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예술작품이네."
영화 속 한 남성이 원더우먼을 향해 내뱉는 말이다. 원더우먼은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과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몸매. 전장 한가운데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적을 물리치는 모습조차 그림 같다. 원더우먼은 아름다운 여성 히어로다.
원더우먼이 장편 영화에서 주인공이 돼 나타났다. 76년 전 DC 코믹스의 여성 히어로가 된 후 처음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탄생한 영화 '원더우먼'은 단순히 여성 히어로의 아름답고 초인적인 능력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원더우먼을 통해 사회적 여성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영화 '원더우먼'(감독 패티 젠킨스, 배급 위너브라더스 코리아)이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다이애나 프린스(갤 가돗 분), 원더우먼이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 분)를 만나 제1차세계대전의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내용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시도
다이애나의 시선으로 보면 사회에서 바라보는 여성성이 의아하다. 여성은 보호 받아야 한다면서 정작 여성을 배제하는 사회. 아름다운 외모라고 칭송하지만 그 외모로만 자신을 평가하는 사회. 영화는 다이애나를 통해 이런 사회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다이애나는 여성들만이 모여 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다이애나는 바다에 빠진 남자를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뛰어든다. 전장에서도 가장 먼저 "내가 갈게요"라고 말하면서 적군의 기지를 향해 돌진한다. 여성으로서 살기를 강요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1910년 영국과 독일 사회에서는 그런 다이애나의 모습과 행동을 금기처럼 대한다. 다이애나가 전쟁 전략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자 여성이 회의장에 있는 것에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남성들. 결국 다이애나는 회의장에서 쫓겨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쫓겨나는 경험은 다이애나의 시선으로 보면 무척 낯설다.
트레버 대위를 따라 간 곳에서는 여성으로서 사회화된다. 예쁘게 꾸며진 옷 가게에 들어가 226번이나 여성스러운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한다. 처음 만난 트레버의 동성 친구들은 다이애나를 만나면 외모에 대해 먼저 칭찬하고 심지어 "예술 작품"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 원더우먼, 다이애나는 사회의 시각에서 아릅답기만 하고 그래야만 하는 여성이다.
다시 기존의 '여성성'에 갇히는 역설
영화는 원더우먼, 다이애나의 시선을 쫓아 이런 사회적 여성성을 고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원더우먼이 가지고 있는 영웅의 면모는 영화 밖 관객들에게 여성에 대한 편견을 더 단단히 만드는 위험이 있다.
다이애나가 행동을 결심하는 시작은 언제나 감정이다. 트레버 대위가 "여성과 아이들이 살육됐다"고 말하자 곧바로 전장으로 뛰어간다. 전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전선에서도 한 여성의 말에 갈등하고 적과 싸우려 뛰어든다. 원더우먼이 가지는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영화의 의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다이애나의 모습은 감정에만 치우친다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일치한다. 현실에서 여성이 다이애나처럼 행동한다면 '여성은 그렇다'며 비난 받기 십상이다. 관객이 동정심과 측은심과 같은 감정만으로 행동하는 다이애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여성' 히어로라는 것에 있다.
다이애나가 전장에서 입는 옷 또한 완벽하게 '여성성'을 강조한다. 원더우먼의 의상은 여성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다이애나가 고정관념 속 여성이라면 하지 못할 일들을 놀랍도록 해내지만 동시에 여성만이 입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처럼 '원더우먼'은 기존의 여성을 뛰어넘으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시 그 안에 갇혀버리는 영화다.
역설적인 원더우먼을 돋보이게 하는 연출력
영화 '원더우먼'은 여성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여성성을 뛰어넘지만 결국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역설적인 원더우먼, 다이애나.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뛰어난 액션 장면들과 이질적인 두 장소를 자연스럽게 잇는 연출력이다.
원더우먼을 비롯해 영화 속 여자 주인공들은 화려한 액션을 펼친다. 영화 속에서 남성만이 주로 하던 액션을 여성들이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또 진실을 내뱉게 되는 해스티아의 올가미를 사용하는 원더우먼에서 여성만이 낼 수 있는 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원더우먼'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극과 극의 공간들을 뛰어난 영상으로 실제 존재 하는 곳처럼 보여준다. 다이애나가 나고 자랐던 낙원, 아마존 데미스키라는 신비롭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비극적이고 폐허가 된 전장터의 모습은 우리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러닝타임 141분, 12세 이상 관람 등급, 오는 31일 개봉.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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