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의 축구대표팀이 입때껏 순항하기까지 주장이자 중원 사령관 기성용(스완지시티)의 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의 과거에 대한 논쟁은 접어두고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뛴 시점부터 기성용은 의젓한 '어른'이 됐습니다.
기성용의 기량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올 시즌 뇌진탕 증세로 애를 먹고 무릎 부상 등으로 후반기 소속팀 주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킬러'로 각인되는 등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과거 더 좋은 팀으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스완지에서의 지속적인 경쟁을 선택했던 기성용이구요.
현 시점에서 2013년 2월 6일 영국 런던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대표팀의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 한국은 0-4로 대패했고 기성용은 중원에서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특급 미드필더들을 상대했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기성용은 훈련에 불참하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도 풀타임을 소화했습니다.
크로아티아전이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그를 만나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 경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느냐"는 거죠. 그 때 기성용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크로아티아로부터 많이 배웠다"라는 겁니다.
"배웠다"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팀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정상권 팀과의 겨루기를 통해 발전의 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자세입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은 아시아 정상권 팀입니다. 꾸준히 세계 수준에 도전을 하고 있구요. 우리도 실력을 보여주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보다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가 더 늘어나 개인 기량도 좋고 경험도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기성용을 예로 들어도 그렇습니다. 셀틱(스코틀랜드)을 시작으로 선덜랜드, 스완지시티(이상 잉글랜드) 등을 거치며 유럽 무대에서 많은 경기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골을 넣는 등 강팀에 강한 면모도 과시했습니다. 어디 기성용만 그런가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를 경험하는 등 큰 선수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기량만 따져 본다면 한국 대표팀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물론 스페인은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우승을 일군 세계적인 강팀입니다. 정교하고 빠른 패스를 앞세운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는 많은 국가의 롤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강함에 대한 존중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싸워보기도 전에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대표선수들로부터 "배웠다" 내지는 "배워보겠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과 경기를 갖는 잘츠부르크에 입성하기 전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있게 "스페인에 이기려고 간다"라고 했습니다. 축구공은 둥글 때문에 한국이 스페인을 이기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대등하게 싸워서 결과물을 내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의지입니다.
기성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배울 것 말고 무엇을 스페인에 보여줄 수 있고 또는 가르쳐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수비라인이 (능력을) 보여줬으면 한다. 공간을 주고 볼만 돌리면 결과는 뻔하다. 상대 수비수인 헤라르드 피케, 부스케츠 등을 상대로 얼마나 많은 골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가 경기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습니다.
만약 한국이 스페인을 이긴다면 현장 취재를 하는 기자의 노동 강도가 훨씬 높아지겠지요. 그래서 스페인전이 끝난 뒤 기성용을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 보여준 것이 잘 됐느냐"고 말이죠. "무엇을 배웠느냐"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군사훈련 입소까지 연기하고 대표팀에 합류한 기성용이 2012년 스페인과 평가전에 나서지 못했던 아쉬움을 털어내고 스페인을 상대로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기성용 말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배움이 아닌 '만족감'을 묻게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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