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는 얽힌 덩굴에서 나는 과일이다. 19세기의 전신(電信) 시설은 수천 길이의 전선이 기둥을 이어야 가능했다. 특히 남북 전쟁 당시 모든 소문이 이런 전선을 통해 퍼진다고 하여 '포도 덩굴(grapevine)'은 사자성어로 유언비어(流言蜚語)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미드나 영화를 보면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나는 그것을 소문을 통해서 들었어)'과 같은 표현을 자주 듣게 된다.
여기서 'vine(포도 나무)'에 주목해 보자.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빈티지(vintage)'는 포도주를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한다. 예를 들면 "추천하고자 하는 빈티지는 레드 와인의 경우 병 라벨 연도에서 5년 정도 된 것이다"라고 하듯 포도주가 생산된 연도나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어디서, 어떤 해에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냐에 따라 포도주의 맛과 가치가 달라진다.
오랫동안 잘 숙성된 포도주가 그 가치를 더 하듯 패션도 포도주처럼 잘 숙성되어 예전의 복고풍을 살리거나, 최근에 소개된듯하나 왠지 오랫동안 입었던 느낌을 주는 패션을 '빈티지 룩(vintage look)'이라고 한다.
1960년대 이탈리아 배우인 판탈로네(Pantalone)가 입어 크게 유행하여 그녀의 이름을 딴 판탈롱(pantalon)은 우리에게는 나팔 바지로 유명하다. 복고풍의 나팔 바지를 약간 현대식으로 살린 빈티지 룩으로는 벨보템 팬츠(Belle Bottom)가 있다. 이는 배꼽(belly bottom)이 보일 듯 말 듯 골반에 걸쳐서 입는 스타일로 바지의 밑위 부분이 짧고 끝은 나팔 바지처럼 넓은 빈티지 패션 중 하나이다. 또한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 멤버들이 자주 입은 재킷을 '비틀즈 재킷'이라고 한다.
수 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가 브랜드에서 가끔 특정 패션 아이템의 빈티지 버전을 선보인다. 빈티지를 자기고 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유행과 역사를 소유한다는 의미에서 그 가치를 더한다. 이런 이유에서 빈티지 사랑은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빈티지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과학이나 기술이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되고 그 가치를 다시 평가 받으며, 예전의 것을 되살려 현대 시대에 맞게 다시 재 해석하듯 패션 또한 포도가 무르익듯 오랜 시간을 통해 사랑 받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빈티지를 통해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유언비어는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수진 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영어 교육학 석사 출신으로 현재 중국 청도대원학교 국제부 영어 교사와 '조수진의 토익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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