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으로서의 미술 콜렉션] 콜렉션의 태도, 그 무용(無用)함의 역설에 대하여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한없이 즐겁지만 한없이 외롭다

# '귀한 작품이 나왔다'며 오래 거래했던 딜러가 간송 전형필에게 찾아왔다. 해방 직후의 일이다. 기뻐할 줄 알았던 간송이 "해방이 되었으니 더 이상 사 모을 필요가 없다"며 매입을 하지 않았다. 의아했던 딜러는 이내 숙연해졌다. 간송은 단순한 콜렉터가 아니었다. 훌륭한 작품, 국보급 유물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가진 모든 것을 던져 나라의 국격을 지키는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간송 주변에는 늘 많은 딜러들이 있었다. 그가 작품을 보는 안목도 있고 자금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장 가격보다 후하게 더 쳐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인 콜렉터와 매집상 보다 먼저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이전 소장자가 작품을 넘기고 나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후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작품이 밥 먹여주지 않던 시절, 그는 무용(無用)한 것에 인생을 걸었다.

# 얼마 전 열린 대구아트페에서 연륜 있는 갤러리의 2세 경영자와 우연히 마주쳐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영업을 했지만 나는 귀한 강의를 들었다. 그는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며 끊임없이 미래로 달리는 듯 했다. 한발씩 계속 앞서가며 작가를 발굴하고 프로모션하고 어렵게 설득하며 판매를 하다 보니 호황기가 와도 풍요롭지 않다고 했다. 그들이 응원했던 작가들은 결국에는 시장에서 평가와 성과를 얻지만 그 때는 이미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전 경영자 때부터 그렇다고 한다. 한없이 즐겁지만 그 때문에 한없이 외롭다고 했다. 시장의 중심에서 無用한 미술사를 설파하고 있었다.

10여년 전에 콜렉션 했던 이건용작가의 <인간항>. 내 사랑이 없어도 시장이 열광하니 다른 콜렉터에게 양보했다.

콜렉터는 항상 가난하다

며칠 전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한국인 대표와 통화를 하던 중 대화 말미에 '콜렉터는 누구인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콜렉터는 항상 가난한 사람이다".

어려운 질문을 캐주얼하게 던진 내게 돌아온 그의 대답이다. 그 역시 수천만불의 순자산 보유자인데 유동성 때문에 늘 고민이 많단다. 그 주변의 수퍼 리치 콜렉터들 중에도 늘 돈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고 한다. 콜렉션해야할 작품이 줄을 서있기 때문에 하나를 사기도 전에 이미 다음 지출을 준비해야 하니 늘 돈이 없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SNS 친구가 '아트페어와 옥션 행사가 많아 좋긴한데 점 점 지갑이 얇아져서 아예 관람 자체를 자제해야겠다'는 글을 올렸다. 120% 공감한다. 필자도 어떻게든 바쁜 이유를 찾아서 아트페어를 아예 가지 않은 적도 있다.

무엇이 콜렉터를 가난하게 하는가. 작품을 사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사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감상을 하다가 어느 날 작품이 내게 말을 걸어 오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작품을 산다는 것은 작가의 삶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미술의 역사가 될 것을 응원하는 진정성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재물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 마음은 가는데 지갑을 열지 않는다면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작품 사랑이 진심이어서 가난한 것이 아닐까.

작품이 도착하고 2주만에 30대의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천재작가 Matthew Wong의 'homecoming'. 콜렉션 하며 가장 마음이 아픈 기억 중 하나다.

기부의 마법

# "국력은 칼이 아닌 문화에서 나온다는 '문화정치'는 르네상스시대 메디치가의 문화후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후 선진국의 뮤지엄들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 경제인들의 이름을 가진 기증관(혹은 기증실)을 통해 국가정체성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상을 확산시켰다.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올해 초부터 불어 닥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통 큰 기부로, 기증문화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안현정(예술철학박사, 문화평론가) 칼럼 중-

전세계적으로도 역대급 규모인 이건희회장 콜렉션 기부는 우리 사회에 큰 자극을 주었다. 컬렉션 기획전시 예약이 몇 초 만에 마감되는가 하면 미술시장을 달구는 젊은 MZ세대들의 ‘아트테크’로 까지 이어진 것 역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슈가 낳은 문화 호황은 무엇보다 대중들의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확장시켜 놓았다. 국격을 올려준 역사적 기부 이벤트였다.

미국에서는 탑클래스 콜렉터들이 메이저 미술관의 후견인이 되어 준다. 최고의 작품을 콜렉션해서 미술관에 기증한다. 가능성 있는 젊음 작가들의 작품도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미술관이 풍성해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미슬관과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미술사 지도를 펼쳐 놓고 보물이 어디 어디 묻혀 있다고 발표한다. 콜렉터들이 기부를 하긴 했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다른 작품이 더 많다. 그들은 미술관에 기증을 하면서 스스로 '역사적 작가'를 콜렉션하게 되는 매직을 시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눈치 챈 마켓은 늦을세라 이들을 따라간다.

평생을 미술계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김구림작가의 음양시리즈 콜렉션 중 하나. 평단에서는 이미 역사가 되고 있는데 시장도 곧 뒤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각 작가]

가격 등락 이전에 애정이 있었다

박물관 큐레이터이자 예술철학을 공부한 안현정박사도 꾸준하게 콜렉션을 한다. 그는 작품 평론을 할 때 작가에 주목한다. 좋은 큐레이터는 나를 버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작가와 작품, 유물이 주인공이 되고 평론하는 자신은 없어지고 그 안에 녹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빗장을 열어 현재화 시킨다.'

유물과 근현대 미술을 대하는 그의 관점은 콜렉션 태도에 그대로 적용된다. 꾸준하게 작품을 모아온 안박사의 마지막 목표는 '안현정콜렉션'을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이다. 훗날 현재의 작가들에게 시간의 빗장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스스로 미술사를 보관하는 미술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간송이 있고 이건희 회장이 있고 안박사 같은 이들이 있다. 자금이 항상 부족한 수퍼 콜렉터와 갤러리스트도 있다. 플렉스와 재테크를 위해 콜렉션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든지 가격 등락 이전에 애정이 있었다.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작가가 아닌가. 산 작품이 오르지 않으면 실패한 콜렉션인가. 작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순간이 사랑고백을 하는 것이고 미술사의 한 장면이 되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마귀와 싸우기 위해 역사로 무장하라

저금리에 양적 완화까지 했으니 주식과 부동산 상승은 말할 것도 없고 미술품과 암호화폐까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돈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자금줄 조이면 자산가격은 떨어진다. 미술시장도 그랬다. 작품 자체로 행복하면 좋겠지만 작품 가격이 떨어졌을 때 시장에 상처받고 돌아서지 않기를 바라며 '미술사에 남을 작가를 보는 눈을 기르자'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미술계에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한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작가 중 한 명인 Purvis Young의 작품. 정규교육 받지 않은 이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시장 평가도 시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사진=각 작가]

콜렉션한 작가와 작품이 역사가 되고 시장에서 인정받기를 소망한다는 것은 외로움을 감내하는 것이다. '예비 역사'와 취향, 그 무용(無用)한 것에 투자해놓고 즐거워해야 이겨낼 수 있다. 이 무용한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라는 마귀와도 싸워야 한다. 필자는 시장이 주는 상처에 회복탄력성을 갖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 전시를 보면 고독하고 치열한 작가들의 삶에 저절로 숙연해지고 경외감이 든다. 마켓 지표에 일희일비하는 세속화된 마음을 고해성사하고 정화시킨다.

이렇게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시장을 바라본다. 예술적으로 오래 살고 싶어서 마켓에 주목한다. 시장에 예민한 콜렉터로서 오늘도 기꺼이 역사를 사기 위해 빚을 진다. 이 무용한 즐거움을 위해.

김종범 디인베스트랩 대표

◇김종범 디인베스트랩㈜ 대표는 기업 투자, 문화컨텐츠 투자, M&A 자문 전문가이다. '미술 경계인'으로서 객관적 시각으로 20년간 경험한 미술 콜렉션 노하우를 공유 중이다. 인스타그램 @artinvestlab, 이메일 jb2350@naver.com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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