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지영 기자] 배우 진기주가 또 한 번 성장했다.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영화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성장해 온 그가 어느덧 영화 주연배우로서 극을 힘있게 이끈다. 영화 '미드나이트'에서 진기주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고 향후 행보를 기대케 했다.
진기주는 드라마 '두 번째 스무살'에선 늦깎이 대학생 최지우의 대학 동기로, '미스티'에선 김남주를 넘어서려는 야망 있는 후배로, '오! 삼광빌라'에선 힘든 상황에서도 대차고 화끈한 맏딸로 분해왔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그는 스크린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역시나 할 몫을 충분히 해낸다.
최근 극장과 티빙을 통해 공개된 영화 '미드나이트'는 한밤중 살인을 목격한 청각장애인이 두 얼굴을 가진 연쇄살인마의 새로운 타깃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진기주는 청각장애인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모친과 씩씩하게 사는 경미로 분했다.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경미는 고객의 모진 말과 욕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씩씩한 인물. 성희롱과 갑질을 일삼는 거래처 회식을 동료들이 꺼려하자 경미는 자신도 회사의 일원이라며 참석을 자처한다. 역시나 자신을 앞에 두고 성희롱이 오가자 그는 자신만의 대처법으로 웃으며 상황에서 벗어난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는 모친과 제주도 여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경미. 여느 때와 똑같은 평범한 퇴근길에 경미는 수상쩍은 낌새를 느낀다. 칼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소정(김혜윤 분)을 발견한다. 경미는 그런 소정을 도와주려 하고 의도치 않게 연쇄살인범 도식(위하준 분)의 표적이 된다.
극에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가장 큰 부분인 대사에 제약이 걸려있으니 어려움은 배가된다. 진기주는 이러한 걸림돌을 뛰어넘고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해 경미로 분했다. 농인만의 표현법과 행동 하나까지 섬세하게 나타낸 경미의 모습에서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이는 수어가 아닌 구어로 표현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엔 수어는 손동작만 수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표정까지 수어고 눈이나 얼굴 근육으로 표현하는 감정까지 수어다. 구어를 표현하는 게 훨씬 더 조심스러웠고 고민을 많이 했다. 연기하면서 어떤 추측도 넣지 않으려고 했다. 상상에 의존하지 않고 통상적인 이미지를 배제하려고 했다. 농인 선생님들이 구어를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례를 무릅쓰고 녹음을 부탁드렸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했고 사람이 처음 말을 배울 때 어떻게 하는지부터 고민했다. 입 모양, 목의 울림, 손바닥을 입에 댔을 때 입에서 나오는 호흡의 강약, 혀의 위치 등을 많이 연구했다."
수어를 익히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청각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은 소리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소리에 의지하지 않으려고 했고,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무시하는 연습을 했다.
"잘 때 귀마개를 꼽고 잠들면, 자기 전까진 귀마개를 꼽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지만 자고 일어나면 평소에 내가 일어나던 아침과 다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첫 접근은 의도적으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했고 이후엔 계속 소리를 무시했다. 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반응하지 않고, 소리를 어떠한 정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보이는 것만 인식하고 들리는 소리는 무시하는 것. 제외하려고 노력했다."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으니 답답함은 엄청났다. 더군다나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이가 들을 의사가 없는 상대와 대화를 하려 하니 답답함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영화를 연출한 권오승 감독은 "우리 사회는 예전과 다르게 쉽게 목소리를 내는 사회지만, 그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는 모습들은 부족한 것 같다. 진실을 외면할 때,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은 약자가 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의 의도처럼 영화에서도 경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없는 데다 독 안에 든 쥐처럼 극한의 상황에 처한 경미의 모습에 답답함이 더 배가된다. 이를 연기한 진기주 역시 같은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이게 얼마나 갑갑한 일인지 대본리딩을 하고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어느 때보다 더 찝찝했다. 분명 한 시간 넘게 열심히 경미를 표현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온 것 같았고 나만 연기를 안 한 것 같았다. 열심히 말을 했지만, 내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음성언어로 저의 감정들을 표출할 수 없다는 것에 갑갑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경미를 연기하면서 느꼈던 갑갑함, 나는 열심히 소통하려고 하는데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과 마음 때문에 감정적으로 더 힘들었다. 그게 영화에 잘 표현된 것 같다."
경미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영화를 촬영하는 내도록 이어졌다. 소통이 단절된 느낌은 그의 북받치는 감정을 더 자극했다. 말을 하려 할 때마다 "몰라요", "뭐라는 거야"라는 상대 캐릭터의 대답은 그의 가슴을 짓이겨놨다.
"연기하면서 답답함을 느낀 순간을 정말 많았다. 나는 말을 하고 표현을 하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주의 깊게 집중해서 들어주지를 않을 때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번화가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요청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손동작이 무슨 말을 뜻하는지 몰라도 뉘앙스와 의사는 느낄 수 있지 않나. 길에서 외국인이 길을 물을 때 '몰라요'하고 가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경미를 연기하면서 다른 세상에서의 진중함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외면당하는 장면들을 찍을 때마다 큰 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하룻밤에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이다 보니 밤새도록 연쇄살인마에 쫓기고 붙잡히고 다시 벗어난다. 죽음의 고비 앞에서 몇 번을 오가는 경미는 죽을힘 다해서 도식의 손에서 벗어나려 질주하고 도식은 그런 경미가 우습다는 듯 또 성큼 쫓아온다.
"뛰는 장면 정말 많이 찍었다. 감독님에게 '이렇게 많이 뛰었는데 막상 안 나오는 거 아니죠?'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많이 나와서 내심 다행이었다.(웃음) 뛰는 건 정말 힘들었다. 제가 사실 그렇게 달리기가 빠르거나 몸을 잘 쓰는 유형은 아니다. 잘 달려야 했기에 힘들었다. 제 몸이 움직여서 감정이 나가기보다 경미 감정이 가니까 다리가 움직이더라. 제 몸의 능력치를 능가하는 달리기가 나왔다. 경미는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의 감정보다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비중이 컸었다. 무섭고 겁이 나지만 공포에 휩쓸리진 않았던 것 같다. 저도 공포만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집중했다."
열과 성을 다해 진심으로 경미를 연기했던 진기주에게 '미드나이트'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첫 주연작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성큼 성장한 그는 자신에게 고향과도 같은 존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진기주는 앞으로도 '연기를 하기만 하면 좋겠다'는 초심을 마음에 안고, 열정이 가득했던 '미드나이트' 현장을 기억하며 성큼 또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미드나이트'는 다른 작품들을 해 나갈 때 제게 있어 든든한 고향 같은 느낌이 될 것 같다. 나의 초석을 다져주고 있는 느낌, 다음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작품, 다른 작품에서도 더 힘을 낼 수 있고 더 열심히 연기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정이 넘치는 현장이었고 작품에 임하는 모두가 열정이 가득했기에 어떤 작품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주는 자체가 될 것 같다."
/김지영 기자(jy100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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