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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부터 강동원까지…김지운의 배우들(인터뷰)


"장르 완성할 주옥같은 작품 남기고파"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감독 김지운의 작품들에서 충무로 대표 배우들의 화양연화를 마주하는 것은 즐겁고도 익숙한 일이다.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단편을 포함해 무려 5편의 영화를 함께 한 송강호는 물론이고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등 배우 인생의 굵직한 족적을 김지운과 함께 남긴 이병헌, 단편 '더 엑스'로 인연을 맺고 '인랑'으로 재회한 강동원까지, 김지운의 영화들은 특유의 감독색(色)에 에너지를 덧씌우는 배우들의 활약으로 완성된다.

흥미롭게도 김지운과 손을 잡았던 배우들의 표정은 장르마다, 캐릭터마다 다른 공기를 뿜어낸다. 블랙코미디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에서 김지운 감독과 함께 한 송강호가 보여준 변화무쌍한 얼굴들이 그 예다. 한국형 웨스턴무비를 표방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 '밀정'은 나란히 시대극이었지만 두 영화 속 그의 입술이 얼마나 다른 숨결을 내뿜는지는 아마 누구보다 관객이 더 잘 알 법하다.

'달콤한 인생'과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으로 감독과 시너지를 냈던 이병헌, '인랑'의 주연으로 분해 한국영화계 새로운 SF 액션을 선보인 강동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 배경엔 범죄·스포츠·첩보·가족, 웨스턴·호러·느와르·코미디·SF 등 소재와 장르는 물론이고 과거·현재·미래의 배경도 가리지 않아 온 감독의 부지런한 탐험 의지가 있었다.

조이뉴스24는 영화 '인랑' 개봉을 맞아 만난 김지운 감독과 그의 20년의 감독 인생을 돌아봤다. 하나의 팔레트엔 도저히 가둘 수 없는 그의 색깔은 장르와 소재,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쉼 없는 탐색의 증거이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화한 영화 '인랑'으로 또 한 번의 도전을 한 김지운의 먼 계획은 다양한 장르를 오간 경험을 바탕으로 그간의 시도들을 차츰 정리해나가는 것이다.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그의 말은 매 순간 일생의 마스터피스를 꿈꾸는 여느 감독들의 희망과도 닿아있었다. 다만 감독 김지운의 큰 그림은 막연하지 않았다. 모험의 역사가 이를 뒷받침하는 덕이다. 감독은 "온 장르에 마음을 열고 고유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군데군데 밑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위, 그가 완성할 새 그림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이하 김지운 감독과 일문일답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장르들을 완성하고 정리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겠다'는 말을 했다. 그간 여러 장르를 탐색해 온 만큼 의미심장하게 들렸는데, 이 말의 진의가 궁금했다.

"'코믹잔혹극'이라는 생소한 장르, 사회성 코미디('조용한 가족')로 데뷔했다. 호러도 했고 서부극, 느와르, 스파이물, 이번엔 SF도 했다. 그렇게 시도했던 장르들 중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추려 정리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이전 작업들에 '시도'의 의미가 컸다면 그 다음의 작업들은 그 시도를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를 몇 가지 추려 '완성하는' 작품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많은 감독들이 꿈꾸는 '마스터피스'를 말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그 결과물이 '마스터피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감독 김지운이 생각하는 특기는 어떤 장르일까?

"사실 내 모든 영화들이 느와르풍이었던 것 같다. SF에도 느와르를 접목한 것 같고. 뭔가 뚜렷한 장르를 이야기한다면 느와르나 사회성 코미디, 호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해보지 않았던 '본격 멜로'에도 관심이 있다. 그런 완성화된 장르들을 정리해 만들어보고 싶다. 10년 간 더 영화를 한다면 2년에 한 편은 만들테니 총 5편이 될 것이다. 그것까지는 하고 끝내고 싶다.(웃음)"

-김지운의 '본격 멜로'가 사실 가장 기대된다.

"각오는 이렇게 하지만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웃음)"

-여러 장르와 소재를 오가는 편이다. 김지운식 '혼종' 영화들도 흥미롭다. 평소 구분 없이 폭넓은 장르의 자원들을 접할 것 같다.

"그렇다. 진지한 영화를 볼 때 우스운 순간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모든 것을 열어놓고 생각하는 편이다. 작업 과정에도 모든 것을 열어 놓고 다 받아들이려 한다. 각기 다른 장르마다 고유의 즐거움, 고유의 세계가 있다. 그런 것이 재밌다."

-신작 '인랑'을 향한 반응은 조금 아쉽게 느껴질 법하다.

"'인랑'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약간 아쉽다는 분도 있다. 장단점이 뚜렷한 영화라 생각했다. 장점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조금 있다. 완벽한 영화는 많지 않다. 한국형 SF의 구현이라든지, 강화복을 입은 어두운 캐릭터가 벌이는 상황들, 새로운 캐릭터들 등 한국영화계에서 '인랑'이 성취한 부분들에 대해 더 활발히 이야기되고 있길 바란다. 시도에 대해 의미를 남길 수 있는 논의들이 더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면이 조금 아쉽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뜻 아닌가. 위험이 많은 일을 용감하게 행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자체의 의의를 해석해내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액션의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좋다'거나 '미쟝센, 비주얼의 최대치'라는 반응들도 봤다. 이 영화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 부분을 인정해주는 것 같더라."

-'인랑'은 동명 원작이 있는 영화지만,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를 의식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엄두도 못 냈다. '블레이드 러너'는 시각적 황홀함의 결정판이다. 많은 SF 팬들이 궁극으로 생각하는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우리가 레퍼런스로 삼았던 영화는 '칠드런 오브 맨'(감독 알폰소 쿠아론)이었다. 현 시대와 많이 다르지 않은, 하지만 세계관이 SF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리려 했다."

-임중경 역 배우 강동원에 따르면 감독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강화복 액션을 직접 소화하도록 디렉션했다더라. 과거 정우성 역시 '놈놈놈'의 총 돌리는 장면을 언급하며 엄청난 의욕으로 소화했다고 했고. 디렉션을 하는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 바람을 이야기한 것이긴 한데, 어떤 것에 대해선 '안 해도 된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면 더 좋겠지'라고 자극시키는 면도 있다. 그에 대한 배우의 생각, 여지도 중요한 것 아닌가. 자발적으로 해 보겠다고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어우' 할만한 뉘앙스로 들릴 수 있다."

-'해보는데까지 하자'고 하면 배우는 하게 되겠지.

"예전에 '반칙왕'을 찍을 때 그런 적이 있다. 송강호가 링 포스트 꼭대기에 올라가 팔을 벌리고 백 덤블링해 착지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건 레슬링 선수도 잘 못할 수 있는 액션이었다. 그런데 배우가 레슬링 기술을 배워 그걸 링에서 한다는 건, 더더욱 요구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배우는 '연습을 했으니 해보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계속 실패했다. 몸이 깨끗하게 서지 않고 비틀거렸다. 8번째 테이크였나, 가장 비슷하게 나온 순간이 있었다. 약간 움찔했지만 한 번 더 해보면 잘 나올 것 같더라. 그런데 9번째 테이크를 갔는데도 안 나왔다. 자꾸 주저앉는거다. 한 번 쭉 보고 '8번째 테이크로 가자. 이게 제일 깨끗하다' 하니 (송)강호 씨도 '이게 제일 괜찮네' 했다.

그러고선 같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서로 '완전한 오케이'가 아닌 거지. 다음 장면을 준비하려는데 서로 '한 번 더 해볼까?'가 됐다. 그 뒤로 15번만엔가 성공했다. 그 테이크를 영화에 썼다. 나로서는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배우에겐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거다. 그 때 그걸 배우게 됐다. 물론 송강호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배우 입장에선 성취를 한 것 아닌가. 계속 '무대뽀'로 한 것이 아닌, 한 번 포기했다 심기일전해 얻은 결과이니 가치 있더라. '이걸로 오케이 하자' 말하고 다른 신을 위해 세팅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한 번 더 해볼까?'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던 것, '아, 나쁘진 않은데' '이게 끝인가' 생각하다 동시에 '다시 하자'며 일치감을 보였을 때 짜릿한 느낌이 있었다.

송강호와 이병헌은 마치 내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내 생각을 들여다 본 것처럼 찰떡같이 표현한다. '이거 접착제야, 뭐야?' 생각할 정도로, 착 달라붙듯 생각해 연기해준다."

-송강호, 이병헌과는 각각 4~5편의 영화를 함께 했다.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하는 배우들이다. 강동원과는 단편 '더 엑스'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이었는데, 그와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강동원은 그 자체가 임중경이었다. 그래서 내가 뭘 더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한다는 건 '없는 걸 하는 것'인데 그 사람이 되었으니 현장에서 그렇게 많이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냈다. 강화복을 입어도 그 위에서 나온 분위기나 자기 표정이 있더라. 로보트같은 외형으로 등장하니 생각을 하고 감정을 넣어야 하지 않나. 그 안에서도 어떤 감정을 보이게 하려고 안에서 고개를 꺾고, 입을 벌리고 연기하더라. '그래야만 이 느낌이 나온다'며 낑낑대며 하는 모습에 굉장히 놀랐다. 강동원은 '쿨'하고 시크한 배우이고, 그런 내적인 치열함이 막 드러나는 배우는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쿨한 모습의 내면엔 뭔가 치열한 불덩이 같은 게 있구나' 느꼈다."

-윤희 역 한효주 역시 '인랑'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표정들을 보여주더라.

"그렇다. 몰랐던 연기,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을 보여줬다. 이윤희가 보여줘야 하는 모습은 복합적이다. 혼자 있을 때, 한상우(김무열 분)나 구미경(한예리 분)을 만날 때, 임중경을 만날 때 모두 다르다. 임중경을 만날 때는 시시각각 변하지 않나. 여러 얼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윤희의 상태를 한효주는 잘 표현했다. '인랑'을 작업하며 '한효주는 모든 것이 가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은 성공한 상업영화 감독 중 꾸준히 단편 작업을 이어 온 몇 안 되는 영화인이기도 하다. 문소리, 송강호 주연의 1998년작 단편 '사랑의 힘'은 감독의 멜로를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정된 작업들 중 단편은 없는지 궁금하다.

"멜로는 또 다른 단편 '사랑의 가위바위보'(2013)에서도 했었다.(웃음) 내 단편을 좋아하는 분들 중엔 '커밍아웃'(2000)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멜로에도 호기심이 있지만, 기획이 쉽지 않다. 단편을 나름대로 꾸준히 작업해왔다. 하지만 난 늙었고, 시간도 없고….(웃음) 차기작 중 한국-프랑스 합작 드라마가 있는데,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정도 외엔 결정된 것이 없다. 그에 대한 번역본이 오가는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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