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동현기자] 올 시즌 일본 프로축구 J1리그는 마지막까지 우승을 향한 두 팀의 접전이 펼쳐졌습니다.
33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전통의 강호 가시마 앤틀러스가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23승2무8패 53득점 31실점 승점 71을 기록하고 있었고 2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게 승점 2점 차로 앞서있었습니다.
가와사키는 20승9무4패 66득점 32실점 승점 69점으로 2위에 올라있었습니다. 다득점이나 득실차는 가시마에 앞섰지만 가장 중요한 승점이 모자랐죠. 하지만 가와사키가 승리하고 가시마가 비기거나 진다면 역전 우승까지 넘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J1리그 최종전이 열린 지난 2일 두 팀의 명암은 갈렸습니다. 가시마가 쥬빌로 이와타와 0-0 무승부를 기록한 사이 가와사키는 주포 고바야시 유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맹활약 속에 오미야를 5-0으로 완파했습니다. 가와사키가 창단 처음으로 J1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장 나카무라 겐고를 비롯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가와사키의 우승은 일본에서도 하나의 사건으로 꼽혔습니다. 이 팀은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제일 인기 없는 구단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중반을 포함해 J1과 2부리그인 J2리그를 오가던 팀이었고 평균 관중도 4천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자체와 구단이 힘을 합쳐 꾸준한 지역 밀착 활동으로 팬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시와 지자체는 가와사키를 지원하는 부서를 만들고 초등학교와 연계해 선수단의 이름과 등번호가 들어간 산수 문제를 냈습니다. 선수들의 얼굴까지 붙였으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겠죠?
여기에 지역 맛집들을 경기장 앞에 유치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힘을 쏟은 덕에 가와사키의 매 시즌 관중은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습니다. 일본 축구 전문 매체 ‘풋볼 존 웹’에 따르면 올 시즌에는 리그 5위에 해당하는 2만2천112명의 관중을 모았습니다. 시민들의 힘과 구단의 노력이 팀을 그라운드 안팎에서 성장시켰고 결국은 우승 트로피까지 든 것입니다. J리그 역사에 남을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한 사람의 한국인이 함께 했습니다. 골키퍼 정성룡입니다. 그는 올 시즌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전부 가와사키의 골문을 지켰습니다. 이 가운데 31경기에서는 90분을 소화하면서 소속팀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힘을 보탰습니다. 확실한 수문장으로 자리 잡은 정성룡과 J리그가 공식적으로 모든 일정을 마친 다음 날인 지난 6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비가 약점이었던 가와사키, 정성룡의 가세로 탈바꿈
그에게 있어 이번 우승은 성남 일화(현 성남FC) 시절 신태용 감독과 함께 만들어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 시절 따낸 K리그 우승에 이어 세 번째 우승컵입니다. 오랜만에 따낸 우승컵. 정성룡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짜릿한 역전 우승이라 그 기쁨이 더했습니다.
"시즌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마지막에 역전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라곤 몰랐죠. 하늘만이 알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 과정을 거쳐서 팀이 창단 첫 우승을 따냈고 그 현장에 제가 있어서 영광스럽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는 하마터면 우승의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할 뻔 했습니다. 지난 10월 21일 J1리그 30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경기에서 오른쪽 허벅지를 다쳐서 일왕배 준준결승은 물론 정규리그 31라운드 가시와 레이솔과 경기까지 결장했습니다. 복귀 후에도 주로 쓰는 발인 오른발에 통증이 있자 왼발로 킥을 차거나 팀 동료에게 킥을 맡기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팀을 위해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결국 우승의 주역이 됐습니다. 그는 이 우승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을 맛봤다고 합니다.
"구단 프런트나 팬들, 선수들이 뭐라고 할까요. 혼연일체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와사키가 처음엔 팬들이 없는 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나 구단에서 이벤트나 홍보 등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하니까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주셨죠. 그 팬들에게 우승으로 다시 되돌려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는 올 시즌 눈부신 성적을 남겼습니다. 정성룡은 33경기에서 29실점을 기록했스빈다. 경기당 평균 0점대의 실점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맹활약 덕분에 가와사키는 단 32실점만을 기록했습니다. 리그 3위에 해당하는 높은 성적입니다. 수치로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J리그 데이터 사이트인 '풋볼 랩'이 공개한 정성룡의 시즌 세이브율은 14.85점. 모든 골키퍼들 사이에서 4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입니다.
일본 현지의 평가는 어떨까요. 올 시즌 J리그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풋볼 채널'의 후나키 와타루 기자는 정성룡에 대해 "솔직히 처음 팀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는 전성기에서 떨어지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큰 기대가 안됐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크리스토프 카민스키(쥬빌로 이와타) 니시카와 슈사쿠(우라와 레즈) 김승규(빗셀 고베)와 더불어 J리그 톱 클래스 골키퍼"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는 물론 시즌 내내 보여준 안정감은 나무랄 데 없었다"면서 "그가 오면서 가와사키는 가장 큰 약점이었던 골키퍼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후나키 기자의 말대로 정성룡이 오기 전까지 가와사키의 최대 약점은 골키퍼였습니다. 일본 최고의 공격 전술가라고 평가받는 가자마 야히로 감독이 팀을 맡아 공격적인 면에선 일취월장했지만 니시베 겐지가 맡은 골문은 늘 승부처에서 발목을 잡았습니다. 기록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014시즌 가와사키의 총 실점은 43이었고 2015년에는 48점이었습니다. 실점 순위도 좋지 못했습니다. 2014년은 리그 11위, 2015년엔 리그 10위였으니까요. 이 탓에 우승과는 늘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정성룡이 장갑을 끼기 시작한 지난해(2016년)부터 팀 전체 실점은 39실점으로 줄었습니다. 올 시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총 32실점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욱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켰습니다. 불과 2년전까지 리그 11위로 저조했던 실점율은 리그 3위가 됐습니다. 정성룡의 가세가 만들어낸 극적인 변화입니다.
가와사키는 이번 우승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3억엔(한화 약 30억원)의 우승상금과 J리그 연맹이 배분한 지원금 15억엔(한화 약 150억원)을 포함해 총 22억8천만엔(한화 약 228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습니다. 개인 타이틀도 가와사키 선수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고바야시는 23골로 득점왕과 리그 최우수선수상을 독식했고 리그 베스트일레븐에도 4명의 선수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성룡도 최우수 골키퍼상 후보엔 있었지만 아쉽게 나카무라 고스케(가시와 레이솔)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팀 우승이 더 기뻤다고 말합니다.
"아쉬움도 있지만 팀 우승이 더 중요했어요. 최우수 골키퍼상은 다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 거에요"
◆ 인생 전환점이 됐던 ’퐈이아~사건’
그의 인생이 항상 빛났던 것만은 아닙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 하나인 트위터에 올린 '퐈이아~사건'은 그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당시 월드컵의 졸전과 맞물려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해당 글은 브라질에서 출국 직전에 본인이 직접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귀국하기 전에는 그 일이 그렇게 커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퐈이아~''에 시달렸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어떤 팬이 자신에게 "퐈이아~"라는 말을 남기자 "경기장에서 해주세요"라고 대답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굳이 물어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몇년이나 지난 일을 다시 들춰 상처를 준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먼저, "이 일을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넀습니다.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제가 분당에 살았는데 하루는 아들이랑 집에 가는 길에 한 고등학생들이 저를 보더니 '퐈이아~''라고 하는 거에요. 사실 그 말만 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 뒤에 심한 욕설을 했어요. 숫자로 시작하는 그거요. 그래서 제가 아들을 옆에 있던 과일가게에 맡기고 그학생들을 쫓아갔어요. 그냥 그 말을 한 애들 얼굴을 보려고요. 가서 대응한 것도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는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욕설 그리고 그 학생들의 학교까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건이 우승을 향한 열망을 부추겼다고 합니다.
"사실 크게 신경쓰지도 않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근데 이것만큼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큰 아들이 다섯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어요. 아들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아빠랑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더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꼭 우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성룡은 아내 임미정씨와 결혼한 이후 2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그의 SNS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은 가족을 향한 사랑이 넘칩니다. 일본 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팬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족은 그에게 있어선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가와사키 프론탈레 공식 홈페이지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족이라고 당당히 써놨고 가장 싫어하는 일엔 '가족이 상처받는 일'이라고 써놨습니다. 이런 그이기에 어쩌면 그때 그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때 그 고등학생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조금은 반성하지 않을까"란 말도 남겼습니다. 어지간히 상처가 됐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정성룡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큰 비난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발전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선수 경력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우승도 했겠다 다음 시즌 개막까지 쉴 법도 하지만 바쁜 연말을 보냅니다. 오는 11일에 한국에 들어와 1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SHARE THE DREAM 풋볼 매치'에 출전해 오랜만에 한국 축구 팬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여전히 팬들은 그를 '퐈이아~'로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정성룡은 트위터에 '퐈이아~'만 쓴 게 아닙니다. "더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라는 글도 썼습니다. 그는 그때 이후 더 노력했고 발전해 J리그 최고의 골키퍼 반열에 올랐습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약속도 우승으로 지켰습니다. 그는 "내년 ACL과 리그에서 다시 한 번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라고 다음 시즌을 벼릅니다. 정성룡은 여전히 축구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Playlist : Chaka Khan - Through the Fire] 조이뉴스24 김동현기자 migg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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