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데뷔 27년이 된 베테랑 배우 정재영도 중압감을 느낀 '노량'이다. 그만큼 중국어 연기가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던 것. 그렇기에 현장에서 농담 한 번 하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함께 연기한 허준호도 "정재영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할 정도. 이 같은 노력 끝에 정재영은 진린 역시 완벽하게 소화하며 '노량'을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20일 개봉된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이하 '노량')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노량'은 1,761만 명이라는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대기록을 수립한 '명량', 2022년 여름 최고 흥행작이자 팬데믹을 뚫고 726만 관객을 기록한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노량'의 배경이 되는 '노량해전'(음력 1598년 11월 19일)은 임진왜란 7년간의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성과 있는 승리를 거두며 전쟁의 종전을 알린 전투로, 조선, 왜 그리고 명나라까지 합류해 총 약 1,000여 척이 싸운 역사적 해전이다. 김한민 감독은 여러 사료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조합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100분 해상 전투 액션을 완성해 놀라움을 선사했다.
김윤석은 '명량'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에 이어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묵직한 리더십과 인간애를 전하며 깊은 울림을 안긴다. 그리고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김성규, 이규형, 이무생, 최덕문, 안보현, 박명훈, 박훈 그리고 문정희 등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탄탄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여기에 안성기, 공명, 여진구, 이제훈 등이 특별출연으로 깊이를 더했다.
정재영은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 변신에 나섰다. 이순신 장군을 도우면서도 실리에 대한 의견 대립을 벌이는 장수로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했다.
큰 기대 속에 항해를 시작한 '노량'은 뜨거운 호평 속 10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개봉 11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또 연일 예매율 1위를 유지하며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정재영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처음 출연 제안 받았을 때 어땠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잘 봤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어떻게 처리하고 어떤 느낌이 날지 궁금했다. 다 읽고 나니 결말을 알면서도 먹먹하더라. 무조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후 명나라 말을 해야 하니 '어떻게 해야 하지?' 막막했다. 영어로라도 해봤다 하는 경험이 있으면 감이 왔을 텐데 진짜 막막했던 것 같다. 중국어 잘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 정도로 어렵더라. 얘기 들어보면 10년을 해도 성조가 해결이 안 된다고 하는 분들도 많더라. 최소한 한국 분들에게 어색하게 안 들리게 하는 것이 1차 목표고, 아시는 분들에게도 그나마 덜 어색하다는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 일취월장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고 발전 속도가 느렸다. 촬영하면서도 연기 신경 쓰랴, 표현하랴, 발음 신경 쓰랴 감수받으면서 했다."
- 중국어에 감정까지 담아야 하다 보니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문장 전체는 다 알지만 단어 하나하나는 모른다. 다 알려면 기초 단어부터 다 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몇 년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의사소통이 목적이 아니지 않나. 더듬더듬해서는 안 된다. 감정도 담아야 하고 표현도 여러 가지로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중국어가 빠르다. 신분에 따라 말도 다른 것 같은데,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다 보니 어떤 부분은 그걸 딱 잡아줘야 한다. 중국어는 어순이 영어와 같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부분에 강조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 부분들이 되게 힘들더라. 어순이 다르니 감정 표현 자체가 다르고,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더라."
- 언어적인 부분 외, 캐릭터를 위해 김한민 감독과 얘기를 나눴던 부분이나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감독님과 진린이 이래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진린을 신으로만 해석하면 이순신에게 딴지를 거는 거 같다. 하지만 역사적 자료나 고증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진린은 기본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애정도가 높은 사람이다. 옛날 말로 노야라는 호칭을 쓰는데, 지금 말로 보면 어르신, 형님 같은 존칭이다. 진린이 동안으로 나왔지만(웃음) 실제론 이순신 보다 두 살이 많다. 직책도 높은 사람이 다른 나라 장군에게 호칭을 쓴 건 군대 서열에서 큰 애정을 가지지 않고서는 못하는 일이다. 반대하더라도 이성 쪽인 거지 감정적이지 않다. 다른 곳에서는 그의 포악한 면을 부각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명은 양국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진린의 톤이 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떤 식으로 톤을 잡았나?
"일부러 가볍게 했다기보다는, 진린에게는 큰일이 아닌 거다. 전쟁이 끝나가도 철군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관심도는 딱 중간인 거다. 진린의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심각할 필요가 없다. 간을 보는 느낌도 있지만, 진심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 굳이 싸울 의미가 없는 거니까. 그런 명나라와 진린의 입장에 솔직하게 접근했다."
- 언어에서 오는 무게감 때문에도 현장 분위기도 달랐을 것 같다.
"중압감이 크고 신경 쓸 게 많았다. 현장도 전투다. 각자 갑옷도 무겁고 힘들어서, 그 무게를 온종일 견뎌야 했다. 특히나 명나라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중국어가 어설픈데 쉬다가 한국말을 하면 방해가 된다. 그래서 농담 따먹기를 할 수도 없다. 계속 유지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말을 못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모르는 단어를 하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맞나 틀리나 판단도 할 수 없다. 뉘앙스, 디테일이 좋았는지는 물어봐야 한다. 감정은 좋았는데 발음이 안 좋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이순신 장군과 할 때 NG가 나면 몰입감이 깨지기 때문에 최대한 그런 것이 없도록 늘 긴장하고 있었다."
- 그런 부분에서는 같이 중국어를 해야 했던 허준호 배우와 의지가 많이 됐을 것 같다.
"맞다. 혼자 있었으면 외로웠을 거다.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 한국말 농담은 덜하지만 보이지 않게 의지가 됐다. 준호 형님은 그중에서도 가장 형님이고, 저와는 '실미도', '신기전', '이끼', '노량'까지 네 작품째 같이 했다. 거의 20년의 세월 동안 같이 했다."
- 방금 언급한 '실미도'가 최초의 천만 영화였는데, 벌써 20주년이 됐다. 혹시 '노량' 천만 기대감도 있나?
"마음은 이미 천만에 가 있다. 스코어도 중요한 부분이다. 돈도, 정성과 노력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스코어로 연결이 되어야 보람이 있고, 참여한 사람으로서 작품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감독님 입장에서도 이순신 3부작 종지부를 찍고 유종의 미를 잘 거둬야 하는 작품이다. 당분간 최소 10년은 이순신에 대한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한다고 하면, 좀 시간이 지나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순신 영화는 당분간 볼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 '노량'으로 경험한 김한민 감독은 어땠나?
"겉으로 볼 때, 작품 안 할 때는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할 때는 집요하고 끈질기다. 그래야 이런 작품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편집이나 CG도 대충이라는 것이 없다. 현장에서도, 후반 작업도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예민하다. 그런 부분이 대단하다. 저는 하고 싶어도 그게 안 된다. 귀찮아서 안 한다. 그런 거 보면 타고 나는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이다. 진짜 성은 '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고, 특별한 사연이 있나 느낄 정도다. 정말 미쳐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 극에 담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장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전투 시작할 때 깜짝 놀랐다. 3D로 봤으면 기절했을 것 같다. 순간 소름이 돋더라. 또 많은 분이 얘기하는 원테이크 백병전이다. 그런 연출, 바라보는 시각이 좋았다. 삼국의 일반 병사들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이순신 장군을 비춘다. 삼국의 난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다 보여줬다. 마지막 전투만 조명한 것이 아니라 7년 전쟁 안에 한 걸음 더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북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시나리오로만 봤을 때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해전도 그렇고 북소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여운이 남더라. 먹먹했다. 이순신 장군이 눈을 뜨고 돌아가시는데 처음엔 '어?' 했다. '감겨주려나?' 별생각을 다 했다. 힘들어 보이다 보니 내가 미안하더라. 그게 와닿았다."
- 무거운 갑옷을 입고 전투 장면에 임했어야 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보는 것도 힘들고 찍는 것도 힘들다. 진짜 전쟁터다. 다들 컷하고 나면 헉헉거렸다. 저는 그나마 신인 때 칼싸움을 징글징글하게 해서 할 줄은 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체력이 너무 안 좋더라.(웃음)"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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