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신지애…한국 여자 프로골프를 빛낸 별들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국 여성의 힘을 만방에 과시한 주역들이다. 박세리가 지난 1998년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그의 뒤를 따라 골프계에 입문한 소녀 골퍼들이 즐비했다.
이른바 '세리 키즈'로 불리는 이들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단연 박인비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 정상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정상급 기량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박인비는 한국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골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다른 데뷔 그리고 슬럼프
박인비는 데뷔부터 남달랐다. 2008년 LPGA에 데뷔한 그는 첫 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덜컥' 우승을 차지했다. 될성 부른 떡잎인 그에게 각종 스폰서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성공은 곧바로 슬럼프로 이어졌다. 이듬해부터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더니 2011년까지 침체가 이어졌다. 각종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지만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았다.
슬럼프 극복을 위해 잠시 미국을 떠난 그가 선택한 곳은 일본. 부담을 버린 일본 무대에서 다시 정상에 서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2012년 들어 조금씩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2013년 역대 그 어떤 선수보다 화려한 성과를 올리며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날개를 활짝 폈다.
◆화려한 날갯짓
박인비는 2013년 5개의 메이저대회 가운데 3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의 우승 트로프를 모두 차지했다. 특히 LPGA 투어 63년 사상 첫 메이저 대회 3연승에 시즌 6승으로 한국 선수로는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도 경신했다. 그 해 한국 골퍼들이 거둔 11승 가운데 절반 이상을 박인비 혼자 올린 것이다.
이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박인비는 LPGA 올해의 선수상에 상금왕까지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박인비로 해가 뜨고 박인비로 해가 진 2013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LPGA는 이런 박인비에 대해 "2013년 최고의 스토리 메이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슬로스타트, 그래도 세계랭킹 1위
꿈같은 한 해를 보낸 박인비는 2014년 출발이 다소 주춤했다.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에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아쉽게 4위에 그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3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탄력을 받는 듯했지만 이후 소강상태에 빠졌다. 59주간 이어간 세계랭킹 1위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 내줬다.
하지만 박인비는 위기에서 강했다. 슬럼프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6월 매뉴라이프에서 우승하며 LPGA 투어 시즌 첫 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마저 우승하면서 시즌 첫 메이저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 여세를 몰아 10월28일 루이스에 내줬던 세계랭킹 1위를 5개월만에 탈환했고, 지난 2일 푸본 타이완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마저 품에 안으며 시즌 3승을 달성했다. 현재 추세라면 올 시즌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도 가시권에 둘 만큼 막판 스퍼트가 거세다.
◆신혼여행도 미룬 '악바리'
2014년은 그 어느 때보다 박인비에게 남다른 한 해다. 스윙 코치 남기협 씨와 10월 결혼하며 가정을 꾸렸고, 초반 부진의 끈을 끊고 가을 들어 급상승세를 탔다. 지난해의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정 생활과 골프를 병행하게 됐지만 박인비는 처음 골프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을 때의 각오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결혼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다. 스윙 자세부터 바꿨다"며 "세계랭킹 1위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에 걸맞은 멋진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결혼 뒤 신혼여행도 미룰 만큼 골프에 모든 것을 건 박인비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오늘도 힘차게 필드로 향하고 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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