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참 기특하죠."
최은성(46) 전북 현대 골키퍼 코치는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전지훈련 중 홍정남(29)을 방으로 호출해 면담했다.
당시 전북은 지난해 주장이었던 주전 골키퍼 권순태(32)가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해 주전을 상징하는 등번호 '1번' 골키퍼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당연히 21번을 달고 올해를 뛸 생각이었던 홍정남에게는 권순태의 이탈도 부담스러운데 등번호 1번의 무게감을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지난해 3경기를 뛴 황병근이 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김태호도 호시탐탐 2번 내지는 1번까지 넘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북에서 보낸 홍정남에게는 부담이 가중됐다.
그러나 최 코치는 일찌감치 홍정남을 올해 1번 골키퍼로 낙점했다. 최강희 감독도 홍정남에게 "제대로 해보자"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수 포지션인 골키퍼는 경험이 무기라는 것을 최 코치나 최 감독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 코치는 "권순태의 이적으로 등번호 1번이 비어 있었다. 홍정남을 방으로 불러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홍정남이 결심을 했는지 달아 보겠다더라.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견디겠다는데 정말 대견하더라"고 말했다.
홍정남은 2007년 전북에 입단했지만 권순태, 김민식(FC안양)에 가려 후보 골키퍼를 상징하는 '2번 또는 3번' 신분이었다. 2번은 그나마 FA컵 등 주전이 휴식을 취하면 기회를 얻지만 3번은 마냥 바라만 봐야 하는 신세다.
2011~2012년 권순태가 상주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빈자리는 김민식이 메웠다. 2012년 기회가 오는 듯 했지만, 대전 시티즌의 수호천황 최은성 코치가 전북 유니폼을 입으면서 다시 한번 그는 3번 골키퍼로 밀려 4번 골키퍼 이범수(경남FC)와 마냥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를 기억하는 최 코치는 "내가 전북에 올 당시 홍정남은 2번이었는데 (나 때문에) 3번으로 밀렸다. 처음 봤을 당시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하더라. 기회를 잡지 못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더라. (기회를 놓치는) 아픔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지더라"고 전했다.
그 역시 2014년 상주에서 14경기를 뛰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이적에 대해 고민도 했지만, 전북에서 조금 더 견뎌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 힘을 올해 모두 쏟아내겠다는 생각이다.
뚜껑을 연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홍정남은 3경기 1실점으로 선방했다. 부담스러웠던 전남 드래곤즈와의 개막전에서 페체신에게 실점한 것을 제외하면 수원 삼성의 공세를 무실점 방어했고 역습 중심의 인천 유나이티드에도 웨슬리의 페널티킥을 막아내고 빠른 볼 처리로 0-0 무승부를 이끌었다.
최 코치는 "경기 전에 인천 같은 팀이 (다른 강팀보다) 더 어려울 수 있으니 끝나기 전까지 집중하라고 했다. 페널티킥은 벤치의 지시 없이 순전히 본인의 감이었는데 잘 막았다. 올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3경기를 통해)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지 않았느냐"고 전했다.
최 감독도 인천전 후 인터뷰를 통해 "몇 경기 하지 않았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선방도 했다. 경기를 거듭하면서 자신감을 안고 능력을 발휘했다. 인천전도 본인에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고 칭찬했다.
홍정남은 차분하게 올 시즌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단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싶다. 그러려면 매 경기 집중을 해야 한다. 경기를 뛰면서 여러 상황이 오겠지만 견디겠다"고 말했다.
앞선의 필드 플레이어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정말 앞에서 동료들이 많이 뛰어준다. 그 덕분에 나도 집중하게 된다. 좌우의 김진수, 이용이나 최철순 등 수비진도 적극적으로 협력해주니 좋다"고 전했다.
인천전에서는 19일 A대표팀에 소집, 중국으로 원정을 떠나는 동생 홍정호(28, 장쑤 쑤닝)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부모님과 아내, 장인, 장모도 함께하며 응원을 했다고 한다. 부모는 전남전이 끝난 뒤 눈물을 펑펑 쏟았고 인천전은 가슴을 졸이다가 PK 선방 후 마음을 편하게 내려 놓았다고 한다.
홍정호는 늘 비교 대상이었다. 동생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시작해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를 거쳐 장쑤 쑤닝 유니폼을 입고 A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로 자리 잡았지만, 형은 그저 그런 선수였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도 형 홍정남은 '아픈 이'였다. 그는 "동생(홍정호)이 잘하고 있다더라. 오늘도 경기장에 와서 관전했다. 응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인'에서 벗어나 제대로 우승의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는 것이 홍정남의 생각이다. 그는 "(권)순태 형이 트로피를 들고 우승하는 장면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같이 팀원으로서 우승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 그런 생각들을 늘 하고 있다"고 했다. 주전 수문장으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는 그 날을 기다리겠다는 다짐이다.
조이뉴스24 인천=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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