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홍명보호가 알제리전의 패배 상처를 안고 베이스캠프인 브라질 포스 두 이구아수로 돌아왔습니다. 산술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모두가 조용합니다. 분위기도 가라 앉았고요. 인터뷰에 잘 응하는 편인 기성용(스완지시티)도 24일(한국시간) 훈련이 끝난 뒤에는 취재진의 부름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곧바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나름대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홍 감독 역시 문득문득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 나름대로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럼에도 패싱 게임에 직접 선수로 나서 즐거운 분위기 연출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의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은 운에 맡기거나 기적에 기대야 합니다. 선수들이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찾기 위한 자기 최면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도전은 해봐야죠. 홍명보호는 그렇게 할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 때문입니다.
이번 월드컵 취재는 유난히 항공 이동이 잦습니다. 취재진은 늘 대표팀보다 먼저 이동해야 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는 합니다. 그러다보면 옆자리나 승객 대기실에서 멀리 한국에서 오거나 미국 또는 브라질 인접국가에서 응원을 온 원정 응원단이나 교민들을 만나고는 합니다.
러시아와의 1차전을 끝내고 쿠이아바에서 이구아수로 돌아오는 길에 옆에 앉았던 60대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원욱(63)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월드컵을 보기 위해 쿠이아바까지 찾았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부인께서는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그냥 대화만 나눴습니다.
이 씨는 학창시절에 축구 선수로 활약하다 부상으로 관둬야 했다고 합니다. 배고픈 시절 운동이라도 하면 무엇이라도 될 줄 알았기에 열심히 했지만 운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수 생활을 접고 1973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 LA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났고요.
축구를 워낙 좋아해 장성한 아들, 부인과 월드컵이 열리는 해 6월에는 2주에서 한 달 가량 휴가를 낸다고 합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이번 브라질월드컵까지 빠지지 않고 봤다고 합니다. 당연히 한국 경기를 빼놓지 않고 봤고요, 축구 강국들의 경기도 직접 관전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고 합니다.
이 씨는 대표팀에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살다가 보면 축구 한 경기가 현지 지역 사회에 다양한 인상을 남긴다. 1994년 미국월드컵를 봤던 미국 지인들이 한국인들은 정말 끈질기다며 찬사를 보냈었다. 그 기억이 오래갔다. 나야 늙어가는 입장이지만 자라나는 내 자식들이나 어린 세대들에게는 '조국이 이 정도로 강하다'고 각인시켜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이죠.
알제리와 2차전이 열렸던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빠져 나오는 비행기에서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 사는 교민이 옆에 앉았습니다. 안정만(51) 씨는 리우에서 음식점을 한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러시아전을 보더니 "한국 따봉"을 연발하더랍니다. 그런데 알제리전을 본 뒤에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안 씨의 말은 이렇습니다. "브라질은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나라라 축구 실력과 내용으로 나라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이야 삼성, LG 등 대기업이 많이 진출했고 K-POP 등이 퍼져서 많이들 알지만 축구에 대해 가진 인상은 확실하지는 않다. 알제리전을 황당하게 패했어도 벨기에전에서 한국의 투혼과 승부근성만 발휘를 해줘도 고마울 것 같다." 그러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기사에 꼭 써주세요"라고 덧붙입니다. 월드컵 기간이라 안씨의 말이 더욱 가슴 깊이 느껴집니다.
벨기에전에는 상파울루에 사는 교민 5만명 중 상당수가 응원을 올 것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원정 응원단까지 포함하면 우리 홈구장같은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고요. 이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한국에서 원정 응원 온 붉은악마 원정대는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버스를 타고 20시간 가까이 이동해 상파울루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불편함과 차 안의 탁한 공기를 견디면서도 그들이 고생을 감내하며 응원에 나서고 있는 것은 오직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기 때문이지요.
이제 홍명보호가 이들 팬들의 기운을 받아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고, 숨어있던 기적이라도 꿈틀거릴지 모를 일이지요.
<⑬편에 계속…>
조이뉴스24 포스 두 이구아수=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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