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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 in(人) 브라질]⑮울지 마세요 태극전사, 축구는 계속되니까요


환호와 슬픔이 공존했던 공동취재구역에서 본 풍경들

[이성필기자] 홍명보호가 브라질월드컵에서 일찍 멈춰 섰습니다. 더 나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네요.

기자는 지난달 30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전지훈련부터 대표팀과 계속 같이 다녔습니다.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합니다. 한국이 첫 승을 거두면 면도를 하겠다고 대표팀 관계자들과 선,후배 기자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승리는 없었습니다. 사실 수염을 기른 이유는 좀 터프하게 보여 브라질에서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려는 나름의 방어수단이었습니다. 브라질을 떠날 때는 말끔해지겠죠.

다시 대표팀 얘기로…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은 상황에 따라 요동쳤습니다. 지난달 28일 튀니지와의 국내 출정식 겸 평가전에서 0-1로 패할 당시만 해도 그럴 수 있다는 여론이 컸죠. 그런데 10일 가나와의 평가전 0-4 완패 뒤에는 기대감이 뚝 떨어졌습니다. 지인들에게서 오는 모바일 메신저 내용을 보면 '이번 월드컵은 기대가 안된다'는 내용 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흐름은 요동칩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선전하며 1-1로 비긴 뒤 희망의 빛을 본 것이지요. 그래서 2차전 알제리전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됐고요. 지인들의 메신저 내용도 '어! 괜찮게 하는데. 이길 수 있겠는데'로 달라집니다. 국민 모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결과는 모두 아시듯 허망한 패배였습니다.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혹시 모를 기적을 꿈꿔봤지만 아시다시피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상대국의 실력보다 국민들의 엄청난 기대감과 질책 등 여론의 변화를 더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국가대표'이니 그 정도는 견뎌내야 한다는 말들은 쉽게 나옵니다. 평균 25.9세의 어린 대표팀이 그런 폭풍같은 변화를 감당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벨기에전이 끝나고, 쓰디쓴 16강 탈락이라는 허탈감을 뒤로하고 선수들을 만나러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으로 갔습니다. 지난 두 경기 믹스트존에서 본 선수들의 표정은 극과 극을 오갔습니다. 러시아전 직후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젊은이들 특유의 발랄함도 묻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열기가 끌어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참패한 알제리전에서는 모두 의기소침 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기성용(스완지시티)이나 독일어에 능통한 손흥민(레버쿠젠)은 국내 취재진 말고도 외신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패한 직후에 뭔가 말해야 하는 마음은 선수가 아니면 모르겠지요.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기자 역시 애써 침착하려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얼마나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벨기에전 후 만나본 선수들, 네, 그들의 눈은 대부분 충혈되고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경기에 나섰든 벤치를 지켰든 모두 그라운드에서, 선수대기실에서 많이들 울었던 모양입니다. 선수들의 눈을 바라보니 심한 떨림이 보입니다. 냉정하게 그들의 소감을 전해야 하는 기자도 침착하자 해놓고 조금은 떨렸습니다.

특히 대표팀 막내 손흥민(레버쿠젠)이 그랬습니다. 질문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계속 울먹거립니다. 감독에게, 선배들에게 모두 미안하다고요. 왜 미안할까요, 알제리전에서 데뷔골도 넣었는데요.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 돌파 후 슈팅도 자제하면서 팀플레이에 충실하기 위해 중앙선 아래까지 내려와 수비하느라 애를 썼는데 말입니다.

손흥민은 이제 한국 나이로 스물세살 입니다. 앞으로 한국 축구의 한 축을 책임질 자원입니다. 측면에서 뛰기는 했지만 중앙 공격수로도 얼마든지 활용 가능합니다.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좌절하면 안 되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실력도 보여줬고 경험도 쌓았다는 겁니다. 이 실력을 4년 뒤 다시 꽃피우려면 절대로 기 죽거나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비단 손흥민 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대표팀 23명 중 18명은 처음 월드컵을 경험했습니다. KBS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처럼 월드컵은 "경험하는 무대가 아닌 실력을 증명하는 무대"인 것은 맞지만 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습니다. 대표팀을 맡아 1년만에 하나의 팀을 만들어야 하는 수장 밑에서 압박감이 컸을 겁니다. 노력을 안한 것도 아닌데 만족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물론 냉정하게 본다면 월드컵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섰기 때문에 부진한 성적의 책임은 각자가 축구인생에서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울고 난 뒤 보이는 것은 새로운 길일지 모릅니다. 태극전사 모두가 발전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믹스트존을 떠났습니다. 공통점은 어느 누구도 팀을 얘기했지 특정 개인의 탓은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더 나아질 수 있다며 희망을 제시한 것도 한마음이었습니다. 이 아픔이 선수들에게는 값비싼 영양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의 브라질 월드컵은 끝났어도 축구는 계속되고 다음 월드컵이 또 다가올 거니까요. 선수들과 같이 한 번 외쳐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조이뉴스24 상파울루(브라질)=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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