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46세에 '별'을 달았다. 53세에 전무에서 부사장을 건너 뛰고 곧바로 사장 자리에 올랐다.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대기업 임원을 13년째 유지하고 있다. 그는 성공한 샐러리맨의 표본으로 꼽힌다.
김승영 두산 베어스 사장은 야구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다. 그가 구단 경영에 손을 대면서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장 직을 맡은 2004년부터 13년 통산 승률 5할3푼7리(920승769패), 2011년 구단 대표이사로 올라선 해로부터는 5할3푼2리(431승369패)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10회·한국시리즈 6회 진출, 지난해부터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뤘고, 올 시즌에는 정규시즌 최다 93승에 한국시리즈 4연승의 압도적인 전적을 올렸다.
물론 야구는 선수단이 하는 것이고, 구단 CEO는 '거드는' 역할일 뿐이지만 오늘날 두산이 강팀으로 올라서게 된 이유를 분석할 때 역시 프런트 조직, 그 중에서도 수장인 김승영 사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24일 잠실구장에서 김 사장을 만나 성공하는 야구단을 만들기 위한 비결을 들어봤다. 평소 외부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그는 "야구계 프런트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남겨달라"는 말에 특유의 달변으로 평소 담아뒀던 생각을 술술 풀어냈다.
◆팬이 되지 말라
비야구인 출신 구단 경영진이 가장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김 사장은 "내 생각, 나의 경영철학을 강조하기보다 모든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서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단 임원이) 팬이 되면 안 된다. 경기를 보면 '왜 이 친구를 투수로 썼느냐' '이 상황에서 이 타자를 기용하지 그랬느냐'는 말을 하기 쉬운데, 이건 팬들이나 하는 얘기"라며 "야구단 경영자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단에 처음 부임해서 오면 6개월 정도는 입을 열지 말고 남의 얘기만 듣는게 좋다. 구단 직원들, 야구인들, 코치들 얘기를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했다.
직접적인 경험도 중요하다. 김 사장은 "원정경기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타 구장도 많이 가봐야 한다. 선수들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어보고, 선수들 숙소에서도 자봐야 한다"며 "심지어 트레이너들이 해주는 치료도 직접 체험해볼 필요가 있다. 할 수 있는 경험은 빼놓지 않고 다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단 사장이 뒷짐만 지고 있으면 선수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성공을 위한 솔루션도 만들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가 가장 강조한 부분이었다.
◆2군 경기를 자주 찾아라
수 년 전부터 2군 경기장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구단 사장들이 있다. 김승영 사장을 비롯해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대표, 이태일 NC 다이노스 사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야구단(김승영) 또는 야구 기자(이태일) 출신이거나 처음부터 야구단 전문경영인(이장석)으로 출발했다. 그룹 계열사에서 야구단 발령을 받아 온 사람들이 아니다. 김 사장은 "요즘은 2군 경기장을 찾는 타 구단 사장들이 많아졌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2군 경기까지 챙기려면 대단한 열정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김 사장은 경기도 이천의 베어스파크를 1주일에 한 번, 한 달에 3∼4번은 꼭 찾는다. 그는 "이천은 물론 화성(넥센), 강화(SK) 구장도 시간 날 때마다 둘러본다"며 "사장이 2군 경기장을 찾는다는 건 2군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무명 선수들에게 동기의식을 고취시켜 주기 위한 차원이다.
◆힐링도 된다
김 사장이 2군 경기장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내 자신이 위안을 얻기 위한 목적이 반"이라고 전했다.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이런 설명이 나왔다. "1군 경기를 매일 이길 수는 없다. 때로는 아쉽게,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망치는 경기도 적잖이 보게 된다"며 "그러면 말 못할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팀이 점찍어둔 유망주가 2군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힐링이 된다. 그 선수들을 보면서 내가 희망을 얻는다"고 미소를 지었다. 2군 선수들을 말없이 챙기면서 자신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2군구장. 바람소리, 새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열심히 던지고 치고 달리는 선수들을 보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자연으로부터 힐링을 얻고 구단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니 1석2조인 셈이다. 그는 "잠실에만 앉아 있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며 웃었다.
◆선수들의 성장 환경을 파악하라
기술적인 부분은 역시 전문가의 영역이다. 김 사장은 "스카우트, 코치 등에게 그런 부분은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구단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선수들의 환경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다. 그는 "선수의 내면적인 부분, 어떤 환경 속에서 야구를 했는지, 가정환경은 어떤지를 주로 본다"고 했다. 그가 오랫동안 관찰한 결론에 따르면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이 야구도 잘 한다. 오랫동안 큰 탈 없이 잘 할 수 있는 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주로 체크하는 게 사장의 역할이다.
김 사장은 "좋은 부모님을 둔 아들들이 야구를 잘 하는 경항이 있다"며 "허경민, 오재원 아버지, 김재환 어머니 등은 성격은 물론 아들에 대한 애정, 뒷바라지 모두 나무랄 데가 없는 분들"이라고 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지만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사장의 몫이다. 김 사장은 "어린 선수들의 키와 몸무게 같은 부분을 눈여겨 본다. 아무래도 큰 선수들이 체력적인 부분에서 강점을 가지기 때문"이라며 "골격이 좋고 뛸 때 밸런스가 좋은 선수들이 아무래도 장래성이 있고, 오래 가는 편"이라고 자신만의 선수 보는 노하우를 전했다.
◆구단 밖 인재들도 눈여겨보라
김 사장은 5년 전 사장으로 승진한 뒤 구단 직원들에게 "강한 프런트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는 "선수단을 장악해서 끌고가는 물리적인 힘이 아닌 내부 역량 강화를 의미한 발언"이라며 "앞으로는 야구단 프런트 중 최고 연봉자는 사장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유가 뚜렷했다. 그는 "프런트가 전문화되면 핵심 역량이 되는 자원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체계가 될 것"이라며 "전문 스카우트, 전문 트레이너 같은 사람들이 역량을 강화해서 고액 연봉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구조의 야구단을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외부의 인재들을 눈여겨보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구단 밖 외부 인사들 중 인상 깊었던 인물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우리 구단 직원들도 역량이 참 뛰어난데…"라면서도 두 명의 이름을 댔다. 우선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이다. "염 전 감독은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 하고자 하는 의욕, 욕심이 많다"며 "꿈도 참 큰 것 같아 보기 좋다. 물론 우리가 감독으로 데려온다는 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또 한 명으로 한 수도권 구단의 운영팀장 이름을 꺼냈다. "야구인 출신으로 무척 똑똑하고 열성적이다. 과거 애리조나 교육리그를 견학갔을 때 얘기를 들어보니 굉장히 총명하더라.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가 부탁한다면 단장으로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래를 그려라
선수단은 오늘 경기, 한 시즌 성적에 목을 매기 마련이지만 프런트는 5년, 10년 후를 내다봐야 한다. 성공하는 야구단은 미래를 준비하는 프런트를 두고 있다. 김 사장은 "구단은 선수단 조직·관리 조직으로 나뉜다. 운영에 관련된 부분은 단장 밑으로 운영팀이 주도하기 마련"이라며 "야구단은 모든 게 선수단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시즌 내내 FA 전략, 드래프트 문제, 선수들의 군입대 관련, 외국인 영입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도 중요하지만 '향후 어떻게'를 고민하는 건 CEO의 몫이다. 김 사장은 "진짜 중요한 건 프런트 직원들에 대한 미래의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팀원들 가운데 몇 년 후 누가 팀장이 될 지, 누가 더 올라갈 지, 우리가 모자라는 부분은 어떻게 충원할 지, 이런 부분에 대한, 직원들의 미래에 대한 그림까지 함께 그려야 한다"며 "선수단만 봐서는 안 된다. 내 후계자, 그 다음 후계자, 단장은 누가, 팀장은 누가 될 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야구단 프런트도 하나의 조직이고, 조직의 성패는 관리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라는 지론이다.
◆운도 좋아야 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김 사장은 "모든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운이 가장 맞아 떨어진 케이스로 장원준 영입건을 소개했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2014년 당시 왼손 투수가 유희관 하나였는데, 그 때는 희관이도 완전히 꽃을 피우지 않았던 시기였다"며 "나는 왼손 투수에 대한 로망이 오랫동안 있었다. 김광현, 봉중근, 양현종 같은 투수를 보유한 팀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털어놨다. "그 때 눈여겨본 투수가 롯데에 있던 장원준이다. 큰 부상이 없는, 내구성이 좋은 투수인데다 우리가 원준이와 붙으면 이상하게 못쳤다. 너무 까다로운 투수였다"며 "마침 장원준의 부산고 선배인 김태룡 단장도 장원준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나와 단장의 의견이 맞으면 확실한 의사결정이 가능한데 그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구단 지원도 적시에 이루어졌다. "두산 출신으로 2013년 다시 끌어들인 홍성흔을 제외하면 장원준이 사실상 첫 외부 FA 계약이었다. 당연히 그룹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다행히 큰 돈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니 자신감이 있었다. FA 영입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김 사장은 "사실 먼저 탐낸 선수는 넥센 시절 장원삼이었다. 그런데 그를 삼성에게 빼앗기고 참 속이 상했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장원삼에 대한 아쉬움이 장원준으로 승화된 것 같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장원삼은 놓쳤지만 장원준을 영입해 2년 연속 우승했으니 말 그대로 전화위복이었다.
조이뉴스24 잠실=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