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들 캐스팅 과정이 영화 찍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김성수 감독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서울의 봄'엔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김성균, 박해준을 비롯해 영화나 드라마, 연극에서 연기 좀 한다고 하는 배우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김성수 감독이 언급한 중요 인물만 무려 68명이다. 여기에 특별출연한 이준혁, 정해인까지, 짧은 분량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 모든 이들을 이끌며 진두지휘해 완벽한 합을 이뤄낸 김성수 감독의 리더십과 연출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다시 또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봄'이다.
지난 22일 개봉된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로, 한국 영화 최초로 12.12 군사반란을 다뤄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황정민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정동환, 김의성, 안내상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으며, 여기에 정만식, 이준혁, 정해인이 특별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황정민은 10.26 사건의 배후를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게 된 후, 권력 찬탈을 위해 군내 사조직을 동원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연기했다. 이를 위해 황정민은 4시간이 걸리는 대머리 특수분장을 하고는 소름 돋는 연기력을 뽐냈다.
정우성은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반란군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맡았다. 특히 정우성은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에 이어 김성수 감독과 다섯 번째 만나게 돼 주목받았다. 김성수 감독의 굳건한 믿음 속 정우성 역시 굳건한 군인 정신을 보여주는 이태신을 완벽하게 표현해내 '인생 연기'라는 호평을 얻었다.
특히 '서울의 봄'은 결과가 나와 있는 실제 사건을 담고 있지만, 김성수 감독의 섬세한 인물 구성과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탁월한 연출력, 배우들의 호연 등이 어우러져 14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순삭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한다. 호평 속 입소문을 제대로 탄 '서울의 봄'은 개봉 첫날 2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올해 가장 뜨거운 영화"라는 찬사를 얻고 있는 '서울의 봄'이 극장가에 봄을 불러올 수 있을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다음은 개봉 전 김성수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영화에서 광화문 이순신 동상이 담겼기도 하고, 이태신이라는 이름이 이순신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다.
"그건 아니다. 실존했던 분은 굉장히 불같은 분이었다. 전두광보다 더 호랑이 같고 다혈질이고 거침없던 분이다. 제가 만든 이야기 속 이태신은 처음엔 같이 싸우지만 점점 고립되어 혼자만 남길 바랐다.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고, 그 역으로 우성 씨를 염두에 뒀다. 그 당시엔 멋진 남자, 사령관이자 리더라고 하면 목소리 크고 마초 같고 거침없는 사나이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하지만 합리적이고 올곧은 신념을 가진 인물을 선호한다. 욕망이 많지 않지만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우리 세대에도 근사한 아버지 중에 과묵하고 자상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영화에서 정우성 외피와 비슷한 사람으로 형상화하면 전두광과 대비되어 관객들 감정 이입이 잘 되고, 이태신의 외로움도 잘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정우성 배우는 '헌트'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도 같은 인물과 대립각에 서는 역할이었다. 정우성 배우가 선택할 때도 고민을 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설득했나?
"'헌트'를 끝낸 직후라 처음엔 고사했다. 저는 이미 우성 씨를 염두에 두고 '부탁하면 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집요하게 괴롭히니까 하더라."
- 결국 다들 전두광 무리를 따르면서 이 사달이 나는데, 그럼에도 이태신은 끝까지 혼자서 버티고 대적한다. 이태신에게 더 극적인 것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무력해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연출적인 의도가 있을 것 같다.
"공권력, 군대라는 건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서 살상과 무력에 대한 권능을 부여한다. 대전제는 '당신들은 그 총과 칼로 자신을 위해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 우리를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경우에만 써야 한다'다. 유능과 무능을 넘어서는 훨씬 중요한 문제다. 저는 신군부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유능한, 최고의 남자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부여된 권리를 이용하면서 국민과 국가가 위험에 빠지는 거다. 만약에 이태신이 바보 같고 우직하고 왜 저기서 혼자 싸우냐는 말을 들어도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절대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진짜 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같다고 얘기하는데 실제 모델도 그렇고 묘사한 진압군 장군들은 엄격한 보수주의자다.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유능, 무능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지, 누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자신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결말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해석이 들어갔는지도 궁금하다.
"시나리오 쓰고 찍을 때까지도 이태신이 바리케이드를 넘어 그 사람에게 가서 '주먹을 날려야 한다', '총을 쏴야 한다'는 여러 의견이 있었다. 영화 속 그 인물은 이태신이 와서 그 말을 할 때 인간적인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 같다. 존재가 부정당하는 순간을 느꼈을 것 같다. 전두광은 다른 사람들과 기쁨의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가서 '아니야, 내가 이긴 거다'라고 정당화시키고 웃는 순간 그 인간은 악마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현대사에 문제가 된 악당이 탄생한 날이 12월 12일 밤이라고 생각한다. 제 해석이 들어간 부분이다."
- 시간이 지날수록 자라난 수염까지도 진짜 같다 생각이 될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감독들이 '이건 이렇다 치고'라고 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건데, 그러려면 영화 안에 현실감이 만들어져야 한다. 제가 같이 일하는 팀들이 대단하다. 미술 감독은 공기도 79년도의 공기를 가져왔다고 얘기한다. 그런 모든 것이 진짜처럼 보이게, 진짜 존재했던 것처럼 보이게 노력했다. 배우들이 연배가 있어서 그 시대 어른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 말투나 행동을 잘해줬다. 제가 리허설을 해서 찍는 방식을 하는데, 1시간 반 안에 모든 신을 완성해야 한다. 유명한 분들이나 연극계에서 잘하는 분들은 60명 가까이 모셨다. 리허설 하는 과정에서 연기를 잘하니까 진짜스러움이 나온다. 실제 같은 인물 간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화면이 나온 것 같다."
-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나눠 배치하는 것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캐스팅하고 오디션 하는 과정이 영화 찍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너무 많았다. 실제에서 벗어나 영화적으로 자유롭게 하자고 해도 너무 벗어날 수는 없었다. 실제 인물보다 많이 줄였는데도 중요한 인물이 68명 정도 됐다. 외모 싱크로율은 아예 포기했다. 취재를 많이 했는데 그 당시 신군부 세력은 굉장히 똑똑하고 근사하게 생긴 분들이었다. 완전히 추악한 얼굴, 잘생긴 얼굴로 나누려 한 건 아니지만 반듯한 이미지를 진압군으로, 반란군은 굶주린 늑대 무리처럼 보이게 했던 것 같다."
- 대학시절 실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안내상 배우를 신군부 세력으로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
"JTBC 드라마 '나의 나라'를 봤다. 원래도 잘하지만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 그 정도로 잘할지 몰랐다. 비열하면서도 정치의 끝단에 있는 복잡 미묘한 인물이다. 뱀 같기도 하고 늦대 같은 캐릭터 연기를 너무 잘했다. 너무 바쁜 분이라 한번 드려보자 했는데 바로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얼떨떨했다. 나중에 촬영장에 와서 '작은 역할이고 지방도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했더니 '제가 해야죠'라고 하더라."
- 이준혁, 정해인 배우가 특별출연을 했는데 어떻게 캐스팅을 한 건지도 궁금하다.
"제가 'D.P.'를 너무 좋아한다. 제가 한준희 감독과 아는 사이인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많이 놀랐고 정해인도 너무 좋았다.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한준희 감독이 감수도 했다. 그래서 정해인에게 이 역할을 맡기면 할 것 같은지 한준희 감독에게 물으니 '바쁘지만 의향이 있는지 좋게 얘기해보겠다'라고 하더라. 한준희 감독이 도와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니지먼트에서 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답이 오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3일 동안 와서 촬영하고 갔다. 정해인은 평이 좋은 배우다. 착실하고 바른 청년이더라. 그런 말을 들으니까 이 역할을 맡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도 전혀 스타처럼 굴지 않았다."
"이준혁도 좋은 평가를 받는 배우다. 같이 일한 분들이 다 좋게 얘기를 하더라. 괜찮은 배우이긴 한데, 캐스팅하다 보니 너무 인물이 많더라. 이준혁에게 통째로 시나리오를 넘기면서 '작은 역할만 있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무슨 역이든 좋다고 하겠다고 하더라. '이 역할이 있는데 하실 수 있느냐'라고 하니 바로 한다고 하더라. 너무 미안해서 촬영장에서 경호원 역할을 늘렸다. 요원들과 같이 싸우는 장면을 길게 찍었고 괜찮게 나와서 다 좋아했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 길어서 많이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준혁이 열심히 액션했으니 기대할 것 같아 말했더니 '상관없다. 영화가 더 중요하다'라고 하더라. 진심이 느껴졌다. 나중에 이준혁에게 편집된 영상을 보내줄까 싶기도 하다."
- '태양은 없다'를 함께 한 이정재, 정우성 배우 모두 '헌트', '보호자'로 감독이 됐다. 같이 걸어가는 동지의 입장으로 어떻게 봤나.
"두 분 다 감독을 오래 준비한 걸 잘 알아서 '이뤄질 일이 이뤄졌다'라고 생각했다. 각자 원하는 성취를 얻었다. 저는 형편없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매끄러운 계단만 밟은 건 아니다. 좀 더 힘든 과정을 겪을 때 깨닫는 것도 많고 얻는 것도 많다. 두 분은 훌륭한 배우이기도 하다. 옆에서 보면서도 자기 관리가 정말 철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농담처럼 우성 씨에게 '너는 그렇게 태어나서 왜 미모를 썩히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웃음)"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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