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이탈리아는 1990년대 세계 남자배구의 흐름을 주도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유럽 팀들이 강세를 보였고 1980년대 미국이 그 자리를 이었다면 1990년대는 이탈리아의 시대였다.
이탈리아는 1970년~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세계배구계에 명함을 내밀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국리그(세리아 A) 발전과 함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탈리아는 1990년부터 시작된 월드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네 차례 더 정상에 올랐다. 또한 1990년 브라질, 1994년 그리스, 1998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했다. 이탈리아에 앞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나라는 구 소련이 유일할 정도로 그들이 남긴 업적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유독 올림픽에선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배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 도쿄대회 이후 2008 베이징대회까지 이탈리아 남자대표는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건졌다.
특히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과 1996 애틀랜타올림픽은 이탈리아에게 한으로 남은 대회다. 우승을 예약해놨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두 번 모두 네덜란드에게 발목을 잡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전승으로 A조 예선 1위를 차지해 B조 4위로 8강에 턱걸이한 네덜란드를 만났다. 3세트까지 2-1로 앞서고 있던 이탈리아는 방심한 탓인지 4세트를 2-15로 졌고 랠리포인트로 진행된 5세트에서 결국 듀스 접전 끝에 15-17로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철지부심한 이탈리아는 4년 뒤 네덜란드와 이번에는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조별리그에서도 이탈리아는 네덜란드를 3-0으로 꺾은 적이 있기 때문에 우승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승전 결과는 달랐다. 두 팀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고 결국 4년 전 8강전처럼 듀스 접전 끝에 네덜란드가 파이널 세트를 17-15로 승리, 올림픽 첫 금메달을 땄다.
네덜란드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인 귀도 괴르첸은 '조이뉴스 24'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돌아보며 "이탈리아는 너무 일찍 승리를 예감했다"며 "선수들이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져도 그만이었다. 5세트에 들어가자 이탈리아 선수들은 눈에 띄게 흔들렸다"고 기억했다.
랠리 포인트와 리베로 제도 등이 새로 도입되면서 배구 규정이 많이 바뀐 1998년 이후 이탈리아는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두 차례 더 금메달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 때는 네덜란드가 아닌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와 어느새 세계 최강자 자리에 오른 브라질이 이탈리아의 앞길을 막았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이탈리아는 우승 일순위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조란 가이치 감독이 이끈 유고슬라비아는 블라디미르 그라비치, 이반 밀류코비치 등의 신구 조화 속에 단단한 조직력으로 준결승에서 이탈리아를 꺾었고 여세를 몰아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선 베르나르두 헤센데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이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울렸다.
이탈리아는 2008 베이징올림픽과 자국에서 열린 2010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사령탑을 안드레아 아나스타시에서 마루오 베루토로 바꿨다.
베루토 감독은 대표팀을 맡으면서 세대교체를 시작했다. 주전 세터로 드라간 트라비카를 중용했고 알렉산드로 페이에 몰리는 공격을 미켈 라스코, 이반 자이체프 등 레프트들에게도 분산시키는 등 변화를 줬다.
이탈리아는 이번 런던올림픽 준비를 위해 월드리그 성적을 포기했다. 월드리그 2, 3주차 프랑스, 한국 원정경기에는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을 대거 포함시키면서 주전들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줬다.
당시 한국 원정에 베루토 감독 대신 팀을 이끌고 온 파올로 몬타그나니 코치는 "1진은 이탈리아에 남아 따로 훈련을 하기로 했다"며 "아무래도 올림픽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이탈리아는 이번 2012 런던올림픽에서 개최국 영국과 불가리아, 호주, 아르헨티나, 폴란드와 함께 A조에 속했다. 미국, 브라질, 러시아, 세르비아, 튀니지, 독일이 포함된 B조와 견줘 상대적으로 수월한 팀들과 조별리그를 치른다. 그러나 8강부터는 만만치 않은 팀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다.
베루토 감독은 최근 이탈리아 안시 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어느 팀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8강전이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고비가 될 것 같다"며 "하지만 그보다 앞서 조별리그부터 잘 치르겠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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