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벤투 그 친구 야망이 있는 선수였지."
지난달 29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스포르팅CP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조제 알발라드, 마리티무와 2018~2019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6라운드 마리티무전을 앞둔 관중석에서는 연신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포르투갈은 경기장 내 흡연을 허용한다. 애연가들이 마음껏 필 수 있는 환경이다. 관중석 곳곳에 담배꽁초가 보였다. 열혈 서포터들이 뭉친 골대 뒤 관중석에서는 담배는 물론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마리화나도 몰래 피운다고 한다.
그나마 지난 시즌과 달리 이들을 관찰하는 안전 요원과 경찰력이 보강, 거친 행동은 하지 못했다.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스포르팅은 2017~2018 시즌 최종전을 마리티무 원정 경기로 치렀는데 1-1 동점이던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주며 1-2로 졌다.
그냥 패배였으면 상관없지만, 이날 패배로 스포르팅은 3위로 밀렸다. 1위는 유럽 무대에서도 다크호스로 통하는 FC포르투였고 2위는 전통 명문 벤피카였다. 3위가 스포르팅이었다. 벤피카와는 승점 3점 차이였다.
프리메이라리가는 1위가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본선에 직행하고 2위가 3차 예선을 갖는다. 3~4위는 유로파리그(UEL)에 본선에 직행한다. UCL와 UEL가 천지 차이라는 것은 축구팬 대다수가 알고 있다.
물론 첼시, 아스널(이상 잉글랜드) 등 실력 있는 팀들이 UEL에도 있고 UCL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한 팀이 UEL에 합류,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그래도 UCL에 갔다면 방송 중계권료, 입장 수익 등을 더 얻어 구단 재정이 좀 더 나아지는 상황이었고 좋은 팀과 경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감이 컸지만 허무하게 졌다.
분노한 스포르팅 팬들은 경기 다음 날 클럽하우스로 몰려갔다. 당시 선수단은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흉기를 들고 난입한 이들로 인해 아수라장이었다. 선수대기실까지 들어가서 연막탄까지 터트렸다고 한다. 지난 4일에도 포르투갈 최대 스포츠 채널인 스포르트(SPORT) TV에서는 당시 난입을 주도했던 팬들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됐다. 해당 사건은 5월 15일에 벌어졌지만, 여전히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스포르팅은 전임 회장이 팬들의 난입을 방조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물러났다. 지난달 새로운 회장이 선임 됐는데 선거가 지상파TV를 통해 포르투갈 전역에 중계됐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은 팬들이라 경기장 분위기는 조금 경직돼 있었다. 경기 전 선수 소개까지는 박수가 나왔지만, 조세 페레이로 감독이 소개되자 휘파람과 야유가 나왔다. 경기 전까지 스포르팅 팬들의 성에 차지 않는 5위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회장과 감독의 호흡이 매끄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코레이라, 레코드 등 주요 스포츠지의 중심 소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도 자부심은 대단하다. 스포르팅 클럽하우스와 경기장에는 포르투갈 역대 최고 선수로 불리는 루이스 피구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경기장 난간에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된 포르투갈 최고의 선수 피구와 호날두'라는 문구도 보였다. 벤피카의 상징이 '포르투갈의 전설' 에우제비우(유세비오)라는 점에서 더 절묘하다.
두 라이벌 구단을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 축구대표팀 수장인 파울루 벤투 감독이다. 벤투 감독은 1994~1996년 벤피카에서 뛰었고 2000~2004년 스포르팅에서 생활했다. 지도자 입문도 2004년 벤피카 유스팀이었고 2005년 성인팀을 맡아 2009년까지 지휘했다. 2010~2014년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며 대중적 인지도를 올렸다. 이후 지난 4년을 밖으로 돌면서 포르투갈 축구 중심에서는 멀어졌다.
그래도 벤투 감독을 기억하는 팬들은 의외로 많았다. 특히 머리가 백발로 향하는 남자 팬들이 '벤투'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브루노 마네이네 씨는 "한국에서 여기까지 축구를 보러 왔는가"라고 물은 뒤 이어진 대화에서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고 있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중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한국 대표팀을 맡았는가"라고 반문했다.
소통의 문이 열리자 여기저기서 아는 척이 쏟아졌다. 에드가 만쏘우라는 팬은 "벤투 감독은 현역 시절 부지런했다. 우리 포르투갈 사람들을 보고 여유롭고 행동 양식이 다소 느리다고 하는데 벤투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은 벤투의 부지런함을 잘 활용해야 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라서 더 부지런했다. 그는 현역 시절부터 야망이 있는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다른 것보다 벤투 감독에 대해 포르투갈어로 '암비시오소(Ambicioso)'라고 말하는 팬들이 많았다. 포르투갈어는 워낙 어려워 유창한 지인에게 물어보니 '야망이 있는'이라는 뜻이었다. 한국에서 이 야망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경기장 안전 관리 팀장인 마르코 자델 씨는 "벤투와 한국은 꽤 잘 섞였다고 본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11명 모두가 표범처럼 뛰어다니지 않았는가. 독일을 이긴 것은 대단했다. 벤투의 섬세함이 한국에 섞이면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다. 호날두가 있을 때 포르투갈과 한 번 월드컵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호날두를 막을 수 있는지 보게"라고 말했다.
주앙 파울로 알메이다 포르투갈 올림픽위원회(POC) 부회장은 "벤투가 한국 대표팀을 맡았다니 놀라운 소식이다. 언제 부임했고 데뷔전을 치렀는가"라고 물었다. "코스타리카와 칠레를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했고 내주 우루과이, 파나마와 경기를 치른다"고 전해주자 "신기하고 흥미로운 소식이다"며 잠깐 흥분했다.
물론 금방 흥미를 잃은 알메이다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는 벤투 감독을 싫어했다. 왜냐하면 벤피카에서 뛰다가 스포르팅에 갔기 때문이다. 나는 벤피카 팬이다. 벤피카가 포르투갈이나 리스본 내에서는 스포르팅에 비해 훨씬 큰 구단이다. 스포르팅은 요즘 FC포르투나 SC브라가에도 밀린다"고 주장한 뒤 "그래도 (한국에서) 잘해주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스포르팅에서 벤투 감독에 대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많은 인물이 스포르팅을 거쳐 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시 포르투갈과 스포르팅, 벤피카 팬들의 뇌리에 박히기에 한국 대표팀은 꽤 매력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벤투 감독하기 나름이다.
이날 스포르팅은 마리티무를 2-0으로 이기고 4위로 올라섰다. 5일 열린 UEL 2차전 보르스클라(우크라이나) 원정에서도 종료 직전 극적인 골로 2-1로 이기고 아스널(잉글랜드)에 이어 2위가 됐다. 자델 씨는 조이뉴스24에 이메일을 보내 "스포르팅이 보르스클라전에서 절망 앞까지 갔다가 살아왔다. 벤투 감독도 스포르팅에서 그런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돌아왔으면 한다. 스포르팅 사람은 절대 위기에서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고 행운을 빌었다.
조이뉴스24 리스본(포르투갈)=이성필 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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