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올해 K리그는 절묘한 황금분할로 마무리된 해였다.
우선 전북. 전북은 33경기 무패(18승 15무)로 스플릿 라운드 전까지 무적을 자랑했다. 무승부 비율이 높기는 했지만 '닥공(닥치고 공격)'의 진수를 보여주며 다른 11팀을 압도했다. 그래도 최강희 감독은 "무승부가 너무 많아서 무패 행진을 하고 있어도 불만이다"라며 부자 몸사리는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전력으로만 놓고 보면 K리그 최강이었다. 최전방에 이동국을 중심으로 김신욱, 이종호가 영입됐고 여름 이적 시장에 에두가 중국 슈퍼리그에서 돌아왔다. 힘과 높이, 기술까지 고루 균형 잡힌 팀이었다.
공격 2선도 마찬가지, 레오나르도-이재성-김보경-로페즈로 이어지는 조합은 틈이 없어 보였다. 한교원-서상민-장윤호-고무열 등 보조 자원도 훌륭했다. 두 팀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끈끈함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전북의 33경기 무패행진이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A컵과 병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전북이 정규리그에서 무패를 달렸다. 반면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빈즈엉(베트남)과 장쑤 쑤닝(중국)에 패하는 반전도 있었다. FA컵도 8강에서 부천FC 1995에 무너졌다.
초점을 K리그가 아닌 챔피언스리그 맞춘 행보라는 점에서 무패 기록은 놀라웠다. 물론 스플릿 라운드 첫 경기였던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패하면서 K리그 최다 무패 기록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균열이 생긴 가운데서도 전북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통과를 거쳐 16강 호주 원정을 무사 통과했고 헐크 등 세계적 스타들로 전력 보강을 한 상하이 상강(중국)과의 8강도 화끈한 공격으로 이겼다.
문제는 FC서울과의 4강이었다. 앞서 정규리그에서도 이겼던 전북은 4강 1차전을 4-1로 승리하며 사실상 결승 티켓을 받았다. 2차전에서 1-2로 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결승에 올랐다는 그 자체가 더 큰 의미도 다가왔기 때문이다.
전북을 추격하는 서울은 2차전 승리로 최종전 맞대결을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스카우트 A씨의 심판 매수 파문에 대한 징계를 내렸고 승점 9점 삭감과 벌금 1억원을 부과받았다. 전북과 같은 승점에 골득실에서만 밀린 상황에서 최종전에서 만난 이들의 명암은 박주영에 의해 갈렸다. 박주영의 결승골로 서울이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승점이 깎이면서 온 기회라 의미가 조금은 반감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서울 역시 최용수 감독이 중국 장쑤로 떠나고 황선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등 혼란 속에서도 차분하게 팀을 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데얀, 아드리아노, 박주영, 윤주태 등 기존 공격진에 윤승원이라는 신예가 등장해 밝은 미래를 예고했다.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전북은 챔피언스리그에 초점을 맞췄고 알 아인(UAE)에 1승 1무로 이기며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1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승부차기로 패하고 충격을 어렵게 극복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것과 반대 상황이었다.
전북의 챔피언스리그 정상은 K리그가 여전히 아시아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한 성과였다. 김보경과 이재성은 탈아시아급 기량임을 보여줬고 조성환, 김형일 등 노장들의 리더십도 돋보였다. 최강희 감독의 허허실실 전략도 훌륭했다. 시즌 내내 중국 팀들의 영입설에 시달리면서도 팀을 강하게 만든 결과였다.
이들의 겨루기를 지켜만 보고 있던 수원 삼성은 FA컵 우승으로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다. 올해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어 불안하게 시작했던 수원은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시즌을 보냈다. 염기훈, 권창훈 등 핵심 자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조나탄이라는 특급 공격수가 나타나 12골을 넣는 활약을 했고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져 강등권 탈출 싸움을 벌였던 수원은 최종 7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조나탄은 FA컵 4강 울산 현대전에서 골맛을 봤고 서울과의 결승전에서도 골을 터뜨리며 진가를 발휘했다.
운명의 승부차기로 승부가 결정됐고 서울 골키퍼 유상훈이 실축하면서 수원은 2010년 이후 6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재정 축소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도 서정원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들의 위기 극복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였다.
3위로 내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한 제주 유나이티드도 위력적인 공격 축구를 보여줬다. 반대로 4위 울산 현대는 윤정환 감독 특유의 섬세한 실리 축구로 나름 괜찮은 성적을 냈다.
전통의 명가들은 혼란을 겪었다. 포항 스틸러스는 스플릿 라운드 전 최진철 감독을 경질하고 최순호 감독을 영입하는 등 어려움 속 잔류에 성공했다. 반면 전신 성남 일화 시절을 포함해 7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성남FC는 승강 플레이오프권으로 밀렸고 강원FC에 덜미를 잡히며 챌린지(2부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맛봤다.
성남은 같이 강등된 수원FC와 깃발더비를 형성하는 등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었다. 클래식에서 시도된 깃발더비가 챌린지로 무대를 옮긴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수원FC는 승격 후 막공(막을 수 없는 공격)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경험 부족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정난 속에서도 광주FC, 인천 유나이티드 두 시민구단은 나름대로 버티는 힘을 보여줬다. 광주FC는 정조국이 20골을 넣는 등 득점왕에 올랐고 8위로 시즌을 마감하는데 기여했다. 재료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남기일 감독의 지도력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인천은 지난 8월 말 김도훈 감독의 사임으로 이기형 수석코치가 대행체제로 나선 뒤 무패를 달리며 잔류에 성공했다.
K리그는 내년 강원과 대구가 클래식에 승격,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강원이 폭풍 영입을 하면서 시즌 말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강팀들의 대응과 이들을 따르는 나머지 팀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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