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지난 2017년 하반기 방영됐던 JTBC '전체관람가'는 유명 감독들의 단편 프로젝트를 다루고 매회 그 완성본을 공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단편 영화를 중심 소재로 삼아 그 제작기를 상세히 소개했다는 점에서 JTBC 뿐 아니라 다른 지상파 채널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기획이었다. 제작 예산과 기한의 조건은 한정하고 소재와 출연진은 감독의 자유에 맡긴 가운데, 상업 영화판에선 시도조차 어려웠을 신선한 이야기들이 안방을 찾았다.
기획부터 참신했고 만듦새에 들인 공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치상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전체관람가' 방영 당시 감독, 제작자, 마케터, 영화 담당 기자 등 영화계에 종사하거나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번 주 '전체관람가' 봤어?"로 시작하는 대화가 매주 이어졌다. 전도연이 출연한 임필성 감독의 단편 '보금자리'나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이경미 감독의 단편 '아랫집'의 경우 화려한 캐스팅 덕인지 기대도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아랫집'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 돌아온 이영애의 아우라는 꽤 오랫동안 영화 관계자들 사이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의 대중성을 향한 영화계의 시선은 뜨거운 관심과 별개로 객관적이었다. 제작진에겐 너무한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그 반응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거, 우리만 보는 것 같아."
지난 4일 첫 방송된 JTBC '방구석1열'(연출 김미연)은 '전체관람가'가 미처 가 닿지 못했던, 보다 넓은 시청층을 공략할 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이다. '전체관람가'의 김미연 PD가 연출을 맡은 '방구석1열'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영화와 인문학을 토크로 풀어내는 모습을 담는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인문학 전문가 등이 출연해 영화를 사회, 문화, 역사 등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쉽고 재미있는 수다로 풀어본다. 영화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 캐스팅 비화 등 쉽게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소개된다. 영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자랑하는 윤종신이 '전체관람가'에 이어 MC석에 앉고, 장성규 JTBC 아나운서가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며 윤종신과 함께 진행을 맡는다. 변영주 감독, 정윤철 감독 등 현직 감독들에 더해 유시민 작가가 패널로 출격해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는다.
첫 번째 코너인 '띵작매치'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영화계와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두 작품의 키워드를 분석하여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두 영화의 연결고리를 파헤친다. 해시태그(#)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고, 다양한 인문학적 수다를 통해 인기요인을 살펴본다. 두 번째 코너인 '머글랭밥차'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콘서트, 뮤지컬, 공연, 드라마 등 문화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첫 방송의 '띵작매치' 주인공은 '강철비'(2017, 감독 양우석)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감독 박찬욱)였다. 남북정상회담이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연 직후, 북미정상회담 역시 앞둔 시점에서 더없이 시의적절한 영화 선정이었다.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이 해외 영화제 참석을 앞두고 시간을 쪼개 녹화에 참여하면서 보다 풍성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국제 정세와 군사 지식에 해박하기로 잘 알려져 있는 양 감독은 '강철비'가 소재로 삼은 남북 핵전쟁 시나리오에 대한 전반적 소개부터 캐스팅, 특정 대사의 인용처, 극에 쓰인 소품까지 영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분야와 무관하게 풍성한 지식을 자랑해 온 유시민 작가 역시 남북 상황을 둘러싼 사실적 해석은 물론 영화에 대한 문학적 감흥도 풀어놨다.
정윤철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와 '강철비'가 모두 '브로맨스'의 감정선을 바탕에 둔 이야기라는 점, 박찬욱 감독이 애초 '공동경비구역 JSA'에 남북 병사 간의 동성애 서사를 넣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영화를 읽는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관점 뿐 아니라 영화의 기획과 제작 단계에 얽힌 비하인드스토리 역시 흥미로웠다.
두 번째 코너 '머글랭밥차'에는 흥행한 공포 영화 '곤지암'(2018, 감독 정범식)의 정범식 감독, 배우 박성훈이 출연했다.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세트 안을 촬영한 에피소드, 호러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온 정 감독의 생각이 소개됐다. 많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개봉이나 방영을 앞둔 작품의 배우들, 앨범 발매를 앞둔 가수들을 게스트로 섭외해 부자연스러운 토크를 이어가던 것을 떠올리면 '대놓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머글랭밥차'의 기획은 도리어 기만적이지 않다.
지난 4일 열린 '방구석1열' 제작발표회에서 김미연 PD는 "'전체관람가'가 영화 입문 기본 과정이었다면 '방구석1열'은 심화과정"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1화를 본 뒤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전체관람가'가 제작 과정과 촬영 현장을 소개하며 이미 영화를 깊이 사랑한 관객들에게 지적 만족감을 선물했다면, '방구석1열'은 한 달에 많아야 한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포맷이라는 감상이다.
'전체관람가'가 중심에 두는 콘텐츠는 단편이었다. 문학에 비유해 장편이 산문이라면, 단편은 시에 가깝다. 보다 함축적이고, 때로 암호화되어 있으며, 여백이 많다. 하지만 '방구석1열'은 두 편의 장편 영화를 하나의 주제로 묶는다. 그에 그치지 않고 감독, 작가, 예능인, 아나운서 등 다양한 직군의 MC와 패널들이 질문 혹은 해설의 목소리를 낸다. 누구든 쉽고 가볍게 따라갈 수 있는 흐름이다.
이들은 때로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시공간에 대해 사실에 기반한 분석을 내놓기도 하고, 배우 캐스팅의 전말을 밝히기도 한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인물들 간 관계를 바라보거나, 기호학에 기반해 미쟝센을 분석하는 눈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쉽게 알고 싶은 시청자들에게도, 깊게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방구석1열'의 '띵작매치'에서 영화판 '썰전'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영화든 시사든, 읽는 방법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주 '방구석1열'의 '띵작매치'에서는 '더 킹'(2017, 감독 한재림)과 '내부자들'(2015, 감독 우민호) 두 편의 영화를 함께 다룬다. 모두 검찰 비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머글랭밥차'에는 21년만에 재결합한 솔리드가 출연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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