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정말 빨리 (김)은선이가 왔으면 좋겠어요."
올 2월 수원 삼성의 스페인 전지훈련지에서 염기훈(34, 수원 삼성)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염기훈은 수원 삼성 최초 4년 연속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심적 부담이 상당했다. 서정원 감독이 직접 임명을 하고 선수들도 동의한 주장이라 더 그랬다.
지난해 수원은 극심한 부침을 겪으며 하위 스플릿으로 밀려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FA컵 우승으로 보상을 받았지만, 정규리그의 부진 아쉬움을 털기는 쉽지 않았다. 염기훈도 "FA컵 우승이 있기는 했는데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좀 그렇다"고 고백했다.
주장은 올해까지만 하고 23일 전역하는 김은선(29, 아산 무궁화)에게 맡긴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최선참, 주장, 도움왕, 남편, 아버지 등 염기훈의 몸이 10개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올해도 염기훈은 같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정규리그는 4위를 달리고 있고 FA컵은 4강에 진출한 상태다. 개인적으로도 3년 연속 도움왕에 도전한다. 윤일록(FC서울, 10도움)에게 선두를 내주다가 지난 2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산토스에게 도움을 기록했다. 10도움으로 윤일록과 동률이지만 경기당 도움에서 뒤져 2위에 자리했다.
이날 염기훈의 도움은 여러모로 중요했다. 한 시즌 도움 두 자릿수 기록은 2010년(10도움), 2011년(14도움), 2015년(17도움), 2016년(15도움)에 이어 다섯 번째다. FC서울에서 뛰었던 몰리나(4회)를 제치고 최다 두 자릿수 도움 주인공이 됐다. 군복무 시절인 2013년 경찰청(챌린지)에서의 11도움까지 포함하면 6번째다.
K리그 역사에서 한 시즌 두 자릿수 도움을 한 번이라도 한 인원은 총 44명이다. 두 번 이상도 6명이다. 그래서 더 귀한 도움이다. 통산 303경기에 출전 59골 98도움으로 60(골)-60(도움) 클럽에도 근접했다. 도움 2개만 더하면 K리그 최초 100도움도 가능하다. K리그 최다골과 공격포인트를 새로 작성하고 있는 이동국(38, 전북 현대) 못지않게 전인미답의 고지를 향한 피나는 노력을 하는 셈이다.
3년 연속 도움왕에 도전하는 염기훈을 둘러싼 환경은 복잡하다. A대표팀에 발탁,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 우즈베키스탄전을 치르고 오는 등 심적인 피곤함이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 능력은 충분히 뽐냈다. 향후 기량을 유지하면 11월 A매치나 12월 동아시안컵에 재발탁 가능성도 있다. 제주전에 신태용 감독이 직접 찾아 염기훈의 기량을 확인했다.
승점 50점으로 2위 제주(57점)와는 7점 차이다. '디펜딩 챔피언'인 FA컵은 4강에 진출해 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어려 염기훈만 바라보고 있다. 두 대회를 효율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코칭스태프와 치열한 토론을 하는 등 정신적인 소모를 하면서도 자기 역할까지 해내야 하는 슈퍼맨이 되고 있다.
서정원(47) 감독의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주장 역할도 확실히 했다. 구단에 서 감독의 재계약 여부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전했다. 지난 13일 FA컵 4강 미디어데이에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감독님의 재계약 문제로 동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FA컵 우승도 했고, 리그 준우승도 해봤다. 감독님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선수들은 생각한다"며 구단 경영진의 애매한 행정에 초강력 프리킥을 시도했다.
물론 현재까지 서 감독의 재계약 협상 테이블이 진전됐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선수단 제어만으로도 힘든 염기훈에게는 더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이지만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 구단 운영비 축소로 그 역시 연봉 삭감을 감수하며 남았고 수원의 전설로 향하고 있다. 염기훈은 "선수들을 컨트롤 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님의 역할이 컸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감독님 재계약이 빨리됐으면 좋겠다. 선수보다 감독님이 우선이다"고 못 박았다.
할 일이 많은 염기훈의 목표는 명확하다. 남은 기간은 수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며 3년 연속 도움왕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도움에서만큼은 더 많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며 절대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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