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더 떨어질 데가 있겠어요?" 롯데 자이언츠 김시진 감독은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지난 17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을 앞두고 덕아웃을 찾은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이렇게 말했다.
당시 연이어 부진한 피칭을 하고 있던 정대현을 두고 한 이야기다. 하지만 정대현은 이날도 김 감독에게 실망을 안겼다. 롯데가 0-2로 뒤지던 8회초 1사 1루에서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정대현은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정성훈에게 내야안타를 내준 후 오지환에게 3점홈런을 두들겨맞은 것. 순식간에 점수는 0-5로 벌어졌고 롯데의 패배는 확정적이 됐다.
롯데가 막판 추격에 나서 9회말 3점을 쫓아갔지만 결국 정대현이 맞은 3점홈런을 극복하지 못하고 3-5로 졌다. 이 경기 패배로 5연패에 빠진 채 전반기를 우울하게 마감한 롯데였다.
하지만 올스타 휴식기가 끝난 뒤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정대현은 앞선 등판 때의 충격을 떨쳐내는 의미있는 투구를 보여줬다.
롯데는 23일 대전구장에서 한화를 맞아 5-2로 앞서갔다. 경기는 후반으로 접어들었고 3점 차 리드를 지켜낸다면 롯데는 비교적 쉽게 승리를 거두고 연패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선발 쉐인 유먼에 이어 7회말 무사 1루에서 두 번째 투수로 나온 김승회가 안타 2개와 볼넷 1개, 그리고 몸에 맞는 공으로 2실점하며 흔들렸다. 순식간에 5-4로 점수가 좁혀졌고 계속해서 1사 만루의 동점 내지 역전 위기에까지 몰렸다.
김시진 감독은 여기서 정대현 카드를 꺼내는 승부수를 던졌다. 딱히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반기 막판까지 컨디션을 좀처럼 끌어 올리지 못했던 정대현이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런데 정대현이 눈부신 피칭으로 급한 불을 꺼줬다. 1사 만루에서 대타 조정원 그리고 이학준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종료시켰다. 이어 8회말에도 마운드에 오른 정대현은 선두타자 정범모를 2루 땅볼 처리하고 임무를 완수한 후 이명우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롯데는 이날 정대현에 이어 이명우와 김성배가 남은 이닝을 책임지며 한화의 추격을 뿌리치고 한 점 차 승리를 지켜냈다. 팀 승리로 정대현은 지난 6월 27일 사직 NC 다이노스전 이후 오랜만에 홀드를 추가했다.
이날 정대현의 투구내용은 의미가 있다. 두둑한 배짱으로 위기를 쉽게 넘기는 본연의 모습을 다시 보여줌으로써 후반기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가 중간계투로 승리 방정식에 제대로 가담해준다면 롯데 불펜에 걸리는 과부화를 확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 정대현이 제 역할을 해줘야 롯데 마운드 전체가 균형이 잡힌다.
SK 와이번스 시절과 견줘 현재 정대현은 예전만 구위가 못한 건 사실이다. 무릎 부상도 있었고 나이도 많아졌다. 하지만 100세이브 87홀드(38승 24패)라는 통산 성적은 허투루 쌓아올린 게 아니다. 김 감독도 그런 정대현의 풍부한 경험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롯데의 후반기 순위경쟁에서 정대현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이날 한화전에서 뚜렷하게 보여줬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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