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12'라는 숫자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11명의 선발 선수 다음 가장 먼저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받고 출전하는 첫 번째 교체 선수, 일명 '특급 조커' 내지는 '슈퍼 서브(Super Sub)'라고 하지요. 또 있습니다. 관중석에서 12번째 선수가 돼 응원을 하는 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경기장 안팎에서 경기를 만드는 구성원 모두가 12번째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간 12주년을 맞이한 조이뉴스24는 이 12번째 선수 중 한 명을 만나봤습니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 MBC SPORTS+ 축구 생중계를 통해 축구팬들로부터 사랑받으며 'K리그 여신'으로 떠오른 정순주(31) 아나운서입니다.
[이성필기자] 프로축구 K리그의 해묵은 과제 중 하나는 경기 생중계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더 많은 TV중계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올해 엠비시 스포츠플러스(MBC SPORTS+)에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동시 중계를 목적으로 2채널을 개국하면서 플랫폼을 확보했다. 3년 중계 계약을 했다. 제이티비시 폭스 스포츠3(JTBC FOX SPORTS)도 함께 한다. 케이비에스엔 스포츠(KBSN SPORTS)도 이따금 K리그 중계를 편성하고 스포티비(SPOTV)까지 나서면서 어느 정도는 갈증을 해소 중이다.
중계 내용은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중계 카메라 대수도 6~12대 사이라 밋밋한 편이다. 20대가 넘는 카메라가 설치되는 국가대표 경기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유럽 주요 빅리그를 중계하는 방송사들처럼 경기 전 전망 프로그램 등은 보기 어렵다. 캐스터와 해설가가 경기를 진단하고 하프타임에는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거나 아나운서가 양 팀 감독을 붙잡고 전, 후반 내용을 진단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방송사의 의지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생중계를 했던 MBC SPORTS+는 K리그에서 비슷한 각도의 중계와 내용으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남자 아나운서가 딱딱하게 선수나 감독에게 질문하던 장면에서 벗어나 재미난 내용을 많이 만든다.
TV 중계 '재미'에는 정순주 아나운서가 한몫을 하는 중이다. 2012년 케이블 채널 XTM을 통해 스포츠 아나운서에 입문한 5년차 정 아나운서는 프로야구, 프로농구 리포팅 경험을 했다. 올해는 프로축구에 처음 투입됐다. 엠스플 2채널 개국의 수혜자라면 수혜자다.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뺏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다. 정 아나운서를 지난달 27일 노량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K리그가 어떻게든 화제가 됐으면…
"엠스플(MBC SPORTS+의 줄임말)이 K리그 중계를 하기로 한 이상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K리그가 힘들고 조명도 잘 받지 않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진심으로 살려보고 싶어요. 그동안 중계도 없었잖아요. 이제는 화제가 있는 스포츠로 만들고 싶어요. 부흥시키고 싶은데…"
타 프로스포츠 현장을 경험한 정 아나운서에게 K리그는 그야말로 신세계이자 도전의 무대다. 프로야구나 프로농구는 동선이 비교적 짧아 경기 상황 파악이 용이하다. 반면 K리그는 종합운동장, 전용경기장 등 다양한 경기장에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선수 이상으로 땀을 흘려야 한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 관중석으로 들어가기도 하니 실시간 상황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엠스플은 야구 중계를 하면 경기 전 프리뷰 하나, 경기 중간 이슈 발생 시 하나, 마지막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해요. 농구도 서너 개의 상황을 준비해서 리포팅을 하고 하프타임, 경기 종료 후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해요. 축구는 경기 전, 하프타임, 종료 후 감독과 선수 인터뷰를 해요. 취재해야 되니까 리포팅 준비가 쉽지 않아요. 특히 축구장은 워낙 크니까 경기 시작 전 리포팅을 하고 숨을 헐떡이며 관중석으로 돌아오면 전반 25분 정도가 지나가 있더라고요. 하프타임 준비도 빨리 해야 하더라고요. 올해 K리그 중계를 하면서 체중이 5㎏이나 빠졌어요."
정보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경기 전 선수들을 만나도 말을 잘 안 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나 프로농구는 경기 전 연습 중에도 취재진과 담소(?) 정도는 나눌 수 있고 대화 내용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이를 알고 지난 2012년 경기 시작 전 약 90분~60분 사이에 취재진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경기 준비를 하는 선수들이 입을 잘 열지 않으니 나올 이야기도 없다. K리그 기사들이 경기 결과를 중심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프로야구는 선수들과 다 친해요.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경기장에 가면 인사를 건네니 편해요. 프로농구도 그래서 경기 전 프리뷰를 할 때 다양한 내용을 전달해 줄 수 있어요. 옆에 가서 편안하게 말을 걸면 다 받아주거든요. 그만큼 시청자들에게 전달 가능한 내용이 많아져요. 선수 개인의 소소한 소식을 알려주는 것도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K리그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선수들 만나기도 힘들고 설사 경기 전 보더라도 말 걸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친해지기가 어렵더라고요. 아쉽죠. 정보를 하나라도 알면 인터뷰의 질이 달라지거든요. 프로축구는 딱 경기 종료 후 수훈 선수 인터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공식적인 인터뷰 외에는 꺼낼 수 있는 화제가 없어요. 그나마 정조국(광주FC) 선수나 전북 현대 최강희,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님과는 조금 친해졌어요."
#야구에 있다가 축구 쪽에 오니 강등이 아니냐고 그러길래…
정 아나운서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정보가 부족하지만, 중계의 콘텐츠를 끌어 올려야 한다. 이 때문에 경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화제가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지 발품을 팔고 있다. 포항 스틸러스의 홈구장 포항 스틸야드에서는 본부석 건너편 관중석에서 단체 응원 중이던 해병대 장병들 앞으로 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해병대를 인솔한 부사관과는 셀카도 찍었다.
"7월에 (성남FC와 수원FC의) 깃발 더비를 할 때에요. 팬들이 지하철역에서부터 경기장까지 깃발을 들고 길거리 행진을 하면서 오는데 그 때 기온이 영상 38℃(도) 정도였어요.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같이 행진해 경기장까지 와서 양 구단 구단주인 시장님들 인터뷰를 하는데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만큼 재미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할 수밖에 없어요. 방송 분량을 만드는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축구가 더 좋아졌어요. 내년에 축구를 다시 한다면 걱정이 생기는데 그래도 하면 재미있을 거에요."
정 아나운서는 프로야구 중계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것이 사실이다. 봄~가을에는 프로야구, 가을~봄에는 프로농구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K리그까지 하는 데다 아르바이트로 경제, 시사 프로그램까지 나서고 있다. 지난 2개월 동안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10~11월은 프로스포츠 4개 종목이 겹치는 시기다. 그래서 K리그 중계에 배정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고 한다.
"락싸(?)라는 축구 커뮤니티를 봤는데 제가 축구 중계로 온 것을 두고 누리꾼끼리 토론이 벌어졌더라고요. 다들 농구와 축구로 인지도 쌓아서 야구로 가는데 정 아나운서는 프로야구에서 축구로 왔다. 강등이 아니냐고 서로 싸우던데요. 사실 제 아나운서 경력의 출발이 좋지 않았어요. 타 방송사 아나운서들보다 경력도 되지 않고 인지도도 떨어졌기 때문에 스스로 실력을 쌓아야 했어요. 야구가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의 주 종목이라고는 하지만 스포츠 현장이 좋아서 하고 있어요. 축구를 통해 정말 많이 지식을 쌓고 있어요. 그냥 이 현장이 좋아요."
특정 종목만 편애하지 않고 경계를 뛰어넘는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정 아나운서의 최대 목표다. 알면 알수록 빠져든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그 덕분에 고왔던 피부마저 거칠게 상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존감을 잃었다고 한다. 올여름이 워낙 뜨거웠던 탓도 있지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를 쓰다 보니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정 아나운서의 걱정 중 하나는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에 대한 가벼운 시선이다. 종일 스포츠 지식을 쌓고 정보를 전달해도 외모로 평가받는 문화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②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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