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한국영화계의 큰 별이었던 故 강수연이 동료 배우들의 눈물 배웅 속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故 강수연의 영결식이 11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됐다. 장례가 영화인장(葬)으로 치러진만큼 영결식에는 예지원, 김아중, 정웅인, 문성근, 정우성, 엄정화, 류경수, 송강호, 강제규 감독 등 동료 영화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지태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은 한국영화 감독 및 시대를 함께했던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임권택 감독, 설경구, 문소리, 연상호 감독이 추도사로 고인을 추도했다. 추도 영상 속 고인의 생전 작품 활동과 사진이 비춰지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영결식장에는 '별보다 아름다운 별, 안녕히'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영화계 큰 별을 떠나보낸 슬픔을 더했다.
침통한 분위기 속 유지태는 "아직 전혀 실감이 안 나고 있다.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했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먼저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추도사로 영결식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강수연이 평소 아버지처럼 따랐던 인물이자,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함께 하며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 했다.
김동호 이사장은 "수연씨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둣집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졸지에 제 곁을 떠나다니. 건강하게 보였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라며 황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지 33년이 됐다"라며 첫만남을 떠올린 그는 "때로는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왔다. 나보다 먼저 떠날 수가 있는가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해도 걸러지 않고 머물며 영화계를 빛내준 별이었고 상징이었다"라고 추억했다.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러 갔느냐. 편히 쉬어라"고 짧게 추도했다.
강수연과 1999년 영화 '송어'로 만난 설경구는 막내였던 자신을, 그리고 촬영장 스태프들을 하나하나 챙겼던 고인을 추억했다. 설경구는 "선배는 제 영원한 사수다. 저뿐 아니라 모든 배우에게 무한 애정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우리들의 진정한 사수였다. 새까만 후배부터 한참 위 선배들을 다 아우를 수 있는, 거인 같은 대장부였다. 외국에서 바쁜 와중에도 기쁜 마음으로 반겼고 챙겼고 식사를 챙겼다. 소탈했고 친근했고 영화인으로서 자부심이 충만했던 선배였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선배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되어 저희와 함께할 것이다"라며 "너무 보고싶다"고 고인을 기렸다.
생전 고인이 아꼈던 후배 배우 문소리는 "친구네 집에 있을 때 언니가 영원히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망한 마음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친구가 '청춘스케치' LP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그 LP를 한참동안 들었다. 야, 김철수. 내가 당당해서 기분 나쁘니? 그 때도 여전히 당돌한 언니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울면서 웃으면서 들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문소리는 "언니 잘 가요.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 마음 잊지 않을게요. 언니 얼굴, 목소리도 잊지 않을게요. 여기서는 말 못했지만 이 다음에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 언니"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강수연의 유작인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몇년전 한국 영화를 기획했다. 잘 시도하지 않던 SF영화라 두려움이 컸다. 어떤 배우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때 강수연 선배님이 떠올랐다.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인 아우라를 가진 선배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시나리오를 건네고 몇 번의 만남 끝에 '해보자'고 했을 때 저는 뛸듯이 기뻤다. 저에게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았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작업실로 돌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새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라며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 하며, 선배의 새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끝까지 동행하겠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님의 마지막 빽이 되어주겠다"고 눈물로 약속했다.
고 강수연의 동생은 영화인들의 추도사에 답사했다. 강수연의 동생은 "사랑하는 저의 언니 강수연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해준 영화계 분들과 임권택 감독님, 김동호 위원장님께 감사드린다. 여러분 덕에 이별의 시간을 추억으로 채울 수 있었다. 영화와 일생을 함께 한 강수연 배우가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추도식 이후 영화계 인사들과 동료 배우들, 그리고 팬들은 한 명씩 고인의 영정 앞에 서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누군가는 묵념으로, 눈물로, 또 '천국에서 만나자' '감사했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 된 영결식에는 약 1만5천여 명이 시청했다. 유지태는 "선배님 보고싶습니다"라는 말로 영결식을 마무리 했다.
강수연은 지난 5일 오후 5시 48분께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구급대원이 출동했고, 강수연은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이송 후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으며,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경과를 지켜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7일 오후 3시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지난 10일까지 조문이 가능했던 빈소에는 동료 배우들과 영화계 인사들의 슬픈 발걸음이 이어졌다.
문소리, 예지원, 박정자, 김혜수, 이병헌, 이미연, 김윤진, 김의성, 한지일, 엄지원, 유지태, 박상민, 김보성, 김석훈, 전인화, 정유미, 류경수, 문근영, 김학철, 김호정, 전노민, 한예리, 박소담, 김민종, 엄정화, 정보석, 설경구, 민해경, 황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봉준호 감독, 류승완 감독, 연상호 감독, 임순례 감독, 윤제균 감독, 민규동 감독, 김태용 감독, 방은진 감독, 정지영 감독,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등 수많은 이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또 수많은 이들이 SNS를 통해 고인을 애도했다. 고인의 유작이 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의 연상호 감독은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 선배님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정보석과 이승연, 안연홍, 윤종신, 홍석천, 이상아, 김규리, 윤영미 아나운서, 봉태규, 문성근, 양익준 감독, 작곡가 김형석 등 연예계 동료들과 영화 관계자들도 애도를 전했다.
고인은 아역배우로 시작해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던 고인은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의 월드스타가 됐다. 삭발을 하며 연기혼을 보여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고, 1990년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2001년 TV 드라마 '여인천하'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을 맡기도 했던 고인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정부의 간섭으로 위기에 처하자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2017년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위해 헌신했다. 뛰어난 배우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영화를 알린 스타였고, 강력한 리더이자 여성 영화인의 롤모델이었다.
최근 연상호 감독의 신작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제)에 출연하며 10년 만 복귀를 알렸지만 안타깝게도 유작이 됐다. "故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연상호 감독의 추도사처럼, 죽음 뒤에도 한국 영화계에 남아 팬들과 다시 만나게 됐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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