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김윤석이 이순신 장군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고 본분을 지키려 했던 이순신 장군의 묵직한 리더십과 강인함이 '노량' 그리고 김윤석을 통해 완성돼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20일 개봉된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이하 '노량')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김윤석,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김성규, 이규형, 이무생, 최덕문, 안보현, 박명훈, 박훈 그리고 문정희가 출연해 탄탄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여기에 여진구가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 역으로, 이제훈이 광해군 역으로 특별출연해 깊이를 더했다.
'노량'은 1,761만 명이라는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대기록을 수립한 '명량', 2022년 여름 최고 흥행작이자 팬데믹을 뚫고 726만 관객을 기록한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노량'의 배경이 되는 '노량해전'(음력 1598년 11월 19일)은 임진왜란 7년간의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성과 있는 승리를 거두며 전쟁의 종전을 알린 전투로, 조선, 왜 그리고 명나라까지 합류해 총 약 1,000여 척이 싸운 역사적 해전이다. 김한민 감독은 여러 사료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조합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100분 해상 전투 액션을 완성해 놀라움을 선사했다.
김윤석은 굳건한 신념과 현명한 성정을 지닌 조선 최고의 장군이자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연기했다. '명량'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을 이어 임진왜란 마지막 해, 최후의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으로 변신해 우리가 원하던 현명한 리더를 연기했다. 신중하면서도 대담한 카리스마 뿐만 아니라 깊은 고뇌를 지닌 인간 이순신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며 다시 한번 '믿보배' 저력을 과시했다. 다음은 김윤석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이순신 장군 역할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얘기한 바 있는데 이 역할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이순신 장군 역을 맡는다는 것이 영광스럽다. 앞서 두 분(최민식, 박해일)이 이순신을 연기했는데, 세 번째라서 생기는 부담보다는 이순신이라는 배역 자체가 가지는 부담이 훨씬 컸다. 감독님과 얘기를 정말 많이 했는데 '명량'에서의 이순신, '한산'에서의 이순신, 그리고 '노량'에서 그리는 이순신의 모습이 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낌이 왔다. '노량'은 이런 모습을 그리는구나 싶었고 마음에 들었다."
-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기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이 있나?
"감독님이 권해준 책이 너무 많다. 이렇게 많아도 되나 할 정도였다. 또 이순신을 연구하는 분들이 많더라. 학회도 다 따로 있고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싸우기도 한다. 저도 감독님이 권하는 자료 덕분에 많이 알게 됐다. 막연하게 성웅, 민족의 영웅 정도로만 알았는데 7년 동안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다시 알게 됐다. 그때 400만 명이 죽었다. 그 당시 조선의 인구가 800만에서 1천만 정도로 본다. 거의 반이 죽은 거다. 총, 칼에 의해서도 있지만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또 어마어마한 전염병이 돌았다. 그만큼 처절한 전쟁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걸 다 봤을 테니, 이 전쟁을 꼭 종결시키기 위한 고민이 많이 생각났다."
- 20kg 갑옷을 입고 촬영하다가 코피가 났다고 하던데 어떤 상황이었나?
"여수에서의 밤 촬영이었는데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코피가 나더라. 응급실을 갔는데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으라고 하더라.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었냐'고 하더라. 바지, 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갑옷을 입는다. 또 모양새를 위해 쪼여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혈압이 올라가서 코 점막이 터진 거다."
- 갑옷을 얼마 정도 계속 입고 있었나?
"벗을 수가 없어서 촬영 때는 계속 갑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그걸 입을 때 세 사람이 붙는다. 목이 아프니까 투구 정도는 벗는다. 응급실 간 날 제 분량은 다음날로 넘겼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코피가 멎더라. 잘못했으면 뒤로 넘어갔을 거다."
- 갑옷을 계속 입고 있던 것도 그렇고 체력적, 감정적으로 힘든 촬영이 많았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꿈 장면이다. 아들 면이 왜적의 칼에 죽는다. 그걸 경주에서 찍었는데, 아버지가 자식이 왜적의 칼에 죽는 걸 눈으로 보는 건 굉장히 잔인한 고통이다. 감정 이입이 되니까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라. 내 눈앞에서 아들이 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제일 힘들었다."
-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
"아이스링크 경기장을 세트로 만들어서 찍었다. 물을 안 쓰고 배가 파도에 움직이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짐벌을 설치하고 배를 올려서 촬영했다. 배가 계속 움직이다 보니 나중에는 멀미가 나더라. 하지만 장군이 비틀거리면 안 되지 않나. NG가 나기도 하고 안 넘어지려고 짚어도 안 된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힘들었던 것 같다. 멍해지고 몽롱해진다."
- 후반 북 치는 장면 역시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굉장히 많이 북을 쳤어야 할 것 같은데 어땠나?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 북을 잘 치지 않으면 웃기고 어설프다. 4번 타자의 스윙이 나와야 하다 보니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그 당시 무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아군들에게 '힘을 내자'라고 독려할 방법은 북소리밖에 없다. 혼신의 의지를 담아서 쳐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북을 달아놓자'라는 얘기도 했다. 배우들도 촬영 쉴 때 북을 치더라. 북소리가 주는 묘한 힘이 있다. 한 300번 친 것 같은데 어깨 근육통이 생기더라."
- 원테이크 백병전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그때 감정이 궁금하다.
"명나라, 조선, 왜의 병사를 따라가다가 이순신으로 이어지는데 지옥이었다. 그 장면은 NG가 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무술팀이 그걸 며칠 찍었다. 포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나는데 정말 정성 들여서 찍은 장면이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병사들이 다 뻗었다. 그래서 ‘그 장면이 호응을 얻지 못하면 정말 이건 힘이 빠지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그 부분들을 얘기해주시더라."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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