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중동 축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침대 축구입니다. 걸핏하면 넘어지고 엄살을 부리거나 일어나지 않으려 하고, 시간을 끌 필요가 있을 때면 아프지 않은데도 아프다고 연기를 하는 것 말이죠.
축구단과 관련 있는 왕족 부호들의 씀씀이, 소위 말해 '오일머니'의 위력도 머리를 스칩니다. 오일머니가 전 세계 축구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습니다. 세계 클럽 축구를 주도하는 FC바르셀로나(스페인)의 유니폼 가슴에는 카타르 항공(카타르)이,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는 에미레이트항공(UAE),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에는 에티하드항공(UAE) 로고가 붙어 있는 것이 상징적이죠.
한국에서 비행 거리 10~11시간이 걸리는, 가깝지 않은 중동이라 체감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같은 아시아권으로 묶여 있는 중동이기에 오일머니의 위력을 남의 일처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셰이크 만수르 맨체스터 시티 회장이 단순히 맨시티에만 국한되지 않고 뉴욕시티(미국), 멜버른 시티(호주), 요코하마 F마리노스(일본) 등 주요 거점 지역의 클럽 지분을 확보, 구단을 운영하는 지주 회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죠.
기자는 201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이후 5년 만에 다시 카타르 땅을 밟았습니다.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 신태용호가 준우승을 차지한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4강전, 결승전을 취재했습니다. 바로 전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전북 현대의 전지훈련을 일주일 동안 취재했고요.
카타르, UAE는 걸프협력회의(GCC)에 속하는 국가입니다. 최근 국제적인 저유가로 고민이 깊다고는 하지만 2주 가까이 중동에 머무르며 체감한 바로는 산유국의 위세는 여전했습니다. 두바이나 아부다비는 여전히 유럽과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잇는 무역 중심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카타르 도하는 5년 사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신축 건물은 곳곳에서 올라가고 있고 2022 월드컵 유치에 따른 인프라 구축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로 확장 개항한 하마드 신국제공항은 두바이 국제공항을 따라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요, 5년 전에는 없었던 도하-두바이 구간 셔틀 항공편이 등장, 40~50분 간격으로 24시간 오갑니다. 15분이면 끝났던 입, 출국 수속이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1시간 가까이 걸리더군요. 두 도시 사이에 도는 오일머니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국가의 공통점은 단순한 산유국에서 파생되는 경제 효과를 누리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 창조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스포츠 인프라 구축, 특히 축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에는 조금만 이동하면 곳곳에 천연 잔디 축구장이 널려 있습니다. 등급에 따라 왕족, 프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축구 연습장들이 펼쳐져 있더군요. 전북이 아부다비 전지훈련에서 사용한 에미레이트 왕궁 훈련장은 일반인은 절대 사용 금지라고 이미 보도한 바 있죠.(하단 관련 기사 참조) 두바이에서의 알 아흘리 훈련장도 마찬가지고요.
신태용호가 카타르에서 사용했던 훈련장 중 일본과 결승전을 앞두고 전술을 다듬었던 테크니컬 커미티는 2011 아시안컵 당시만 해도 없었던 훈련장입니다. 이 훈련장 건립 후 독일 대표팀, 리버풀(잉글랜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등 유럽 유수의 팀이 훈련 캠프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커미티 외에도 10여 곳의 훈련장이 새로 조성됐습니다.
UAE와 카타르는 자국 클럽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훈련 시설 확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리적 이점에 스포츠 마케팅을 활용하는 거죠. 축구팀에서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변모하고 있고 그 중심에 축구팀이 있는 겁니다. 전북 출신 권경원이 활약 중인 알 아흘리는 다종목 유스 클럽 육성에 집중하고 있더군요.
카타르는 U-23 챔피언십이 끝나자마자 2004년 설립한 축구 선수 육성 기관인 아스파이어 아카데미 유스팀 주최의 국제대회를 개최합니다. 참가 클럽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에스투디안테스(아르헨티나), 셀틱(스코틀랜드) 인테르 밀란(이탈리아), 벤피카(포르투갈),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 가시와 레이솔(일본) 등 각 대륙에서 대회에 참가합니다. 단순히 유스팀 간의 교류가 아니리라는 것은 딱 봐도 알겠지요. 아스파이어 아카데미에서 좋은 실력자가 나타나면 AS유펜(벨기에), 데로프리타 레오네사(스페인) 등 하부 클럽에 위탁 교육을 보내 육성하는 등 유소년 축구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직접 확인했던 중동의 축구 관련 현상을 상세히 기술한 것은 한국 축구가 중동과 단순히 경기만 하고 마는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위축된 K리그는 중국의 거액 투자에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K리그 팀들은 후원사 구하기에 애를 쓰고 있지만 역시 쉽지 않습니다. 앞서 전북의 중동 항공사 스폰서 접촉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만난 에미레이트항공의 마케팅 국장급 인사는 "K리그 몇몇 구단의 후원 요청 신청서를 봤다. 그런데 직접 와서 왜 후원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되지 않나. 전북이 처음으로 부사장을 만났다"라고 전하더군요.
축구 외교는 또 어떤가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2011년 FIFA 부회장 5선 도전에 가로막힌 뒤 한국은 국제 축구계에서 서서히 고립됐습니다. 중동 왕가의 관계도 제대로 이해 못했고요.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는 있지만 AFC 내에서는 철저히 신인 격입니다. 이번 U-23 챔피언십이 열리는 동안 AFC 집행위가 열렸고 정 회장은 시간 단위로 쪼개며 많은 축구계 인사들을 만나 외연을 넓히려 애를 썼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 AFC 인사는 "정 회장은 기업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축구 외교에 전념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되묻더군요.
세계 축구 흐름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실리 외교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입니다. 중동에 도는 거액의 자금이나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를 그냥 두고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한국 축구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교류를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일본은 이번 챔피언십 기간, 우라와 레즈 등 몇몇 유스 클럽 선수들이 대회 조직위의 초청을 받아 참관을 했다고 합니다. 참 발빠릅니다. 중국도 지난해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알 아흘리(UAE)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계기로 교류를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멀어서, 돈이 들어서, 효과가 없어서라는 것은 핑계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는 생각입니다. 한국 축구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중동 국가들과의 비즈니스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외부에서 동력을 찾아 내부에 변화를 가하며 외연을 넓히기를 바라는 것이 과욕은 아니겠죠.
조이뉴스24 도하(카타르)=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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