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난 왜 1이닝도 막지 못하는 투수가 됐을까."
LG 트윈스의 베테랑 불펜 투수 이동현(33)이 올 시즌 부진에 빠졌을 때 스스로 했던 생각이다. 필승 셋업맨에서 급작스레 추격조로 보직 강등이 되면서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 않았고, 이는 강판 후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동현은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훨훨 날아다니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밀알이 됐다. 팀 동료들에게 미안했던 마음도 조금은 씻을 수 있었다. 여전히 보직은 필승조에서 밀려나 있지만, 이동현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올 시즌 이동현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즌 전 3년 총액 30억원의 FA 계약을 맺고 LG에 잔류했지만,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46경기 등판, 4승 3패 2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5.40이 올 시즌 이동현이 남긴 성적.
5월 초 허벅지 내전근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이 부진의 시작이었다. 이후 1군에 복귀했지만 구위는 예전같지 않았고, 결국 보직이 필승조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구위를 다시 회복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1이닝에 아웃카운트 1개를 남기고 교체되면서 '글러브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팀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이동현이 감수했던 부분. 그러나 교체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주변의 시선과는 달리 이동현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
NC 다이노스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20일 열린 미디어데이. LG의 대표 선수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한 이동현은 "2군에 내려가 있을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난 왜 1이닝도 막지 못하는 투수가 돼버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투아웃을 잡아놓고 다시 교체가 됐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7월말 있었던 글러브 투척 사건을 떠올렸다.
1이닝도 못 막는 것에 고민하던 베테랑 투수는 가을야구 들어 중요한 경기에서 2이닝 이상을 너끈히 막아내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2.1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이동현은 17일 4차전에서도 선발 류제국이 2이닝만에 무너진 가운데 2.1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팀의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넥센 쪽으로 흐르던 경기 분위기를 LG 쪽으로 돌려놓은 이동현의 호투. 이동현에게는 경기 MVP의 영예가 주어졌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공식 시상이었다. 부상으로 받은 타이어 교환권은 아버지에게 전달. 이동현은 "처음 받는 상이라 아버지께서 많이 좋아하시더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 들어 구위가 좋아진 것은 역설적으로 2군행과 관련이 있다. 이동현은 "최근 몇 년 간 풀시즌을 뛰었다. 2군에서 쉬는 동안 봤더니 팔꿈치나 어깨에 피로가 쌓여 염증이 있었다"며 "2군에 내려가서 휴식을 취한 것이 구위를 회복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동현은 "2군에 있는 동안 캠프 때부터 연습했던 커브를 가다듬었다"며 "사실 내 약점이 구종의 단조로움에 있었다. 변화구가 슬라이더, 포크볼밖에 없다보니 (김)지용이랑 겹치는 부분도 있었는데 커브가 추가되면서 조금 편해졌다"고 커브 장착 효과를 말하기도 했다.
미디어데이 행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나타난 이동현. 그는 "팀이 계속 이기고 있어 기르고 있다. 탈락할 때까지 한 번 길러볼 생각"이라며 "마산으로 내려오면서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머니까 5차전까지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플레이오프를 4차전에서 끝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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