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신수원 감독 "교육 현실 변하려면 사회 시스템 바뀌어야"(인터뷰)


영화 '명왕성'으로 입시 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 비판

[권혜림기자] 영화 '명왕성'은 출중한 감독 신수원의 신작이기 전에 전직 교사의 뼈아픈 회고다. 10여 년 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경쟁 위주의 교육 환경에 매몰된 아이들의 비극을 그렸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메시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극단적 설정에서 극도로 현실적인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감독이 약 1년 간 쓰다 말다를 반복한 끝에 글로 태어났고, 지난 2012년 여름을 지나 영상으로 완성됐다. 지난 11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기 전까지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되고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적 관심을 얻은 영화다.

"'명왕성'의 시나리오를 쓰는 데 1년쯤 걸렸어요. 잘 안 풀려서 중간에 쉬기도 했고, 초고가 재미 없다는 반응에 다시 쉰 적도 있었죠. 생각날 때마다 꺼내 깨작 깨작 만지다 결정적인 결말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탄력을 받았어요. 애초 리얼리티를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어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야겠다는 의도가 있었죠. 개봉 전 여러 영화제에서 선보이긴 했지만 어려운 영화는 아니니 많이 와서 봤으면 해요."

'명왕성'은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사립고에서 1% 상위권 학생들의 비밀 스터디 그룹에 가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천문학도를 꿈꾸며 살아온 준(이다윗 분)은 명문 사립고에 편입한 후 모든 것이 완벽한 유진(성준 분)을 보고 열등감을 느껴 비밀 스터디에 가입하려 한다. 그러나 준은 현실을 둘러싼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되며 점차 괴물이 되어 간다.

'명왕성'은 신수원 감독이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한계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어두운 이면, 그 속에서 점차 괴물로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인성보다는 성적으로만 인정받는 세상, 성인이 되기 전부터 무한 경쟁 사회를 치열하게 체감해야만 하는 청소년들의 운명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그려졌다.

교사였던 신수원 감독에게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이란 무엇보다 익숙한 소재였다. 감독 스스로도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며 "교사 경험이 없던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천재적 재능을 지닌 아이가 학교의 교육 시스템에서 점점 망가져 간다는 이야기는 신 감독이 오래 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던 내용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실제로 있어요. 어릴 때는 눈이 총총 빛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동태눈이 되고, 벌써부터 뭔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있죠.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아쉬웠어요. 어리고 젊고 살 날이 많은데 벌써 무기력해져 있는 모습이요. 물론 아이들의 모습을 다는 알 수 없어요. 저는 어른이니까요. 어떤 면들을 보면서는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죠. '아이들은 천사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때론 잔인한 면도 있고,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해요. '명왕성'엔 그런 것들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영화에는 아역 출신으로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이다윗을 비롯해 성준과 김권, 김꽃비 등이 출연한다. 모두 튀는 곳 없는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다윗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모은 교내 그룹 진학재, 그 안의 비밀 스터디 모임에 대해 알아가며 충격에 휩싸이는 인물 준으로 분했다. 성준은 극 중 죽음을 시작으로 극을 이끄는 유진 테일러 역을 맡았고 김권은 비밀 모임의 일원으로 숱한 악행에 앞장서는 명호를 연기한다. 김꽃비가 해킹에 능한 여고생 수진 역을 맡았다.

김권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인물 명호와 꼭 어울리는 비주얼로 몰입을 돕는다. 깔끔하게 빗어 올린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 뿔테 안경은 종종 지어보이는 조소와 함께 죄의식 없는 명호의 악행들을 더욱 소름돋게 만든다.

"명호 역은 그런 설정을 염두에 두고 마네킹처럼 생긴 배우를 캐스팅했어요. 찔렀을 때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원했고요. 머리스타일과 안경으로 김권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죠. 어릴 때 보던 미국 동화책 속 삽화에 등장하는 금발 머리 아이들, 그런 패턴화된 이미지를 계속 연상하며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만들려고 했어요. 김권은 극 중 명호처럼 집안이 넉넉하거나 강남에 사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욕심이 많은 친구였죠. 연기도 잘 따라와 줬고요."

성준 역시 텅 빈 눈빛에서 남다른 에너지를 뿜어내며 극 중 인물 유진의 심리를 묘하게 그려냈다. 신 감독은 "성준이 무척 열심히 했고 캐릭터에 애착이 있었다"며 "어려운 캐릭터인데 현장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알렸다.

성준이 연기한 유진 테일러는 영화 속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유진의 죽음이 영화의 시작을 이끄는 만큼 관객의 시선도 가장 먼저 그의 사연에 머물게 된다. 유진의 심리 변화는 관객에게 '명왕성'이 직유하는 끔찍한 현실, 그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죽는 장면을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아도 됐겠지만 토끼 사냥이라는 소재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초반과 중후반, 눈이 뒤덮인 산에서 아이들이 토끼를 사냥하는 모습은 교육 시스템의 잔인한 현실을 비유한다.

"토끼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 교육 시스템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토끼는 발의 구조 때문에 아래로 몰면 빨리 도망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이를 이용해 토끼를 사냥하죠. 다른 학생들을 떨어뜨려야 더 우수한 인재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 토끼 사냥과 닮아 있어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의 구조 속에서 누군가를 탈락시키고 누군가는 진입시키는 구조가 그렇죠. 그 안에서 아이들은 폭력을 행사하고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절대 따라오지 않아요."

신수원 감독은 이날 한국의 입시 제도가 개선돼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하게 이야기했다. 교사로서 체감한 문제들인 동시에 영화 '명왕성'이 다 담지 못한 그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신 감독은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까지 대학에 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며 "그러려면 아이들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학교가 입시 학원으로 전락된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가 우리가 말하는 전인교육, 전인격이 완성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위해선 사회 전반적인 복지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하죠. 모든 아이들이 결국 수능과 대학을 바라보고 달려가는데, 그것이 바뀌어야 전인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명왕성'은 지난 11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신수원 감독 "교육 현실 변하려면 사회 시스템 바뀌어야"(인터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