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4일, 1일차
아마도 기자가 대학생 시절 한창 후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우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2010년 월드컵 개최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결정된 것이.
신경 쓰지 않았다. 남아공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남아공? 아프리카 대륙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 인종차별의 아픔이 있는 그 곳. 땅을 파면 다이아몬드가 나온다는 나라. 그 정도였다. 특별히 남아공에 가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고 별로 궁금한 것도 없었다. 남아공은 내 인생과 전혀 무관한 그냥 먼 나라였다.
그 때는 몰랐다, 남아공에 가게 될 줄을. 나와 남아공이 이렇게 질긴 인연을 만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 남아공에서 월드컵 개최가 결정되고 마침내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축구 기자가 됐고, 2010남아공월드컵을 취재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그래서 기자는 남아공으로 향한다.
2010년 6월4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설렜다. 그리고 또 두려웠다.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TV에서만 간혹 볼 수 있었던 아프리카는 어떤 모습일까. 전혀 접해볼 수 없었던 아프리카 대륙이라 상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드넓은 초원을 사자가 포효하며 휘젓고, 하얀 모래가 뒤덮인 사막의 모습? 호기심이 컸다. 특히나 최근 들어 남아공은 치안이 불안하다는 뉴스가 연일 전해지고 있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등에 메고, 또 기자 정신으로 무장하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남아공으로 떠났다.
남아공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먼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비행 시간이 무려 17시간이나 걸린다. 인천공항에서 홍콩까지 약 4시간, 그리고 홍콩에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 약 13시간이 걸린다. 홍콩으로 가는 티켓과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를 타기 전 재미있는 소문을 하나 들었다. 남아공 승무원은 불친절하다는 것.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지만, 가장 친절한 미소를 자랑하는 직업인이 비행기 승무원 아닌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남아공 승무원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았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승무원은 순식간에 승객인 기자의 기선을 제압했다. 가방을 의자 밑에 두자 소리를 치며 짐칸에 올려놓으라 명령했고, 순간 당황해 주춤거리자 답답했는지 자신이 직접 짐칸에 가방을 처박았다. 무릎덮개를 하나 달라 그러니 집어 던지는 듯 건네는 카리스마도 보였다. 무서웠다. 이후 그녀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주문할 수 없었다.
승무원의 카리스마에 눌려 눈치를 보며 잠을 설쳤다. 그러는 사이 비행기는 장대한 아프리카 대륙으로 나를 안내했다. 옆에 앉아있던 선배 기자가 밖을 보라며 나를 깨웠다. 기자가 태어나 두 눈으로 처음 본 아프리카. 거대했다. 드넓은 초원이었다. 깨끗하고 신비로웠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아프리카를 비추는 태양이 그 장엄한 위용을 드러냈다.
이곳에 오기 전 아프리카가 춥다는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 아프리카는 겨울이라서 두터운 파커를 입고, 잘 때는 전기장판을 깔아야 한다고 들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에 아프리카를 경험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도가 지나간다는 아프리카 대륙인데... 그래서 겨울파커는 준비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뿔싸! 아프리카인데도 춥단 말인가. 혹시나 몰라 준비한,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외투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역시나 아프리카였다. 외투를 오래 입지 못했다. 점점 치솟는 태양과 함께 남아공은 금방 뜨거워졌고, 아프리카다운 날씨로 우리를 뜨겁게 환영했다.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은 월드컵 분위기 그 자체였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국가를 응원하거나 취재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축구공, 각국의 국기, 월드컵, 그리고 남아공의 노란 물결로 넘쳐났다. 설사, 남아공 월드컵을 모르고 온 이들도 공항에 도착하면 1초 만에 '아 여기서 월드컵이 열리는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진짜 남아공 땅을 밟았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기자가 남아공 땅을 밟게 될 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②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요하네스버그(남아공)=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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