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팀이 위기에 빠진 순간 생애 최고의 역투를 선보이며 희망을 심어줬다. 윤석민(KIA)은 이제 단순한 '에이스'의 존재감을 넘어섰다.
넥센과의 경기를 앞둔 30일 광주구장 KIA 덕아웃 분위기는 어두웠다. 김상현과 로페즈, 최희섭이 이날 동시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이범호도 허리 통증 탓에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은 4연승으로 승승장구하고 있고, KIA는 어렵게 쌓아온 승수로 아슬아슬하게 2위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꺼번에 터진 부상 악재 탓에 에이스 윤석민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윤석민은 명실상부한 현역 최고의 우완투수다. 2006년 이후 찾아볼 수 없었던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 방어율, 탈삼진 1위)과 1999년 정민태 이후 맥이 끊긴 국내 투수 20승에 도전 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록은 윤석민에게 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종종 "트리플 크라운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스물 다섯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만큼 경기를 스스로 책임져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윤석민은 마운드를 지배하고 있었다.
윤석민은 이날 넥센전에서 올 시즌 개인 3번째 완봉승을 기록하며 팀에 닥친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냈다. 최고 150km에 이르는 직구(42개)와 슬라이더(52개)를 주무기로 넥센 타선을 요리했다. 넥센은 윤석민의 구위에 압도당해 이렇다할 득점 찬스를 만들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전날 경기서 KIA는 선발 로페즈가 2이닝만 던지고 옆구리 통증으로 강판하는 바람에 불펜진의 소모가 컸다. 불펜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윤석민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했다. 중심타자들이 송두리채 빠진 타선이라 득점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경기를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윤석민은 7회 종료 후 투수 교체 타이밍을 살피는 조범현 감독에게 자신이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 감독은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자청해 경기를 마무리하겠다는 윤석민의 마음가짐이 고마울 뿐이었다.
KIA는 윤석민의 완봉 역투로 2연승을 달리며 이날 LG에 패한 선두 삼성에 승차없이 따라붙었다. 자칫하면 수렁으로 빠질 수 있었던 분위기에서 윤석민이 빛을 발했다.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이다. 윤석민의 가치는 에이스 이상이었다.
조이뉴스24 한상숙기자 sk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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