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로 뛸 것이라고 따로 통보를 받은 적이 없어요. 저도 신문 보고 알았죠.(웃음)"
2년간 경찰야구단 생활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손승락(28. 넥센)은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김시진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로부터 마무리 보직을 정식으로 지시 받은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경찰청에서 선발로 뛴 경험을 살려 선발진 합류를 기대하며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캠프에 참가해서도 '설마 나를 쓰겠어?' 하는 생각이 앞섰죠. 그동안 제가 보여드린 게 없었잖아요."
손승락은 24일 잠실 두산과의 19차전에서 넥센이 6-3으로 앞선 8회 말 주자 없는 투아웃 상황에 등판, 1.1이닝을 깔끔히 막아내며 시즌 26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날 세이브 추가로 마침내 구원 부문 단독 선두에 올라 사실상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2경기가 남은 24일 현재 팀 승수 52승 중 꼭 절반의 승리를 지켜낸 손승락은 승률이 4할이 채 되지 않는 하위권 팀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구원왕 타이틀을 따낸 것이다.
대구고 시절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했던 손승락은 2001년 현대에 2차 3라운드(전체 25번) 지명을 받았지만 권영호 감독이 이끄는 영남대행을 선택했다. 이후 착실히 투수 수업을 받으며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등 대학 최고의 우완투수로 성장했다. 당시 싱싱한 어깨를 앞세워 최고구속 147km의 빠른 볼을 무기삼아 프로무대에서의 즉시전력감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손승락은 프로 데뷔 첫해인 2005년 26경기에 등판, 5승 10패 평균자책점 5.43의 성적표를 남겼다. 직구 이외엔 달리 내세울 만한 변화구를 갖고 있지 못해 김시진 당시 투수코치로부터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배워가며 마운드에 올랐다. 그래도 빠른 볼에만 의존하는 피칭 습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체력저하로 기대보다 못한 결과를 낳았다.
"최고라고 착각했었던 거죠. 프로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죠. 더 열심히,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가득했어요. 그것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고..."
데뷔 2년째였던 2006년 시즌 초반 연승행진을 벌이며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팔꿈치 이상이 왔다. 모든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는 위기를 맞았다. 결국 손승락은 수술대에 올랐고 재활의 시간을 보내며 3시즌간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2006 아시안게임에 나가겠다는 목표로 아파도 무리하게 던지겠다고 나섰던 것이 과욕이었던 거죠."
재활 이후 경찰청에 입단한 손승락은 첫해엔 몸 상태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작년엔 21경기에 등판, 8승 4패 평균자책점 3.95의 성적으로 서서히 본 궤도에 접근한 뒤 소속팀 넥센으로 복귀했다. 스스로 계획했던 목표를 향한 철저한 자기 관리의 결과였다.
"2010 시즌에 모든 걸 맞췄죠. 다행히 유승안 (경찰청) 감독님도 최대한 제 컨디션을 챙겨주시면서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또 월드컵 참가도 도움이 컸죠."
2009년 9월 김희걸(상무) 노경은(두산) 윤지웅(동의대) 등과 함께 월드컵대회에 출전한 손승락은 대학시절 국제대회 경험을 살려 3경기 선발 등판, 총 19이닝을 던져 1승 1패 평균자책점 2.37의 성적을 거두고 돌아왔다.
"어떤 대회든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는 건 의미 있잖아요. 몰랐던 선수들과도 친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는 것도 좋고, 외국 선수들을 보면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죠. 가능하면 또 가고 싶어요.(웃음)"
이용찬(두산)의 뒤를 이어 세이브 2위를 유지하고 있던 9월초, 그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을 묻자 손사래를 치며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열심히 하다보면 따라 오는 것이지 절대 쫓는다고 '내 것'이 되지 않아요. 무리하게 감독님이 등판 기회를 주시는 것도 솔직히 원하지 않아요. 야구를 올 한 해만 하고 끝낼 게 아니잖아요. 좋은 결과가 온다면 기쁘겠지만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야구 하는 것이 더 큰 소망입니다."
손승락은 스스로 도전의식이 강한 경상도 사나이의 특유의 오기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 오기와 근성은 2년간 경찰청에서 자신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도록 해줬다. 마음을 가다듬은 결과 개인적인 명예를 얻는 것보다는 팀 승리를 지켜낼 수 있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다며 자신이 품고 있는 신념을 펼쳐 놓았다.
"투수란 늘 자신의 최고 전성기 적의 피칭을 기억하며 그 감을 살리려고 하죠. 하지만 몸 상태는 세월에 따라 바뀌어요. 예전만 기억하다 보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박혀버리는 거죠. 항상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넥센의 '수호신'이자 2010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거듭난 손승락은 팀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우리 팀이 알고 보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하거든요. 선수들도 잘 생기고 말이죠. 내년엔 더 많은 관중이 오셔서 저희를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의 수확을 바라보기보다는 더 멀리, 더 길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손승락은 구속을 유지하며 마흔 넘어서까지 마운드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의 성공은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조이뉴스24 홍희정 객원기자 ayo3star@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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