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가수 루시드폴이 반려견 '보현'의 소리와 빛을 기록한 앨범 '너와 나'를 발표한다. 보현의 몸짓과 목소리를 채집한 뒤, 디지털 혹은 아날로그 장비들을 통해 드럼, 베이스, 키보드, 리듬, 멜로디로 만든 도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루시드폴은 어떤 이유에서 반려견 보현과의 컬래버레이션 앨범을 준비했을까. 또 기타만을 고집해오던 루시드폴은 왜 '전자 음악'에 발을 내딛은 것일까. 루시드폴은 최근 안테나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앨범 작업기를 들려줬다. 다음은 루시드폴과의 일문일답.
◆반려견 '보현'과 앨범을 기획한 계기는 무엇인가.-지난해 출판사로부터 보현의 사진집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귀여운 강아지 사진이 너무 많지 않나.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머뭇하게 되더라. 그래서 보현과 음반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보현의 소리를 녹음했고, 함께 산책하는 곳에서 소리를 채집했다. 짖는 소리,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밥그릇을 긁는 소리들을 모두 녹음해 리듬을 만들었다. 듣는 사람들은 이게 보현의 소리로 구성됐다는 걸 모를 정도다. 보현의 소리 DNA로 음악을 만들어놓는다면, 언젠가 보현과 헤어지더라도 보현이 영원히 남아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보현은 어떤 반려견인가.-보현은 만 10세 강아지다. 3년 전 동네 백구에게 물려 대수술을 한 뒤, 주변 개들에게 마음을 닫았다. '즐겨내는 소리'는 집 주변 낯선 소리에 매섭게 짖는 것이다. 물론 보현만이 내는 소리도 있다. 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노크하는 소리, 산책 스팟에 가까워졌을 때 기뻐하는 낑낑거림 등이다. 선공개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가요 역사상 최초로 강아지가 작곡한 노래다. 보현이 콜라비를 먹는 소리가 정말 상쾌해서, 소리를 채집해 변주를 일으켰다. 작곡가 보현의 '가요계 데뷔'다.
◆보현이 작곡가로 데뷔한다면 이 저작권은 어떻게 되나.-저작권료도 보현에게 줄 것이다. 아내가 아티스트 네임을 '보현'으로 지어 통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저작권료가 쌓일 것이다. 돈이 모이면 보현의 밥과 껌을 사고, 보현의 친구들에게도 보현의 이름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비로소 내게서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사후 저작권 역시 전문가에게 상담한 뒤 의미있는 곳에 기부하겠다.
◆타이틀곡 '읽을 수 없는 책'은 어떤 곡인가.-내게 위로가 되는 곡이다. 예컨대 음식을 만들 때, 누굴 주려는게 아니라 내가 맛있게 먹고 싶어서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이번 노래도 그렇다. 이 노래가 내게 위로가 된다. 이번 곡은 30분 만에 쓴 것 같다. 내가 보현에게 느끼는 마음을 가장 잘 녹였다는 생각이 드는 곡이다.
◆과거 강아지가 아빠를 보는 시선을 가사로 담은 '문수의 비밀'이 있었고, 보현은 '약속할게'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전례가 있다. 향후 반려견을 어떤 형식으로 음악에 참여시킬 것인가.-강아지를 위한 콘서트를 생각 중이다. 저녁에 공연 가서 야광봉 들고 환호한 뒤 돌아오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철저히 '강아지의 시선'이 담긴 공연 말이다. 아침 산책을 하고 공연을 보고 마사지를 받는 패키지도 얘기 중이다. 다만 개들은 청각이 예민하니까 공연이라도 확성은 최대한 적게 할 것이다. 최소한의 볼륨으로 자극이 덜한 악기를 연주하며 옹기종기 앉아 노래 부르고 싶다. 멘트 할 필요도 없겠다. 하하.
◆항상 기타를 치던 루시드폴이 보현의 소리를 전자화하고 전자음악에 도전한 점이 흥미롭다.-'루시드폴 음악 같다'는 건 기타 소리가 바탕이 된 조용한 노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안전하지만 고착화된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농사 도중 손을 크게 다치면서 기타를 연주할 수 없었다. '음악적 거세'를 당한 기분이었고 치명적인 순간이었다. 음악적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기타와 가장 많이 멀어진 음악을 접하려 했다. 그게 '앰비언트 음악'이었고, 소리를 채집하고 합성하며 음악적으로 해방됐다. 다행히 이후 손은 잘 나았다. 기타를 연주하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
◆'어쿠스틱 음악'을 하던 루시드폴에게 '전자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어쿠스틱 악기=내추럴'이라는 공식이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클래식 기타의 기타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굉장히 인공적인 악기다. 아날로그는 따뜻하고 디지털은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LP와 음원만 비교해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아날로그가 훨씬 왜곡이 많고 디지털이 더 원음에 가깝다. 때문에 어쿠스틱과 디지털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좋은 쪽을 골라 들으면 된다.
◆손 부상 당시 농사를 어떻게 진행했나.-가령 약을 칠 때, 남자들이 약을 치고 여자들이 줄을 잡는 보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손이 다쳤을 때는 역할이 바뀌었다. 내가 줄을 잡았다.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 시기 농민신문에 '돌돌이'라는 기발한 신제품이 나왔는데 그 슬로건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줄잡이를 시키지 마세요'였다. 그걸 보고 아내에게 더 미안했다. 또 친구들에게도 일당을 주면서 비료를 뿌려달라 부탁한 적도 있다.
◆연말 공연에는 보현이 참석하나.-사실 이번 공연만큼은 보현이 있어줬으면 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개가 올라오는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또 보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굳이 육지에 가고싶어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보현의 데뷔 무대는 아쉽게도 볼 수 없다. 이번 공연은 '루시드폴 공연' 같을 거다. 특수효과 없고 과감한 의상 체인지도 없다. 편안하게 주무시다 가면 되는 공연이다.
◆루시드폴에게 보현은 어떤 의미인가.-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보현을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문득 '보현이 아닌 다른 강아지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한다. 결론은 똑같이 사랑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보현은 나를 사랑할까?', '개와 인간이 사랑한다는 건 뭘까?', '나는 왜 보현을 사랑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아직도 답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가장 '하이 레벨'의 사랑이 보현을 향한 마음과 비슷할거라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반려동물과 사는 것 같다. 나를 마음껏 사랑해주는 걸 받아보고 싶으니까. 물론 인간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해줄 수 없는 사랑이 또 있을거라 생각해서.
◆'영농인' 루시드폴의 목표는 무엇인가?-목표는 없다. 그저 배우는 단계다. 귤나무를, 땅을 좀 더 잘 알고 싶다. 나무들이 피곤하지 않으면서 농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 중이다. 1년에 한 번 밖에 못할 실험이라 시간이 무진장 걸린다.
◆'음악인' 루시드폴의 목표는 무엇인가?-똑같다. 음악을 좀 더 알고 싶다. 전자음악에 도전하면서 기타 대신 다른 도전에 성공했듯, 나라는 사람의 팔레트 속 색과 붓을 늘려나가고 싶다. 또 2년에 한 번 음반을 내는 이 사이클을 유지하고 싶다. 목표가 있다면 식물의 소리를 좀 더 진지하게 음악화하고 싶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양분을 빨아들이고 뿌리를 내리는 식물들의 신호를 받아서 체계적으로 음악화 해보고 싶다. 아마도 그건 노래가 아닌 음악일 것이고, 정규앨범과 분리될지는 잘 모르겠다.
◆루시드폴의 정체성은 '농부'인가 '음악인'인가.-음악인이다. 농부는 부끄럽다. 참 열심히 농사했다고 생각하지만 농부라 불리기엔 아직 뭔가 부끄럽다.
◆마지막 질문이다. 음악인 루시드폴의 소속사 '안테나'의 장점은 무엇인가.-음악을 계속 하게 해준다는 것. 또 인터뷰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하하. 단점은 없다. 굳이 꼽자면…. 그래도 없는 것 같다.
한편 루시드폴의 정규 9집 '너와 나'는 12월 16일 오후 6시 전 음원사이트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또 루시드폴은 12월 28, 29일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9집 발매 공연 '눈 오는 날의 동화'를 개최하며 팬들을 만난다.
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jeewonjeo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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