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人]① 정우성 "'서울의봄' 인생 연기 호평? 부담, 황정민 징글징글"

[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헌트'에 이어 '서울의 봄'까지, 배우 정우성이 계속해서 인생작, 인생 연기를 경신하고 있다. 자신의 소신, 직분을 지키며 끝까지 불의에 맞섰던 이태신을 너무나 훌륭하게 소화해낸 정우성이다. 김성수 감독의 "이태신은 정우성 밖에 없다"는 절대적인 믿음 속 쉽지 않은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 정우성이 있어 '서울의 봄'이 더욱 빛나는 수작이 될 수 있었다.

22일 개봉된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로, 황정민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정동환, 김의성, 안내상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여기에 정만식, 이준혁, 정해인이 특별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황정민은 10.26 사건의 배후를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게 된 후, 권력 찬탈을 위해 군내 사조직을 동원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연기했다. 정우성은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반란군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맡았다. 특히 정우성은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에 이어 김성수 감독과 다섯 번째 만나게 돼 주목받았다.

이성민은 반란 세력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육군참모총장 정상호를, 박해준은 군사반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9사단장 노태건을, 김성균은 강한 신념을 가지고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하는 육군본부 헌병감 김준엽으로 분했다. 개봉 전 진행된 시사회부터 "올해 가장 뜨거운 영화", "최고의 수작"이라는 호평을 얻은 '서울의 봄'은 전체 예매율 1위에 오르며 '극장의 봄'을 예고했다.

이에 정우성은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21일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의 봄' 이태신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지점과 인생 연기 호평에 대한 소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 영화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 호평 일색인데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영화는 결국 더 많은 관객에게 보이는 것이 좋은 건데, 극장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 일단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을 바라고 있다."

-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다 기억에 남는다. 인상적으로 좋게 얘기를 해주시더라. 늘 응원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인데 충분히 이런 반응을 얻을 자격이 있는 분이다. 작품에 대한 고민, 현장에서의 집념 등을 보면서 배웠다. 그리고 배우로서 '이태신을 이렇게 좋아해 주시네'라고 하는 놀라움이 있다."

- 이태신이라는 역할을 구축할 때 배우 스스로 담아낸 부분이 있다면?

"처음 감독님이 참고하라고 보내주신 영상이 제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했던 인터뷰였다. '뭐하시는거지? 나에게 뭘 바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임했던 자세를 원했던 거다. 타자에게 말과 생각을 전할 때 조심스럽다. 답변 하나도 조심해야 하고 단어 선택도 신중해야 한다. 이태신이 이 사태를 대하는 자세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주신 것 같다. 그래서 전두광이 불이면 이태신이 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저쪽이 공심을 버리고 사심으로 폭주를 하고 있을 때 이태신은 좀 더 이성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 이태신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판타지 같은 캐릭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다양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태신을 통해 의미가 전달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의미를 이태신에게 부여하는 순간, 의미를 쫓는 캐릭터가 된다. 우리 모두에겐 전두광이 있을 수도 있고, 장관들이 있을 수도 있고, 소신 있는 이태신이 있을 수도 있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 자아가 어떻게 발현될지는 모른다. 영화 안에는 결말이 정해져 있는 사건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군복을 입고 공직을 수행하는 이태신이 할 수 있는 선택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봐준 것 같다. 이태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나 스스로에게 '그게 맞아'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전두광, 노태건 등 실존 인물들과 비주얼적으로 닮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태신은 다르다. 반란군들과는 반대되는 이미지로 정우성 배우를 떠올렸던 것 같은데 러브콜을 받은 배우로서 이태신을 어떤 베이스로 만들어갔나.

"전두광 같은 경우엔 실존 인물의 특징을 분장으로 덧입혔다. 외형의 유사성으로 캐릭터에 접근하기 좋게 한 것 같다. 그리고 황정민 배우의 고민과 해석, 감독님과 긴 논의로 만들어졌다. 감독님도 처음에는 불과 불의 뜨거운 대립을 상상하다가 점점 불과 물로 된 것 같다. 물이 되기 위해 상황을 전달하거나 대할 때 좀 더 차분하고 신중해지려고 하는 자세를 이태신에게 넣고자 했다. 연기할 때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완성됐을 때 어떻게 전달될지는 불확실하다. 이태신만큼 불확신한 적도 없었다. '내가 잘한 건가?'라고 물을 때 뭐가 잘 인지 모르겠다. 그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답답한 상황이 생긴다. 계속 전화기에 대고 '와주셔야 됩니다'라고만 한다. 답답하고 궁지에 몰린 심정을 표출해야 하는데 연기가 끝난 후 해치운 느낌이 아니라 답답한 감정이 계속 유지가 되니까 '잘한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하게 됐다. 그런데 이태신은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사태에 대해 인정한다. 수행하고 있는 직무에 맞는 타당한 결정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 이태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 잘한 거라는 확신을 준 건 감독님인가?

"감독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배우에게 용기를 줘야 한다. 감독님은 잘했다는 칭찬을 화끈하게 하지도 않지만, 칭찬해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 잘하기 위해 지금의 모자람을 응원해주시는 건가 싶어서 의심의 시선으로 봤다. 결국 이태신을 연기할 때 상대가 이태신을 봤는지가 중요했다. 황정민 형과 붙는 신이 별로 없다. 복도에서 마주치고, 바리케이드를 넘어갔을 때, 그리고 계단은 스치는 정도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장면 리허설을 하는데 배우들이 본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상대 기운만 넣는데, 정민 형 표정에서 '이태신을 봤구나'를 느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에서 확신의 기운을 넣은 거다."

- 황정민 배우와 연기할 때 놀랐을 때도 있었나?

"정말 놀랍다. 징글징글하더라. 타죽을 뻔했다. 타 죽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다. 부딪히는 신이 많지 않아서 정말 많이 관찰했는데 부럽기도 했다. 배우가 의상을 입는 순간 의상을 통해 얻는 기운, 힘이 있다. 정민 형은 분장의 기운까지 도와주는구나 했다. 대립각이 있어서 기 싸움을 하는 것도 부담된다. '전두광을 저렇게 하니까 이태신은 이렇게 해야지' 분석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냥 '전두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정 폭주를 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 후반 이태신이 바리케이드 넘어가는 장면을 엄청 공들여 찍었다고 하더라. 촬영할 때 어떤 감정이었나?

"감독님은 정우성 키가 커서 만든 신이라고 했다.(웃음) 각자 소신이 있는 건데, 군복 입은 이태신은 앞에 뭐가 있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고 직무에 합당한 일이면 그냥 가는 사람이다. 이태신을 상징한 신이다."

- 전두광을 향한 이태신의 "자격 없다"라는 대사가 영화를 관통하는 결정적인 대사이기도 하다. 이 대사를 할 때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어떤가.

"그 상황에서 패배, 상실 때문에 감정적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장면이다. 그 장면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옆에서 계속 얘기를 하더라. '저리 가세요'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결말에 있어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인 표현보다는 '너는 그런 사람이야' 그 한마디를 하는 것이 끝까지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 하는 이태신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 몰려오는 장갑차를 다리 위에서 돌려보내는 신은 혼자 서 있음에도 압도적이었다.

"이태신은 무서워서 눈을 감는다. 간절함이 담겼다. 이태신의 심정으로 있다 보니 몸이 떨릴 정도로 한기를 느꼈다."

- 후반부 감정을 억누르려 했다고 했지만, 이태신이 처한 상황 속 울분을 느끼기도 했을 것 같다.

"이태신은 총장의 생사를 확인 후 죄송하다고 한다. 자기 임무를 수행 못 했다는 것이 미안한 거다. 오열하는 장면은 편집이 됐지만, 감독님은 이태신을 본분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기려 한 것 같다. 혼자 패배감, 상실감에 울분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총장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상황을 만든 거다."

- 작품에 대한 호평도 많지만 정우성의 인생 연기라는 반응도 쏟아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부담된다. 빨리 떨쳐야 한다. '비트' 때 '청춘의 아이콘'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번에도 똑같다. 저는 이태신이 아니다. 이태신을 연기했지만, 그 캐릭터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캐릭터로 찾아가야 한다. 각인되는 캐릭터가 클수록 그걸 뛰어넘기 어려운데 그 힘든 싸움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