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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 in(人) 브라질]⑰열광의 축구 해방구, 팬 페스트를 가다


2002 월드컵 길거리 응원서 유래한 펜 페스트, 희비를 느껴보다

[이성필기자]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브라질은 전역이 축구의 물결에 빠져 있습니다. 브라질 방송들의 보도를 보면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이기는 순간마다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열성적인 팬들이 모인 곳 근처에는 경찰들이 순찰을 하며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고 있고요.

한국 축구대표팀이 16강 탈락해 대부분의 국내 취재진이 귀국한 29일(한국시간), 기자는 브라질-칠레의 16강전을 브라질 시민들과 함께 관전하기 위해 브라질월드컵 조직위원회가 상파울루 시내 중심가에 마련한 '팬 페스트(Fan Fest)'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자국 경기를 어떻게 즐기는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팬 페스트의 시초는 지난 2002 한일월드컵에서 붉은악마가 보여준 거리 응원이었습니다. 한국 경기마다 수십, 수백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장관을 이루며 응원하니,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이를 차용해 2006 독일월드컵부터 경기 개최 도시의 특정 장소에 팬들이 모여 자유롭게 멀티비전으로 월드컵을 관전하며 응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길거리 응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유심히 봤더니 정말 축구의 나라답게 대단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란색 브라질 국가대표 유니폼 일색입니다. 대표팀 유니폼보다는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빨간색 티셔츠로 맞춰 입는 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 외에도 상파울루 연고의 코린치안스, 상파울루FC, 팔메이라스 등 클럽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더러 보입니다.

팬 페스트 광장은 최대 2만5천명을 수용합니다. 수용 인원의 한계를 넘으면 절대로 광장 안으로 사람들을 더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브라질 연방 경찰과 상파울루 주 경찰이 두 구역으로 나눠 철저하게 경비를 합니다. 노트북이 들어있는 기자의 가방도 샅샅이 뒤질 정도로 경계가 삼엄합니다. 열혈 청년 두 명은 브라질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힘이 있다는 연방 경찰 앞에서 까불다가 결국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수색을 당하더군요.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위해 동원한 삼엄한 공권력이 무섭긴 무섭습니다.

철통 경비를 지나 광장 안으로 들어가니 신세계입니다. 음식도 팔고 놀이기구도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길거리 응원전은 광장에서 무대와 전광판을 바라보며 가수의 공연 등에 열광하다 경기를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술도 마시고 무대의 공연도 즐기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즐기더군요. 남미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보입니다.

꼭 브라질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칠레를 응원하는 칠레 사람들도 보였고 다음 경기인 콜롬비아-우루과이 팬들도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펜 페스트의 목적 중 하나가 티켓을 구매하지 못했거나 경기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즐기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이번 대회 최고의 유행 바람을 탄 응원가 중 하나인 칠레의 "치치치칠~ 레레레레레"가 울려 퍼집니다. 칠레 응원단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지요.

잠시 뒤 경기가 시작됩니다. 우리라면 "대~한민국"이라며 일사분란하게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을 텐데 가만히 보고 있습니다. 축구를 잘하는 국가들의 팬이라 그런지 표정에도 여유가 보입니다.

전반 18분 브라질 다비드 루이스(첼시)의 기막힌 선제골이 터지자 폭죽이 터지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기자가 응원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아랑곳 없이 정신없게 안고 뜁니다. 그 와중에도 혹시 소매치기라도 당할까봐 주머니를 꼭 쥐고 있었고요. 그런데 광적인 기쁨이 1분을 못갑니다. 브라질이 당연히 이길 것이고 골도 더 넣을 것인데 뭘 흥분하느냐는 듯 다시 경기에 집중합니다. 우리 같았다면 함께 선수 이름도 외치고 응원곡도 메들리로 부르고 그랬겠죠.

하지만, 브라질 팬들의 차분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32분에 칠레 알렉시스 산체스(FC바르셀로나)의 동점골이 터지죠. 이때부터 'Não 하워드(아니야 하워드!)'라는 말들이 터져 나옵니다. 이날 주심인 하워드 웹의 판정에 불만이 터져나온 거죠. 그래도 브라질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커서 그런지 여유가 넘칩니다.

그런데 후반 들어 경기가 점점 안 풀리면서 팬들의 초조함이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헐크(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골이 핸드볼 파울로 판정되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왜 핸드볼이냐 이거죠. 기자 옆에서 소리를 지르며 보고 있던 히메렌스 파르나스 씨는 "하워드의 눈이 이상하다. 헐크가 정말 멋있게 볼 트래핑을 했는데 말이다"라며 심판을 성토합니다.

결국, 1-1 동점으로 끝나 승부는 연장전으로 갑니다. 군중심리가 무섭다고, 혹시 브라질이 패하면 분위기가 어떻게 흐를지 몰라 기자는 팬 페스트 광장 밖의 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물론 펍 근처에도 사람은 많더군요.

연장전에서도 골이 터지지 않아 두 팀은 가장 가혹한 승부차기를 벌이게 됩니다. 서로를 안고 기도하는 연인, 맥주를 들이키며 중얼거리는 아저씨, 네이마르를 끊임없이 연호하는 청년이 보입니다. 그 와중에도 펜 페스트 광장 안의 놀이기구에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축구도 축구지만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해방구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승부차기 키커의 슛 한 번마다 희비가 엇갈립니다. 브라질 선수들이 키커로 나오면 이름을 연호합니다. 반면 칠레 선수들이 키커로 나오면 두 손을 흔들며 저주하는 동작을 취합니다. 그래서인지 칠레는 두 번째 키커까지 실축하거나 훌리우 세자르(토론토)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이후 결과야 아시는 대로 3-2, 브라질의 승리였습니다.

브라질인들은 결승까지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지 웃으며 남은 열기를 즐깁니다. 맥주를 뿌리는 사람, 가스가 담긴 뿔을 부는 사람 등 기쁨의 표현 방식도 다양합니다. 기자는 어디선가 날아온 아기 주먹만한 얼음에 손등을 강타 당하는 사고를 댕하고 말았고요. 누군가의 승리 기쁨 표현이 제게는 큰 상처가 됐습니다.

그래도 브라질에서 같이 응원 열기에 동참해보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광화문 광장에서 등번호 19번 '안정환'의 이름이 박힌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즐거워하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믿으시든지 마시든지, 당시 기자의 별명이 '3초 안정환'이었거던요. 반곱슬 헤어스타일에 외모까지 꽤 닮아 보였기 때문이죠. 물론 3초 이상 보면 전혀 닮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브라질의 축구 열기를 한국 대표팀이 좀 더 느끼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거리 응원의 원조격인 한국이 응원 실력을 제대로 다 전해주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래저래 뜨거운 브라질 응원 열기와 차갑게 식어버린 한국의 축구 열기가 극명하게 교차되는 월드컵 중반이네요.

조이뉴스24 상파울루(브라질)=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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