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러닝타임 103분이 이렇게 길 수 있을까. 이 N차 회귀는 언제 끝나는 건지, 한숨만 나오는 '어게인 1997'이다.
'어게인 1997'(감독 신승훈)은 죽는 순간 과거의 후회되는 '그 때'로 보내주는 5장의 부적을 얻게 된 남자가 제일 잘 나가던 그 시절, 1997년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면서 시작된 인생 개조 프로젝트를 그린 N차 회귀 판타지다. 조병규, 한은수, 구준회, 최희승, 박철민, 이미도, 김다현 등이 출연했다. '신의 한 수', '나는 왕이로소이다' 조감독으로 참여한 신승훈 감독의 19년 만 연출 데뷔작이다.
"죽음과 함께 찾아온 N차 인생, 다시 돌아가면 잘 할 자신 있습니까?"라 묻는 '어게인 1997'은 스턴트맨이자 40대 가장인 우석(김다현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석은 죽음에 직면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간다. 이를 깨달은 그는 배우의 꿈을 접게 만든 얼굴의 흉터가 생기기 전, 인생에서 제일 잘 나가던 1997년 고등학교 그 시절로 돌아가고만 싶다.
알고 보니 어느 날 한 스님(박철민 분)이 인생을 바꿔준다고 한 부적 5장을 구입한 것 때문. 그는 촬영 중 자동차가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그토록 갈망하던 1997년 고3 우석(조병규 분)으로 깨어났다.
우석은 쓰레기 같은 아빠, 아들, 남편이었던 지난 인생 1회차를 개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일진 생활 청산, 착실한 학업태도, 미안하기만 한 미래의 내 아내 지민(한은수 분)에게서 멀리 떨어지기가 그의 실천 리스트. 봉균(구준회 분), 지성(최희승 분)은 짱이었던 친구가 꼰대가 되었다고 질타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한 우석은 자신만의 길을 간다.
최근 유행처럼 쏟아진 N차 인생 회귀물을 기반으로 한 '어게인 1997'은 1997년을 소환하며 레트로 감성을 한껏 뿜어낸다. 당시 큰 인기를 얻었던 정우성 주연의 영화 '비트'와 '아스피린', '슬램덩크' 오프닝 OST '너에게로 가는 길'이 배경 음악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삐삐, 워크맨, 16비트 컴퓨터, 캔모아 등 그 시대를 잘 구현해내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헐거운 서사 속 반복적인 설정들은 갈수록 지루하고 식상하다. "판타지와 코미디, 액션과 멜로, 감동 드라마까지 장르 종합선물세트"라고 설명했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담은 것이 독이 됐다. 무엇 하나 돋보이지 못하고 따로 논다.
장면마다 코믹함을 살리려는 노력은 알겠으나, 이야기가 계속 뚝뚝 끊기다 보니 쉽게 극에 몰입하기 힘들다. 우석 앞을 가로막는 위기의 순간은 전형을 넘어 진부함의 끝을 달리는 데다가 거의 무한 반복 수준이다. 이쯤 되니 우석이 빨리 N차의 삶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극 후반을 지배한다. 판타지 장르이기 때문에 굳이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치더라도, 서사가 약하니 "그래서 왜 저렇게 됐는데?"라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러닝타임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 헤드뱅뱅', '모긴 모야 김건모지', '솔쳤다' 등 당시의 유행어나 개그 요소는 웃음은커녕 안타깝기만 하다. 조병규는 과거로 돌아와 여러 인물과 얽히며 어떻게든 인생을 바꾸려 하는 우석을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판타지 장르 특성상 만화 같은 표현이 '응?'스러울 때도 있지만, 액션부터 로맨스까지 주연 존재감을 뽐낸다. 구준회와 최희승은 조병규와 맛깔스러운 삼총사 케미를 형성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40대가 될 때까지 돈독한 우정을 지켜온 세 사람의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면 어땠을까 싶다.
영화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라"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결말도 어느 정도는 행복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도 극 중 캐릭터와 같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4월 10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15세 이상 관람가.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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