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지난 주말 열린 K리그 클래식 32라운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이례적인 일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한 것이다. 그것도 2경기 연속 이런 일이 발생했다. 18일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 FC서울의 경기, 그리고 19일 열린 울산 현대와 상주 상무의 경기에서 우연찮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두 경기에서의 불미스러운 장면은 우연치고는 절묘하게 그 내용이 같았다.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한 이유는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격하게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심판이 상대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일삼았다며 분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전남-서울전에서는 경기 도중 한 전남의 남성팬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주심에게 안경을 들이댔다. 안경을 쓰고 똑바로 보면서 판정을 하라는 의미였다. 울산-상주전에서는 경기가 끝난 후 한 남성이 심판에게 달려들다 저지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남, 상주 팬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결정적 장면이 있었다. 전남-서울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전남의 스테보가 동점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애매한 판정이었다. 전남 측에서는 강력하게 온 사이드라고 주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울산-상주전에서는 더 억울한 장면이 등장했다. 후반 23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울산의 이용이 상주 곽광선에게 밀려 넘어졌는데, 주심은 가차없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는 명백한 오심이었다. 고의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은 몸싸움 과정이었다. 페널티킥을 선언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울산은 이 골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거뒀다.
심판의 판정은 분명 애매했다. 어떤 한 쪽이 억울할 만한 판정이었다. 그렇기에 전남과 상주의 팬이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라운드로 난입한 팬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는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심판도 오심을 할 수 있으며, 잘못된 판정을 내렸더라도 심판은 절대적으로 보호 받을 권리가 있고,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 역시 난입 관중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난입 관중에게는 강력한 징계가 동반돼야 한다. 다시는 이런 행동이 나오지 않게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라운드 난입이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분을 참지 못하며 그라운드로 난입한 이유에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다른 경기 때보다 더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이들이 난입한 것을 용인할 수는 없지만, 왜 그런 비상식적인 방법까지 써가며 판정에 항의를 했는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2경기 연속 경기장 난입이 벌어진 것은 분명히 '우연'이다. 그런데 우연치고는 너무나 같은 이유와 행동의 연속이었다. 이런 우연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전남과 상주 역시 분을 참지 못한 이유도 이 우연의 일치와 다르지 않다.
전남-서울전 주심은 이민후, 대기심은 유선호였다. 울산-상주전 주심은 유선호, 대기심이 이민후였다. 이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한 라운드에 두 명의 심판이 2경기에 이틀 내리 함께 배정된다는 것은 쉽게 발생할 수 없는 특별한 경우다.
또 다른 우연의 일치일까. 공교롭게도 이들 두 심판이 함께 배정된 2경기 모두 '울산'과 관련된 경기였다.
전남은 울산과 상위 스플릿 전쟁을 펼치는 팀이다. 서울과의 경기 전 전남은 승점 44점이었고, 울산은 41점이었다. 전남은 상하위 스플릿 분리까지 남은 2경기에서 승점 4점을 거두면 리그 6위까지 주어지는 상위 스플릿에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전에서 애매한 판정으로 인해 승점 1점을 얻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 경기 패배로 전남이 자력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졌다.
울산 역시 상주전에서 오심에 의한 페널티킥이라는 이득을 얻어 2-1 승리를 거뒀다. 이 승리로 울산은 승점 44점을 기록하며 리그 6위로 뛰어 올랐다. 전남과 승점은 같아졌지만 골득실에서 앞선 울산이 6위로 올라섰다. 울산이 상위 스플릿 진출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울산은 마지막 성남전에서 승리하면 자력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왜 같은 심판 두 명이 울산과 관련된 2경기에 함께 배정이 됐고, 두 경기 결과로 볼 때 왜 울산이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것처럼 보일까. 한국프로축구연맹 권오갑 총재의 다른 직함은 현대중공업 사장이다. 또 K리그 메인 스폰서인 현대오일뱅크의 전 사장이기도 하다. 울산 현대와 무관하지 않은 총재다.
일각에서 울산과 관련된 판정에 의구심을 갖는 이유다. 연맹과 심판들이 총재의 팀을 상위 스플릿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표를 제시하는 이유다. 총재의 팀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설'일 뿐이다. 흔히 말하듯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이런 심증을 떨쳐내기 힘든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같은 심판을 울산과 관련된 2경기에 배정하고, 2경기 모두 오심 논란이 벌어졌고, 그 2경기 결과로 인해 특정팀이 이득을 보고, 2경기 모두 심판판정에 분노한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했다.
우연의 일치인가. 우연으로 가장한 필연인가. 누가 봐도, '울산 살리기'라는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판단하게 만드는, 이상하고도 애매한 과정의 연속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심판 배정이 그렇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왜 그런 심판 배정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심판위원회에서 정하는 일이다. 그 심판들이 배정된 2경기에서 모두 오심 논란과 관중 난입 등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오해를 받을 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래도 그런 일(특정팀 밀어주기)은 없었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주의 한 관계자는 "페널티킥은 100% 오심이다. 그 정도 접촉으로 페널티킥을 준다면 한 경기에 페널티킥 100개도 나온다. 페널티킥이 아니었다. 또 전남-서울전 대기심이 주심으로 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유선호 주심이 후반부터 경기를 끌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울산에 유리하게 판정을 한 것이다. 그들은 부정하겠지만 팬들의 눈까지 속이지 못할 것"이라며 격분했다.
전남의 관계자 역시 "스테보 골은 온 사이드였다. 1년 농사를 짓는 경기였는데 심판 판정으로 인해 1년 농사를 망칠 위기에 놓여 있다. 전남처럼 지방 구단, 힘이 없는 구단이라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경기를 본 심판이 울산전으로 갔다. 그리고 또 오심이 나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들 빼고 다 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K리그 클래식은 시즌 중 가장 예민할 시기다. 상위 스플릿에 들어가느냐,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느냐가 결정나는 시기다. 해당 팀들에게는 1년 농사가 걸린 일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불미스러운 일이 연이어 생긴다면, 그것도 오심으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이것은 누구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의 일부라고 해도 심판들이 한 클럽의 1년 농사를 망칠 권리는 없다.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신을 해소하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불신이 팽배하다. 지금처럼 중요한 때일수록 심판들은 더욱 자세하고 보고 명확하면서도 공정한 판정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니 이런 저런 '뒷말'이 무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총재의 팀을 구한다는, 믿기 어려운 '뒷말'도 결국 심판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씁쓸한 '자화상'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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