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지영 기자] 한한령 사태 이후 좀처럼 왕래가 없었던 한중 관계. 최근 들어 중국 자본이 조금씩 한국 콘텐츠에 침투하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한 드라마에 중국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PPL부터 중국 콘텐츠를 리메이크한 작품, 더 나아가 중국풍의 드라마가 전파를 타면서 국내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아직 한한령이 풀리지 않았음에도 국내 콘텐츠에서 중국풍의 프로그램들이 속속들이 제작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내 제작비를 중국 투자금으로 조달하는 대신, 이전의 '여신강림' '빈센조' 등과 같은 일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을까.
지난해 12월 첫 방송을 시작한 tvN 드라마 '여신강림'은 평균 3.8%의 시청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원성을 산 장면이 여러 차례 노출돼 시청률 대비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이는 중국 기업의 PPL 때문이었다.
극 중 고등학생인 주인공 두 명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중국 유명 즉석식품 브랜드 '즈하이궈(自嗨锅)’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거나,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京東)’의 광고가 버스정류장에 걸려있었으며 주인공의 물건이 담긴 상자에는 중국 기업 브랜드 상호가 크게 표시돼 있었다. 이는 모두 국내에선 유통되거나 거래되지 않는, 중국 시청자만을 타깃으로 한 PPL이었다.
시청자들의 원성은 극에 달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과도해짐에 따라 김치, 한복, 아리랑 등이 중국 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문화라고 주장하면서 네티즌들의 반발이 심해져 있는 상황에 극의 흐름을 깨는 중국 PPL에 항의가 쏟아졌다.
비슷한 시기 방영된 드라마 '철인왕후'도 화를 키웠다. '철인왕후'의 원작은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인데, 원작에서는 한국을 희화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이 있었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한낱 지라시"라고 하거나, 실존인물인 순원왕후와 신정왕후의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뭇매를 맞았다.
중국 PPL이 문제가 되는 장면은 또 발생했다. tvN 드라마 '빈센조'에선 극 중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중국 브랜드 제품의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었다. 해당 음식은 비빔밥으로, 이 또한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음식 중 하나다. 결국 '여신강림' '철인왕후' '빈센조' 제작진은 시청자에 머리를 숙였다.
◆ 왜 중국은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나
중국 자본의 국내 콘텐츠 기업 지분투자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알리바바는 SM엔터테인먼트에 355억을 투자해 지분 4%를 취득했으며 화이브라더스는 심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화이브라더스코리아를 설립했다. JC그룹은 판타지오는 2016년 1월, 2017년 7월 두 차례 인수해 지분을 50.7%까지 확보한 바 있다. 또한 텐센트와 웨이잉은 2016년 3월 YG엔터테인먼트에 8500만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인수했고 YG의 음악, 뮤직비디오 등을 QQ뮤직을 통해 독점 유통했다.
국내 기업에 투자하고 지분을 인수하는 중국 기업의 적극적인 전략은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중국 왕이원뮤직은 75억원 규모의 음원콘텐츠 라이선스 독점 및 큐브아티스트와 IP를 통한 공동프로모션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연말 텐센트는 JTBC 자회사 JTBC 스튜디오에 1000억 원을 투자했다. JYP 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24일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 그룹(TME)과 전략적 협업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중국 자본의 침투는 엔터사 뿐만이 아니다. 올해 방영 예정인 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는 중국 대표 OTT(실시간 동영상 서비스) 기업 아이치이 오리지널로 제작되고 해외에서는 아이치이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 앱을 통해 단독 스트리밍된다. 배우 전지현, 주지훈 등이 출연하고 김은희 작가가 집필한 기대작 '지리산'의 방영권도 아이치이가 갖고 있다.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 행보는 2001년 '10차 5개년 규획' 중 '저우추취(走出去)' 전략을 세우면서다. '저우주취'는 직역하면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로,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뜻한다. 중국은 '저우주취'를 하기 위해선 우수한 대중문화 역량을 갖춘 주변국을 학습해야 할 필요가 컸으며, 그 과정을 통해 대중문화 생산과 유통의 핵심적 기제를 모두 학습한 뒤 자기화에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더 나아가 자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이를 통한 수출 및 해외 진출 확대를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해당 정책을 이행하던 도중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가 발발하면서 한한령으로 발전했지만, 자국 내에선 한국 콘텐츠를 원하는 수요가 존재했다.
한중콘텐츠 연구소 김원동 대표는 "국내에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운동을 했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매수시장에서 벗어나 소프트 파워 확장을 위해 글로벌화 시키기 위함"이라고 '저우추취'를 설명했다. 이어 "어느 나라나 소프트파워에서 우선시되는 것은 문화콘텐츠"라며 "미국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문화콘텐츠 힘으로 지금의 소프트파워 강국이 된 것처럼 중국의 이러한 정책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또한 '저우추취' 정책 도중 한한령이 발동했음에도 중국 내 여전히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임대근 교수는 "한한령은 중국 공산당이 내린 행정명령이기에 셧다운 형식으로 발동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문화콘텐츠 시장, 민간 분야에서는 한국 콘텐츠가 중국에 들어오길 바라는 수요가 있었다. 한국 콘텐츠가 수준도 높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중국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판단되기에 한국 콘텐츠를 구입해 중국에서 팔길 바랐지만 정부에서 막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요즘 한중관계가 회복되고 공산당 입장에서도 풀어주는 시그널이 나오기 시작했다"라며 그래서 중국 자본들이 한국문화콘텐츠에 투자를 계획하는 움직임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중국 자본, 잘못 찾은 대안일까
하루가 다르게 최고가를 경신하는 배우들의 출연료,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시청자의 안목은 높은 제작비로 이어진다. 정해진 제작비 안에서 배우들의 출연료를 비롯한 여러 비용을 제하고 남은 금액 안에서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데, 턱없이 적은 금액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탄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에게 제작,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한정적인 반면, 중국 시장은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으며 해외에 판권을 판매하는 것도 보다 용이해 중국의 자본은 국내 콘텐츠 시장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이전엔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던 중국 자본이 어느새 활개를 치기 시작했고, 시청자들의 우려와 원성을 사고 있다. '여신강림' '빈센조'가 이의 방증이고 '지리산' '간 떨어지는 동거' 등의 공개 예정 작품에 대한 우려가 이를 말해준다. 특히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잠중록',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의 작품들은 방영 전부터 원작 논란에 휩싸여 때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불붙은 반중정서에 시청자들은 국내 콘텐츠를 위해선 중국 자본을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중국 자본을 제외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김 대표는 중국 자본을 취하되 대중의 분위기를 읽는 게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반중정서와 분노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면 더 엄중하게, 특히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면 제작진이 검토했어야 했다"라며 "한국 제작진 입장에선 차이나머니를 거절할 필요는 없다. 투자받은 돈을 실속 있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활용하면 되는 것이지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중국 자본을 모두 거절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임 교수의 뜻과도 동일했다. 그 역시 "중국자본이라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중국 자본이 다소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을 갖고 오는 측면이 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부분들에선 서로 충분히 논의하고 한국 대중들의 정서에 반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에 주의하고 거부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어느 나라 자본이든 요즘에는 글로벌 시대기에 문화콘텐츠 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서로가 협력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필수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라고 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 또한 "중국 자본이 들어갔다고 보이콧을 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선 안 된다"라고 강경하게 말하면서 "그런 식이면 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도 괜찮지 않은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와 함께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는 내부의 돈으로 만들 수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자본을 끌어다 쓰면서 콘텐츠의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에 비판적인 시선은 필요하지만, 중국 자본이 들어오면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 "콘텐츠 글로벌화 속 차이나머니, 경계하고 신중해져야"
한류가 동남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내 콘텐츠는 한국 시장만을 무대로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공개된 드라마는 여러 나라에서 함께 오픈되고, 실시간으로 전 세계 시청자의 반응을 주고받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국내 제작진과 배우가 만든 콘텐츠가 해외 플랫폼에서 상영된다. 국내 콘텐츠가 곧 글로벌 콘텐츠인 것이다.
이에 시청자들이 더욱 중국색과 왜색을, 또 중국 자본을 경계한다. 아시아 외 국가의 시청자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한국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는 곧 역사왜곡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원동 대표, 임대근 교수, 정덕현 문화평론가 모두 제작진의 책임론과 태도를 지적했다.
김 대표는 "'여신강림'과 '빈센조'의 PPL은 제작진이 제대로 옥석을 가리지 못한 실수다. 제작진 안에서 의식 있는 사람이 챙겼어야 했다"라며 "'여신강림'의 PPL은 개연성도 없고 뜬금없다. 돈을 위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PPL을 한다면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보다 문제의식으로 받아들이고 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교활한 술책에 이용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대근 교수 역시 "극에 달해있는 반중정서를 잘 고려해 콘텐츠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며 "역사문제나 문화의 특정한 기원에 한한 현상은 예민한 문제로 부상돼 있기에 이런 부분을 소재로 다룰 때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자본과 콘텐츠를 구분해야 한다. 사실 투자했을 때 콘텐츠를 분리하기 쉽지 않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중국 투자가 들어왔을 때 간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중국 문화가 있고, 한국은 한국 문화가 있듯이 그것은 팩트로 고증해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콘텐츠를 높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진만 경계하면 되는 것일까. 다양한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도 보다 냉철하고 주의깊게 접근해야 한다. '빈센조'의 중국 PPL 비빔밥 장면에 문제제기하고 해당 장면을 삭제시킨 것처럼, 아닐 땐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는 데 거침이 없어야 하며, 아직 방영되지 않은 작품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중국을 보이콧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며 "제작진이 총명하고 지혜롭게 한국적으로 각색하면 그건 오히려 우리나라에 이득"이라고 했다. 중국 작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리메이크하면, 중국 내에서의 관심이 자연스레 올라가고 중국에 역수출할 때 보다 낮은 심의로 높은 가격에 판권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 그는 "국내 한 작품을 중국과 미국 동시에 리메이크 한다고 하면 미국에 더 관심이 가지 않겠냐.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 제작사의 입장"이라고 비유하며 중국 투자와 리메이크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중국과 관련된 작품들 모두를 보이콧하고 있는 현 분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시놉시스는 드라마 전체를 담지 않는다. 드라마가 나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 1회를 보고 문제가 되면 그때 비판하면 된다. 그걸 지금 먼저 얘기하는 건 싹을 없애는 것이고 이는 곧 창작의 싹을 꺾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는 언론의 행태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임 교수는 '문화는 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류를 봐도 한류는 우리나라 요소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좀비물로 전 세계를 강타했던 넷플릭스 '킹덤', 영화 '부산행'은 미국의 B급 소재인 좀비를 엮은 것이고, K-POP 대중가요 역시 영국과 미국 등의 팝가수에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그는 "문화라는 것은 서로 흐르면서 다른 문화와 만나고 섞이면서 성장하고 더 창의적인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며 "내용을 덮어놓고 특정한 국가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다. 또한 임 교수는 "콘텐츠에 문제가 있으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면 된다"라며 "들어오기 전부터 보지도 않고 주장을 하는 것은 다소 감정에 기대서 해결하려는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김지영 기자(jy1008@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