 같은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의 정서에 감히 다가갈 수 있는 영화임은 분명해보인다.
어른들의 결정은 준호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이다. 정착할 가정이 없다는 불안에 더해, 그를 괴롭히는 학교폭력은 준호를 극한의 고립감과 공포감으로 밀어넣는다. 영화에서 이 과묵한 소년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순간은 많지 않다.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탓이다. 극의 후반부 준호가 쏟아내는 설움과 두려움은 그래서 더욱 사무친다. 보살핌을 받기보다, 도리어 돌봄 노동의 수행자로 살아 온 아이의 호소다. 성인 관객이라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죄책감이 들 법한 장면이다.
'홈'의 가장 큰 미덕은 세 아역 배우의 연기다. 특히 준호 역 이효제의 연기는 훌륭하다. '가려진 시간' '덕혜옹주' '검은 사제들' '사도' 등 굵직한 영화들에서 주인공의 아역 시절을 그려냈던 그는 영화 전체를 이끄는 주연 배역으로도 손색 없는 표정을 보여준다. 많지 않은 대사, 크지 않은 움직임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을 연기처럼 피워낸다. 성호 역 임태풍, 지영 역 김하나의 활약도 내내 미소를 안긴다.
'홈'은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우리들'(감독 윤가은)의 제작사 아토에서 선보인 신작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면이 두 영화 사이의 닮은 점이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준호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홈'의 도입부를 통해 '우리들'의 첫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혈연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물음을 안기는 대목에선 '만비키 가족'(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을, 아동·청소년과 사회의 관계를 되묻는 지점이나 배우의 빼어난 연기를 담아냈다는 사실로는 '가버나움'(감독 나딘 라바키)이 연상된다. 각각 제71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한편 '홈'은 지난 5월30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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