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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Feel']얼마나 많은 지도자를 잃어야 정신 차릴까


성적 지상주의에 과정 기다리지 못하는 문화…부실 행정에 신음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한국 축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놓고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모로코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내용과 결과 모두 만족하지 못하며 패했고 다양한 문제점이 터져 나왔습니다.

대표팀의 경쟁력 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하락과 맞물려서 더 폭발하고 있습니다. 10월 랭킹에서 57위인 중국보다 더 아래인 62위로 밀렸다는 사실 자체에 국민의 머리와 마음에는 분노보다는 허망함이 훨씬 크게 밀려왔습니다. 대표팀 관리 주체인 대한축구협회가 이런 상황이 되도록 왜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느냐는 여론의 질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태용(47) 축구대표팀 감독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있습니다. 축구협회는 대표팀을 지원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일선 임직원들'이 보이지 않게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대외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수뇌부'들은 신 감독에게 향하는 화살까지는 막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유럽 원정 2연전과 월드컵 베이스캠프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축사국(축구를 사랑하는 국민) 회원 5명의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위에 화들짝 놀라 신 감독을 B입국문에서 먼 F입국문로 빠져나오게 했죠. 안전상의 문제를 고려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서 위협적인 기운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근조', '한국 축구는 죽었다'는 메시지만 도드라져 보였고요.

7월 선임 당시 신 감독은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경질로 물에 빠진 한국 축구를 구할 구원자, 메시아였습니다. 20세 이하(U-20), 23세 이하(U-23) 대표팀 소방수로 나서 각각 본선 진출과 16강, 8강의 성적을 냈습니다. 공격 성향의 신 감독이라 수비에 약점이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본인이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선을 다해 성적을 낸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겁니다. 어쨌든 연령별 대표팀이라는 과정을 거쳐 A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축구 인생을 걸었다"는 출사표와 함께 말이죠.

신 감독에게는 늘 시간이 없었습니다. '조이뉴스24' 독자 여러분들은 지속적인 보도로 잘 아시겠지만 2016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U-23 대표팀을 2015년 1월 고(故) 이광종 감독의 급성백혈병으로 선수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감독의 바짓단이라도 붙잡고 출전시켜달라고 말해라"고 애원하며 1년을 보냈고 2016년 1월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준우승으로 통과합니다. 본선에서는 온두라스에 한 골만 내주며 4강 진출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죠.

올 6월 국내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 대표팀은 단기 속성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선임됐고 12월 제주도 전지훈련으로 선수들 알기에 바빴고요. 1월 포르투갈 전훈에서야 조금 윤곽을 잡아 본선을 대비했습니다. 당시 제주도와 포르투갈 전훈에서 기자와 만난 신 감독은 "선수들 이름 외우고 얼굴 익히느라 정신이 없다"면서도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본선 조별리그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6강에 올랐지만, 포르투갈에 와르르 무너집니다. 7개월 동안 역시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 붙들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것 밖에 안되냐"는 비판만 돌아왔죠. 그래서 "소속팀으로 돌아가 뛰어라. 팀은 상관없다"는 바람을 외쳤죠.

그나마 신 감독의 성격이 화통해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마이웨이'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온 국민이 감독인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그의 몸에 보이지 않는 상처만 가득합니다. 두 달 만에 해낸 본선 진출은 경기력 부진과 한국 축구의 영원한 구세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존재에 묻혀버렸습니다. 대표팀을 관리하는 주체가 얻어맞아도 모자를 비난을 "사퇴하라"는 말까지 섞여 불화살을 몸에 꽂고 있습니다.

신 감독이 귀국해 시차 적응도 못 하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않은 상태로 축구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끝낸 뒤 자택으로 돌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충남 천안으로 달려가 김인완 광양제철고 감독의 부친상에 조문했다고 합니다. 다음날(16일) 조문을 간 기자에게 김 감독이 그러더군요. "정말 얼굴이 안 돼 보였다. 지금 국내 축구 지도자 중 가장 압박감이 크지 않을까 싶다"며 남 걱정을 하더군요.

신 감독은 모로코전 당일 아침(현지시간) 고(故)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40분을 방에서 혼자 울었답니다. 함께 1990~2000년대 초반을 누빈 동료이자 지도자였던 동생이 허망하게 세상을 떴다는 말에 눈물만 나왔다더군요.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며 경기를 치렀고 종료 뒤 조 감독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재홍 피지컬 코치를 한국으로 빨리 보내 대리 조문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조 감독 빈소에서도 만난 다수의 지도자는 "지금 신 감독이 가장 힘들 것이다"며 걱정하더군요. 그 걱정의 자리에는 3년 전 여름 여론의 화살에 쓰러져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까지 가지 못했던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그를 보좌했던 박건하 전 서울 이랜드FC 감독도 있었습니다. 1994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 실수로 온갖 비난을 받은 뒤 2002 한일월드컵에서 만회한 황선홍 FC서울 감독, 중국 슈퍼리그에 도전한 뒤 1년이 채 되지 않아 사임한 최용수 전 장쑤 쑤닝 감독도 있었고요. 성적 압박에 자신의 축구를 채 꽃피우지 못하고 사임한 남기일 전 광주FC 감독도 보였습니다. 한참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해야 할 지도자들인데 말이죠.

조 감독이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뒤 감독이라는 직업의 스트레스의 강도나 얼마나 큰지 축구팬과 국민도 기사로 접하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신 감독에게는 단순히 경기력 문제에 막무가내로 사퇴를 외치는 상반된 외침도 나옵니다. 신 감독을 기술위원들의 '합의'라는 절차를 거쳐 선임됐고 이제 4경기를 했는데 나가랍니다. 신 감독을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는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11월에 더 잘하겠다", "본선에 중요하다"며 나름 세운 계획이 있는 외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관두라고 합니다. 행여 신 감독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를 했다고 치면 그렇게나 원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구원하겠다'며 헌신의 자세로 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유능한 외국인 지도자가 갑자기 영입이라도 될까요. 물음표가 붙지 느낌표가 붙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저비용 고효율'을 원하는 한국 문화에 분명 적응하기 어려울 겁니다. 축구협회 수뇌부가 그렇게 가격 대비 실력 좋은 지도자를 선임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유능한 지도자를 많이 잃었습니다. 그래서 '독이 든 성배'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적이 나지 않아도 미래를 위해 통 큰 투자라는 강한 결단은 "이따위로 경기했으니 그만두고 나가"라는 류의 여론에 흔들립니다. 당장 결과를 가져오라는 말에 결정의 주체들은 우왕좌왕하다 지도자 희생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한두 번 반복한 것이 아닌데도, 바뀌자는 목소리가 있는데도 달라질 기미 대신 보신과 안정, 단순한 분출에서 끝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그 어떤 국내 지도자를 세워도 불신만 팽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 세대가 조금씩 한국 축구의 주체로 진입하고 있고 또는 박지성, 이영표 등 유럽 빅리그 경험이 풍부한 이들을 행정 분야에서 중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괜찮은 그림입니다. 축구협회나 대표팀이 선진화되려면 고인 물을 빼야 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들 역시 조금만 삐끗하면 욕먹는 신세일 겁니다. 한 번의 잘못에 수많은 경기, 대회 경험과 C→B→A→S→P급으로 이어지는 혹독한 지도자 과정은 무소용입니다. 뭐, 실패(가 아니지만, 실패로 보이는)에 가려져 이런 노력의 과정들이 헤아려지기나 할까 싶습니다. 결과가 좋아도 내용이 불만이라는 지적을 들어야 하고 내용이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관두고 숨죽여 지내야 합니다. 홍명보 장학재단을 통해 수비수 성장 프로젝트를 수년째 진행하고 있는 홍 감독은 '자신의 이런 역할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감춘다는 것이 그를 아는 한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왜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홍 감독만 바라보면 안타깝다는 감정만 쌓인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지도자 개인의 자유로 침묵으로 보낼 수도 있겠지만 성장기의 누군가는 돌아와서 학습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지는 않습니다. 자비를 들여 해외 축구 연수를 가는 등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 투자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실패에 회복 못 하고 여론에 숨죽여 지내는 지도자가 얼마나 더 나와야 정신을 차릴까요. 실패했다고 낙인 찍어 쓰러트려야 직성이 풀릴까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할 뿐이랍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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